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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Oct 04. 2024

모기들의 부탁

(1)

배가 불룩한 암컷이 아파트 놀이터 옆 풀잎에 앉아있었다. 

식은땀이 송송 맺힌 게 딱 봐도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다. 수컷 하나가 날아와 맞은편 풀잎에 앉았다. 수컷도 지쳐 보였다.     


“뭐 좀 먹었어?”     


수컷이 암컷을 보며 안쓰럽게 물었다.     


“놀러 나오는 애들이 하나도 없어..”     


암컷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행히 공원에 떨어진 수박이 있어서 좀 빨아먹었어. 비위 상했는데 간신히 참고 먹었어.”     


암컷은 냄새가 다시 떠오르는지 부르르 치를 떨었다.     


“임신 중이라 더 민감한가 봐.”     


수컷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야. 침 땜에 그래.”     


암컷은 단호한 투로 말을 하고는 헛구역질을 했다.     


“개가 먹다 흘린 음식이나 기웃거리는 현실이라니... 내 새끼들한테 신선한 피를 먹이지 못하는 시대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암컷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흐느끼는 어깨가 애처로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수컷은 암컷 옆으로 날아와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수컷의 눈시울도 덩달아 젖어들었다.          



예로부터 인간의 피 만으로 목숨을 이어가던 존재는 둘 뿐이었다. 흡혈귀와 모기. 이 두 집단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피를 섭취하여 스스로는 연명했고 종족을 퍼뜨릴 수 있었다. 


그중 중세시대까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흡혈귀는 지구에서 사라졌다. 인간에 의해 사라진 도도새나 제니오니스, 콰가 같은 개체들 목록에 사실 흡혈귀도 포함돼야 했다. 인간이 병균으로 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들도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인류가 진화할수록 인간의 피를 더럽히는 새로운 병균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특히 인간의 이기로 쉼 없이 치러진 전쟁은 병균 확산의 일등공신이었다. 부족과 지역과 나라 간의 전쟁으로 병균은 섞이고 재탄생하고 변이를 일으켰고 인간의 피는 갈수록 비참하게 더러워졌다. 


흡혈귀들 역시 인간이 걸린 병에 걸렸지만 인간들처럼 치료받을 수는 없었다. 결국 질병의 원인을 깨달은 흡혈귀들은 단식을 결심했다. 그들의 단식은 그러니까 자의적이라기보다는 꽤 강제적인 현상이었고 그 결과 흡혈귀들은 멸종이라는 결말에 이르렀다.     

 

모습은 달랐지만 흡혈귀의 89촌쯤 되는 모기들 역시 사람의 피로 목숨을 유지하는 개체였다. 상대적으로 적은 양을 흡입한 탓에 목숨을 잃을 정도의 균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역사 속에서 흡혈귀가 사라지는 모습을 직관한 모기들은 생존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고민 끝에 모기들은 섭취 혈액의 다양성을 시도했다. 오로지 인간의 피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의 피도 흡혈하기로 했다. 단식을 택하느니 동물의 흡혈은 절대적으로 반대했던 흡혈귀들이 모기들에겐 좋은 선례가 되었다.


그렇게 사람 피에서 동물 피까지 공급의 원천을 늘렸고 경우에 따라서는 버려진 음식물까지 선택적으로 취한 덕분에 모기는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기들의 원픽은 인간의 피였다.    

  

그중에서도 모기들이 손꼽는 최상의 피는 인간 영유아들의 것이었다.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맑고 깨끗한 생명수. 모기들에게 그것은 피와 살이 되고 때론 약까지 되는 것이었다. 병든 성인의 피를 흡입한 후 골골거리던 모기들은 갓난아기의 피를 조금만 마셔도 씻은 듯 병이 낫곤 했다.      


세상이 발전하며 인간이 많이 사는 곳에는 모기를 위협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직접적으로 위험을 가하는 화학약품도 다양해졌고 공기도 더러워졌다. 모기들도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더 강한 면역력이 필요했다. 면역력을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영양분은 신선한 피였고 그건 누가 뭐래도 인간 아기들의 피였다. 그러니까 아기는 인간들에게뿐 아니라 모기들에게도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들인 셈이었다. 

최근 아기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은 결국 모기들에게도 종말을 암시하는 엄청나게 무서운 현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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