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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안녕하세요.
아고, 놀래라.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진짜로 신기하네.. 어디서 보는 거야.. 진짜, 사람 없어요..? 숨은 거 아니고..?
고객님. 이곳은 무인으로 운영되는 사진관입니다.
세상에.. 돈 찾는 기계랑은 무척 다르네.. 생긴 것도 신기하고..
함께 오신 손님은 먼저 퇴장하신 건가요?
요 앞 대학교 학생.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상냥한지, 비 오는 날 부탁 안 해도 수레도 밀어주고 여기도 같이 들와서 눌러도 주고.. 이뻐 죽겠어 아주..
요즘 좋은 바이러스가 유행해서 다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아고 모르는 것도 없네.. 신통방통 재미지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어떤 사진을 현상해 드릴까요?
그냥 얘기만 잘하면 된다 해서 왔는데.. 말 주변도 없고 좀 느려서. 괜찮을라나..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은 충분해요.
그래요. 이르키 누구랑 얘기 나누는 것도 간만이라.. 말이 쫌 길어져도 이해해요. 노인네가 신나 그러니.
나는 옛날 사진 좀 뽑을라고 왔소.
딱 하나 밖에 없던 사진인데, 몇십 년을 이리 휩쓸리고 저리 옮겨지고 여기저기 밀쳐지다가 어느 틈엔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더라고. 잘 둔다고 둔 것 같은데 너무 잘 뒀는가 아예 뵈지가 않어서..
그게 그러니까, 나 스물두 살 때 사진인데.. 지금 내가 일흔여덟, 아니, 일곱인가.. 그러니까 한 오십오육 년 전..
고객님의 신체나이는 파악됐습니다. 숫자는 계산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긴 다 알아본다고 했으니까.. 나보단 무척 똘똘할 테고..
내가 스물세 살에 결혼했으니까 인생서 얼마 안 되는 내 처녀 쩍 시절이오.
짧았어. 그때는 다들 스무 살만 넘어가도 결혼들 했으니까. 나도 벌써부터 결혼하라는 거 도시 나와 공장 다닌다고, 그 핑계로 스물세 살까지 버틴 거지. 고향 있었음 벌써 애 하나는 딸렸을 거여.
생각해 보면.. 뭐, 남편 없고 자식도 없는 지금도, 뭐라더라 쏠.. 쏠로 산다나.. 하여간 혼자 살고는 있지만, 그때랑은 다르지.. 무척 다르지.
지금 나 사는 데가 대학교 앞이요. 요즘 애기들 보면 여적 학생이라 그런가, 그때 내 나이랑 그럭저럭 비슷할 껀데, 허얘서 그런가 요즘 애기들이 훨씬 더 어려 보이대. 그때 우리는 집에서 살림 다 하고 공장 가서 뭐라도 하고, 거진 다 사회 나가 일할 때였는데.. 다 컸다고 생각했지. 어른이라고 생각했어. 지금 학교 다니는 애기들 정도밖에 안 됐었는데, 어렸다는 걸 그땐 몰랐어.
시골서 그나마 도시라고 온 것도 오래비 학비 대주는 조건으루 따라나선 거여. 큰 오빠가 공부를 곧잘 해서 서울로 대학 가는 바람에 나도 구실이 생겼지. 시골 농사짓는 양반들이 자식 대학 보낼 목돈이 있었겠어. 오빠도 일하면서 공부한다고 하니까 나라도 오래비 보태주라고 허락하셨어. 나는 서울 까정은 못 올라오고 수원이랑 인천서 공장 친구들이랑 같이 살면서 지냈어. 월급 받으면 반은 떼서 오래비한테 보내주고 나머지로 살았지. 그때는 나 같은 딸들이 많았어. 당연하게 그렇게 뒷바라지를 했어.
다들 그러니까 불만도 없고 그냥 도시서 지내는 게 잼났었어. 그때 친구들이랑 쏠로 살 때가 젤로 행복했어. 잔소리하는 부모도 없고 아부지 보다 더 무서운 오래비도 없고, 귀찮게 구는 동생들도 없고. 생판 모르는 도시에 올라와 살았어도 한 개도 안 무섭더라고.
뭐 라드라. 친구 손녀딸이 요 얘기를 듣고는 할머니의 해방.. 뭐라던데, 참말로 해방이었어. 시골서, 부모한테서 해방됐다는 생각에 일이 힘든 것도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르고 살었지 그때..
일할 땐 쉴 틈 없이 일하고 쉬는 날엔 쉴 틈 없이 놀고. 힘든 공장들도 많았는데 그래도 나는 운이 쫌 좋아서 그렇게 빡신 데는 아녔던 거 같어. 모르지. 힘든 건 다 잊어 뿌리고 이렇게 기억하는 건지도..
고 시절엔 뭐 하고 놀았을까 싶으지? 하긴 이런 요상한 기계 같은 게 없긴 했지. 그래도 놀게 왜 없어, 시간이 없지. 얼마 안 되는 시간 쪼개 노느냐고 외로울 틈이 없었던 거지.
돈 없고 빠듯했어도 친구들이랑 열심히 댕겼어. 유명하다는 송도유원지도 가고 원천 유원지 생겨서는 거기도 많이 댕겼지. 유원지 안 가고 시내만 돌아댕겨도 얼마나 재미지다고.
영화도 보고 국수도 먹고, 빵집 가 곰보빵이랑 크림빵도 먹고.. 그때는 시골에 전화도 없을 때라 부모님은 잘 있겄지 하고 고향도 잘 안 내려갔어. 오다가다 편지 한 두 장 보내고.
오래비 보태주라고 도시 보낸 딸년이 발라당 까져버린 거지.
웃는 모습을 보기 좋아요. 정말 흥미로운 삶을 사셨군요. 그 시절의 향수와 추억이 느껴지네요. 사진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말도 상냥하게 참 잘하네. 나도 오랜만에 생각하니 재미나고..
그 사진이, 같이 공장 다니던 처녀들끼리 첨으루 해수욕장 놀러 가 찍은 사진이었어. 그때만 해도 우리 같은 촌것들은 수영복도 못 입을 때야. 그래도 유원지 놀러 간다고 최신 유행하는 미니스커트에 선그라스에 리본으로 머리띠도 하고 멋이란 멋은 죄 부리고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