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좋다고 달려들면 인간들은 싫다고 우릴 쫓잖아. 그렇게 가라는데도 우린 죽어라 달려들었고. 말 못 하는 애기들은 오죽했을까. 우리가 진짜 말을 안 듣긴 했어.”
암컷이 후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근데, 아기 피를 안 마셔도, 괜찮.. 겠어..?”
수컷이 조심스레 물었다.
“비위 상하는 걸 견디는 게 쉽지 않겠지만 할 수 없지. 한발 물러서 봐야지. 우리가 먼저 이렇게라도 해야 인간들도 변하지 않겠어? 아기들이 모기 물릴 걱정이 없어지면 혹시 모르잖아? 맘 편히 아기들을 더 많이 낳을지도.”
암컷은 스스로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는 표정이었다.
“그치... 괜찮은 거 같아. 우리가 먼저 인간 아기들을 보호하자는 거잖아? 우리 때문에 불안하지 않게 아기를 키울 수 있으면.. 안심이 돼서 아기를 더 낳을 수도 있겠다. 좋은 생각 같은데..?”
생각에 미치자 수컷도 덩달아 설레었다. 돌아보면 그동안 배를 채울 생각만 했지 먼저 양보할 생각 같은 건 해보지 않았었다. 암컷의 의견은 꽤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친구들한테도 알려 보자.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말도 잘 듣고 양보할 테니 마음 놓고 아기를 낳으라고, 인간들한테도 전하고!”
오랜만에 암컷의 목소리는 힘찼고 덕분에 수컷의 심장박동도 오랜만에 빨라지는 것 같았다.
암컷은 다른 암컷들을 설득하겠다는 중요한 미션을 안고 남은 힘을 끌어모아 무거운 몸으로 날아올랐다. 수컷은 암컷에게 응원을 보내고 자신이 할 일을 생각했다. 이 대단한 결심은 인간들이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인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일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컷은 근처 벤체에 앉아있던 노인에게 날아갔다. 발목을 다쳤는지 노인은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공원에 가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바람을 쐬는 듯했다.
“저기요. 할머니-”
수컷은 벤치에 앉으며 소리쳤다. 크게 말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모기들의 말을 그저 앵앵 소리로만 알아들었다. 한 음절 한 음절 듣게 하려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쳐야 했다. 먹은 게 없어 허기진 몸이었지만 수컷은 온 힘을 끌어모아 소리를 냈다.
“할- 머- 니-”
다행히 귀가 어둡지는 않았던지 노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 기 요- 오 른 쪽 아 래-”
노인은 수컷 말대로 고개를 돌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노인의 눈에 작고 보잘것없는 모기 한 마리가 보였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인간들한테 소문 좀 내주세요. 인간에게도 저희 모기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거예요.”
수컷은 높은 목소리로, 하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세상을 오래 산 노인 중에는 이렇게 다른 생명들의 말을 알아듣는 이들이 있었다. 웬만한 노인들은 대체로 그랬다.
“중요한 얘기? 뭔데?”
이 노인도 대화가 통하는 이었고, 다행히 모기를 보고 손부터 올라가는 공격성도 띄지 않았다.
수컷은 모기들이 지금껏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에 대해, 또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 자신들의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작금의 사태를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그동안 인간의 말을 듣지 않았던 이기심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는 점도 특히 강조했다.
수컷의 넋두리를 경청하며 노인은 때론 고민하는 표정이었고 가끔은 "그렇지 그렇지"하며 수컷의 말에 공감 했다. 마침내 수컷의 열변이 끝나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기특한 생각을 했네. 아기들한테 그렇게 해주면 참 고맙지. 애기들이 적어지는 건 인간 사회에서도 중요한 문제거든. 그나저나 이 소문을 어떻게 내야 하나. 젊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같은데..”
“할머니는 인터넷 못 해요? 요즘 인간들은 모든 다 거기서 하던데.”
“아~ 인터네엣~”
노인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손바닥을 마주쳤다.
“우리 딸한테 말하면 되겠다. 우리 딸이 인터네엣에서 작가래. 가끔 막 글씨를 써서 올리고 하더라고.”
노인은 최선을 다해보겠다며 파이팅을 외치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긍정적인 노인의 반응에 수컷은 기운이 났다. 한시라도 더 많이 더 멀리 소문을 내고자 수컷은 힘차게 날아올랐다.
집으로 돌아간 노인은 모기에게 들은 내용을 딸에게 전하고 인터넷에 글을 쓰라며 재촉했다. 엉뚱한 소리에 딸은 내키지 않았지만 말을 듣지 않고는 들들 볶여 잠도 못 잘 것 같아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녀는 종종 글을 올리는 브 런 치 를 열어 다음의 글을 작성했다.
제목. 엄마의 대화상대
부제. 모기들의 부탁
최근 엄마는 욕실에서 넘어지셔서 다리를 다쳤다.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에 엄마는 일주일 넘게 공원 산책 대신 아파트 놀이터로 마실을 나가신다.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이 아니라 심심하셨던지 엄마는 철쭉 나무와도 소나무와도 잡초 같은 풀잎과도 대화를 나누시더니 오늘은 생뚱맞게 모기와 얘기를 나눴다며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고 성화셨다. 그저 듣고 넘기고 싶었으나 꼭 인 터 네 엣 에 올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이렇게 적어본다.
엄마는 이 내용이 인간과 모기의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하.. 하..
(혹시 이 글을 보셨다면 그냥 웃고 넘어가주세요 ^^;)
모기들의 부탁.
모기들은 지금부터 인간 아기들에 대한 흡혈을 멈추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말 못 하는 아기들을 울게 만들어 죄송하며 발갛게 살이 부어오르게 한 것도 사죄합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지만 아기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현재 모기들은 인간 아기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인간 아기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앞으로 인간 아기들에 대한 흡혈을 멈출 예정이오니, 당분간은 모기 물릴 걱정 없이 아기를 키우실 수 있다는 점, 출산과 육아에 꼭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딸이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을 지켜본 뒤 취침하러 들어갔다. 노인을 안심시킨 딸은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 두었던 글을 자정 넘어 올렸다가 새벽녘 화장실에 가려고 깼을 때 접속해 얼른 삭제했다.
딸은 브런치에서 유명한 작가가 아니었기에 읽은 사람은 서너 명도 되지 않았다. 덕분에 이 소문은 모기들의 바람처럼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딸은 다행이라 생각했고 모기들은 불행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