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a Bersama)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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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기다렸던 구급대원 대신 남편과 정대리였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남편은 귓속말을 속삭이고 야니를 둘러업었다.
나중에.
나중에 뭘 어쩌겠다는 건지 설명할 새 없는 남편과 달리 정대리는 산만한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피 묻은 바닥을 보며 복잡과 당황에 엉켜있는 정대리 모습은 내게 설마 했던 상상을 함부로 예단케 했다.
나는 소파에 깔린 천으로 그녀의 하체를 감싸며 남편을 따라나섰다.
응급실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질문도 섣부른 대답도 누구 하나 먼저 하지 못했다.
그날 야니는 사산한 태아를 제거하는 응급 수술을 받았다.
낙태를 법으로 금하는 이슬람 국가에서 미혼의 몸으로 임신한 그녀는 비정식 루트로 중절을 위한 약을 구했고 용감하고도 무모하게 그걸 삼켰다.
히잡을 쓰지 않았어도 그녀 역시 무슬림이었다.
동의했던 그렇지 않았던 그녀에게 혼전 임신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실체는 없으나 실증이 있는 소문은 전파와 입을 통해 알아서 퍼져나갔다.
사실의 뼈대 위에 맥락 없는 살이 더해져 모양이 변했고 눈과 입을 통한 사람 수만큼의 허구가 만들어졌다.
데사 버르사마의 웬만한 한국인과 어지간한 식모들은 제각각의 플롯으로 야니와 정대리 소문을 접하게 됐다.
입원 내내 나를 똑바로 보지 않던 야니는 예정보다 먼저 퇴원해 조용히 사라졌다.
정대리 역시 소리소문없이 그녀의 병원비를 정산했고 한국으로의 복귀를 신청했다.
머지않아 정대리는 한국으로 뿔랑(pullang:돌아감)했다.
그리고 석 달 후 야니로부터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Minta maaf Nyonya(민따 마압 뇨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