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데사 버르사마

(Desa Bersama) 9.

by 타프씨

.


한국에서 가져온 스테인리스 설거지 건조대에 녹이 슬고 있다.

스테인이 리스라더니 그랬다.

이곳의 습기는 스테인리스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공평하게 모든 걸 습하고 축축하게, 그래서 무디게 만든다.


나는 이들의 느릿한, 때로는 답답하고 속 터지게 하는 여유로운 습성이 습기와 상관있다는 나만의 가설을 연구 중이다.

그러는 사이 내 뾰족함에도 예외 없이 녹이 슬고 있었다.


“이삿짐 쌀 때.”


제법 능숙하게 망고를 잘라 접시에 놓으며 내가 말했다.


“애 없어서 짐 간단하다고 칭찬받았었다.”


남편은 생뚱맞다는 듯 쳐다보다 미끈한 망고를 요령껏 포크로 찍었다.


“이삿짐 아저씨한테 감사합니다 할 뻔했잖아.”


“나는 부장님한테 감사합니다 했는데. 나도 그래서 일 순위 된 거야. 일등 처음 해봤네.”


우리는 서로를 하찮아하며 피식 웃었다.

나는 살을 도려낸 망고 씨를 뜯었다.


“딱복 먹고 싶다. 얘는 이빨에 너무 껴.”


“너무 다니까 질리기는 해.”


“너무 안 달고 딱딱한 거 먹고 싶다. 이런 건 나중에 잇몸만 있을 때 먹어도 되는데.”


“여기니까 먹어야지. 여긴 딱복이 없으니까. 답장은 아직?”


“해야지. 읽씹은 좀 그렇지.”



오늘 오후에도 느닷없는 스콜이 쏟아졌다.

천지가 개벽할 듯 퍼붓고 지나가면 적도의 태양은 기다린 만큼 더 열심히 쨍쨍하게 불탄다.


뻔뻔하리만치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는 뜨거운 하늘에 나는 여전히 적응 중이다.

오늘은 야니에게 답장을 할 셈이다.


데사 버르사마에서 나는 일 년째 함께하고 있다.






keyword
이전 08화데사 버르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