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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말하면. 되는 거죠..? 이런 데는 처음이라 어색하네요.
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말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오차를 못 참는 성격이라.. 정확한 걸 좋아해서요.
저는 마흔 살 주부예요. 제가 원하는 사진은, 음..
가슴 사진이요. 누드 사진 아니고, 그냥, 내. 가슴 사진.
고객님.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저는 사실 가슴이 없어요.
암 수술을 받고 모두 도려냈죠. 어찌 보면 불구자예요. 있어야 할 곳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으니 신체장애자라 볼 수 있죠. 다른 신체장애와 차이점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감쪽같이 가릴 수 있다는 점..?
늦게 결혼했어요. 결혼할 땐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근데 아이를 갖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죠. 임신과 출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랬어요.
시간이 좀 지나고 생각이 또 달라졌어요. 임신과 출산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워낙 의술이 발전한 시대니 그다지 걱정할 일이 아니었죠. 그보다 육아와 출산 후 겪을 현실적인 문제들에서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곧 감당해야 할 고민들을 안고 임신 육 개월쯤 됐을 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일어났어요.
내가 아이와 함께 암덩어리도 같이 품고 있었더라구요.
왜.. 병원에 있으면 세상엔 아픈 사람들만 있나 생각이 들잖아요. 유방암센터에 가보니 정말 세상 모든 여자들은 다 유방암 환자인 것 마냥 붐볐어요. 저 역시 고작 그녀들 중 하나일 뿐이었죠.
다만 눈에 띄였던 건 남들보다 배가 더 불러있다는 점. 고작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애들부터 나이 많은 노인네들까지 다양했는데 나처럼 배가 부른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가슴에 저마다 암덩어리를 지닌 그녀들 조차 연민의 눈으로 쳐다봤어요. 나를. 그리고 내 속에 든 아이를.
조직검사 결과를 받기까지는 며칠이 필요하죠. 그때의 하루하루는 여태껏 살면서 가장 무기력한 시간이었어요. 죽을 각오로 노력한다 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이미 정해져 있는 숙명이 뭔지 힌트도 희망도 없이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소화하는 능력마저 무기력해져서 물만 마셔도 속이 답답해 소화제를 먹어야 했던 그런 시간이었죠.
사실 암세포가 커봐야 몇 센티일 텐데. 그 작고 악한 것에 맞선 인간이라는 나, 인류 최고의 포식자라는 인간 한민아는 허풍으로 부풀려진 사람 모양의 풍선 같더라구요. 점보다 작은 바늘 끝에 닿기만 해도 허무하게 터져버릴 수 있는 존재. 고작 그 정도로 나약한 줄도 모르고 내가 아는 게 다인 양 살아왔던 날들이 어찌나 하찮고 어리석게 떠오르던지..
젊음과 함께 마신다며 위장에 털어넣던 알코올들과 호기심에 입에 물었던 담배 개비들. 탄맛과 불맛도 구분 못하면서 엄지를 치켜들고 역시! 하며 흡입했던 시커먼 고깃덩이들. 피로를 풀어주겠다며 가스라이팅 당한 몸뚱이에 수혈하듯 흘려보냈던 각종 카페인 음료와 당류들. 미래의 내게서 빚지는 줄도 모르고 체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홀딱홀딱 날밤을 새웠던 모습까지.
막상 떠오르기 시작하니 어리석었던 기억 속 내가 끊임없이 나열되더라구요.
단 한 발짝도 밖으로 내딛지 못하고, 그저 꾸역꾸역, 며칠을 버텼어요.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어요. 능력 있는 선생님의 의학적 소견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해이길 바랐던 사실이 사실로 확정됐죠.
수술 일정이나 치료 같은 세부사항을 의논하기 위해 병원을 갈 때부터 더 이상 무기력할 수만은 없었어요. 싸움은 시작됐고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었으니까요. 아이를 품은 채 전장에 나가야 하는 셈이었어요.
다행히 의사 선생님 말씀은 비관적이지 않았어요. 임신 12주가 지났으니 항암치료도 가능했고 수술과 치료를 받지 않은 쪽은 수유도 가능하다고 하셨죠. 생각해 보면 전문가를 찾아간 건데. 결정은 결국 비전문가인 내 맘대로 하고 말았네요.
애석하게도 그때 저를 강하게 이끌던 본능과 전문가의 의견이 달랐거든요. 만약 그때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알 수 없어요. 전문가의 의견이 맞았을지, 그런 그도 예상 못한 변수가 또 일어났을지.
미래를 단언할 수 건 전문가도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저는 수술을 출산 후로 미루기로 결정했어요. 아이를 품은 채로 암을 죽이는 어떤 약도 어떤 광선도 와닿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괜찮다는 말이 전적으로 믿어지지 않았어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그 결정은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암세포도 함께 내 안에서 키워야 한다는 의미였죠. 암이 없던 쪽은 수유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전 그 말도 믿지 않았어요. 내 눈으로 가슴속 유선을 보지 못하니 완전히 믿을 수 없었죠. 내 몸에서 나온 어떤 것도 아이에게 주고 싶지가 않았어요.
암세포를 품은 쪽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쪽도, 뭐든 다 완전히 아이에게서 단절시키겠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