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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전까지 바란 건 오로지 아이에게 암이 닿지 않아야 한다는 것 뿐이었어요. 자궁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성벽이 안전하게 아이를 보호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어요.
다행히 아이는 안전한 공간에서 세상으로 나올 최소한의 준비를 마쳤고 날을 당겨 아이를 제게서 분리했죠. 마음의 준비가 덜 됐을텐데, 아이는 다행히 정상적으로 산소를 호흡하며 신생아실에 안착했어요.
산 하나를 무사히 넘었고 그래서 안도했지만 아직 저는 할 일이 남아있었죠.
구출시키듯 아이를 떼어낸 후, 여전히 남아있는 악한 그것도 꺼내야 했어요.
근데..
그 감정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애증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건지 모르겠는데..
내 아이를 해할 것 같아 죽일 듯 미친 듯 미웠던 작은 덩어리였는데.. 증오하는 동안 담긴 ‘증오’라는 내 감정에 대한 미련이었던 건지..
단두대같은 차디찬 수술대에 누우며, 곧 떨어져나가 사라질, 어쨌든 잠시라도 나의 것이었던 그것을 그냥 모른 척 보내지지가 않더라구요. 한마디 인사도 없이 그렇게는 아닌 것 같았어요.
혹시 나의 실수들, 잘못들, 악함들이었다면.. 기껏 너를 태어나게 해놓고..
근데 왜 하필 지금이어서.. 만약에 조금 늦게 왔더라면,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였더라면, 어쩌면 마지막까지 함께 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잘가라.. 나의 작고 악한 덩어리야..
당신의 그 감정은 무엇인가요? 그것의 이름이 궁금해요.
글세요.. 내게 아이는 끝없이 지켜주고 싶은 사랑이었고 그것은 죽도록 끔찍한 증오였는데..
근데. 반대되는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감정의 모양이 달랐지만 둘 다 내가 감정을 쏟은 대상이라는 점은 같았으니까요. 그게 뭐였을까요.. 나의 어떤 면들이 모여 만들어진 또 다른 나의 민낯..? 혐오스럽지만 내 안의 것으로 만들어 진 게 맞는.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객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지금까지 고객님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바탕으로 파악한 바, 당신이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 봤어요.
어떠세요?
화면 속 사진은 당신이 증오한 암세포를 품기 전, 수술 후 신체장애를 갖기 이전의 온전한 가슴을 가진 당신입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아니요. 내가 원한 사진이 아니에요.
나는 지금, 나의 상태로써의 모습을 원해요. 누구에게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고생한 나의 신체. 이 세상에 나만이 그 수고를 알고 있어서 나만이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이 싸움의 전리품인. 흉터 지고 불구가 된 지금의 가슴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왼쪽은 겨드랑이로 이어지는 부위에 위에서 아래로 칠센치 가량의 흉터와 완전절개로 인한 함몰이, 오른쪽은 유두 아래쪽 가로로 오센치 가량의 흉터와 함몰이 있어요. 보여드릴까요? 흉측해 보일 수 있지만요.
아니에요. 고객님의 의견 잘 파악했습니다.
다시 재 구성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고객님.
힘든 시간을 잘 버텨주셨네요. 당신과 당신의 신체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객님. 최선을 다해 다시 촬영한 결과입니다. 만족하시나요?
현상을 원하시면 현상 버튼을 더 수정을 원하시면 수정 버튼을 눌러주세요.
네. 내가 원한 모습이네요. 내게 선물하고 싶었던 사진이에요.
꼭 남기고 싶었지만 찍을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거든요.
얘기 들어줘서, 온전히 촬영해줘서 고마워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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