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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Oct 09. 2024

모기들의 부탁

(2)

줄어드는 아기들의 숫자만큼 상대적으로 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반려동물을 대표하는 개와 고양이가 급격히 많아졌다.      


“유모차 부대가 오길래 신나서 날아가봤더니 글쎄, 다 강아지들인 거 있지. 내가 세 봤잖아. 유모차를 50까지 세는 동안 인간 아기가 몇이었는지 알아?”     


암컷이 수컷에게 물었다.     


“한... 삼십...?”     


수컷이 자신 없게 대답했다.     


“그 정도만 돼도 소원이 없겠다. 아홉. 인간 아홉에 개가 마흔 하나였어.”     


“그럼.. 이제 인간 아기보다 개나 고양이가 더 많은 거 아니야?”     


수컷이 놀란 눈을 하고 물었다.     


“아마도. 게다가 걔들은 새끼도 많이 낳으니까. 진짜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절망적인 암컷의 목소리를 들으며 수컷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임신한 암컷들에 비해 수컷들의 비위가 더 좋았고 가능하면 인간의 피를 암컷들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좋아서 동물의 피나 떨어진 음식을 취하는 건 아니었다. 수컷들도 인간의 피를 제일 섭취하고 싶었고 언제 흡혈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인간 아기의 피도 당연히 맛보고 싶었다.     


“예전엔 여기 오면 노는 애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요즘은 저렇게 할머니들이나 앉아있고.. 어른들 놀이터가 됐어 이제..”     


수컷은 근처 벤치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애기들도 없고 놀러 나오는 애들도 없고. 막막하다 정말..”     


암컷은 자신의 부른 배를 내려다보며 또 눈시울을 적셨다.     


“강아지나 고양이 새끼들 피는 좀 낫지 않아?”     


수컷이 물었다.     


“나이 든 애들보다 낫긴 한데 타고난 비린내는 어쩔 수 없어. 유전자가 다르니 어쩔 수 없나 봐.”     


인간 아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암컷은 강아지나 고양이 새끼들의 피를 흡입해 본 적이 있었다. 정도가 덜하긴 했지만 특유의 비린내는 할 수 없었다. 뱃속 새끼들을 위해 숨을 참아가며 간신히 흡혈했다가 결국 비위 상하는 걸 견디지 못해 다 게워내고 말았다. 


여전히 개와 고양이, 그리고 그것들의 새끼에게서 나는 낯선 냄새는 모기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고 쉽게 적응되지 않는 고난이었다. 어떤 모기들은 인간 피가 아닌 동물 피를 마시느니 그냥 버려진 음식물이나 과일을 택하기도 했다. 가끔 그런 음식에서도 비린내가 나곤 했는데 애완동물이 먹다 흘린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애기들 손잡고 산책 나가던 사람들이 요즘은 개줄을 잡고 나가더라. 저기 15층 아줌마네도, 아들 어릴 땐 손잡고 공원 나가더니 요즘은 강아지랑 가잖아. 요즘은 개 이름이랑 사람이름도 헷갈려.”     


수컷이 뒤쪽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복실이. 나도 알아 걔 이름. 근데, 인간들은 왜 개나 고양이 부모까지 되고 싶은 걸까? 난 내 새끼들 엄마 되기도 이렇게 힘든데..”     


암컷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둘은 생각에 빠진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어제 공원에서, 운동하고 쉬고 있던 할아버지 피를 좀 흡입했거든..”     


수컷이 다시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할머니 피는 너무 끈적해. 빨대가 막힐 것 같아서 난 임신기간에는 절대 입도 안대. ”     


암컷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고 나이 든 인간들일수록 약 냄새가 너무 나는 게 나는 싫더라. 세상에 약을 안 먹는 인간은 하나도 없나 봐.”     


수컷이 말했다.     


“건강하지 못해서 약 먹고, 건강해지라고 또 약 먹고. 다들 중독됐나 봐. 덕분에 해독기능이 약한 우리는 점점 안 건강해지고. 이러다가 우리도 흡혈귀처럼 다 사라질 것 같지 않아?”     


암컷은 좌절과 두려움에 빠져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너 같은 암컷들이 영양실조로 새끼를 낳지 못하면, 이제 정말.. 우리도 세상에서 사라질지 모르지..”     


수컷의 떨리는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근데. 개나 고양이들은 왜 저렇게 예쁨을 받을까..? 인간이 아닌 건 우리랑 똑같은데..”     


수컷은 말 끝을 흐렸다.

말없이 수컷의 말을 듣고 있던 암컷이 뭔가 떠오른 듯 눈빛이 또렷해지며 중얼거렸다.     


“우리랑.. 다른 거는...”     


수컷은 고개를 돌려 혼잣말하는 듯한 암컷을 쳐다보았다. 암컷은 뭔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피를 먹지도 않고.. 말을 잘 들어서..?" 


수컷은 눈을 동그랗게 하고 계속 암컷을 주시했다.

또렷해진 눈동자를 반짝이며 암컷은 수컷을 돌아보았다.     


“당분간 인간 아기들은 손대지 말아야겠어. 우리도 인간들 말을 좀 듣자!”     


암컷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다 이해되는 건 아니었지만 수컷은 어떤 말이든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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