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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사 버르사마

(Desa Bersama) 7.

by 타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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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집에 누가 있는 게 영 불편했노라 자백하며 파출부를 제안했다.

자신에게는 복 받은 정대리가 있고 정대리에게는 꽤 괜찮은 야니가 있다나.

남편은 야니에게 파트타임을 제안하겠다고 했다.

주 삼 일. 하루 네 시간.

우리는 야니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나는 오래 기다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차라리 그러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야니는 하지만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자기 잘못인 양 수기 일을 사과했다.

그녀의 결정에 고맙다고 하자 그녀는 짙고 깊은 쌍꺼풀 눈을 반달로 휘며 웃어 보였다.


야니는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

나이를 알고 보니 훨씬 앳된 얼굴이었다.

정대리 집에서 이년 넘게 일했다니 스물이 되기 전부터 일한 셈이었다.

이미 내 수준을 알고 있는 그녀는 눈높이 대화를 이어갔다.

수기처럼 과한 질문도 하띠처럼 제멋대로 일하지도 않았다.

일에 앞서 내 방식을 물어봤고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일들은 알아서 해결했다.

개인 물건을 다룰 때는 먼저 허락을 받았고 임의로 뭔가를 바꿔놓았을 땐 후에 반드시 공지했다.

정말 정대리는 무슨 복으로 이런 사람을 만났나 싶었다.


야니가 들락거린 후 곤두섰던 감정은 안정을 찾았다.

그녀는 착하고 예쁜 우럭 각시 같았다.

그동안 나는 그녀들 앞에서 인니어 공부를 하지 못했다.

하띠 앞에서는 창피함이 앞섰고 수기 때는 일 대신 선생 노릇만 할 것 같아 그랬다.

야니가 온 후 나는 굳이 펼쳐둔 책을 치우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런 편안함이 있었다.


어느 날 야니는 포스트잇을 가져와 동의 후 집안 곳곳에 인니어 단어를 적어 붙였다.

진심은 언어로만 통하는 게 아니었다.

소소한 행동, 따뜻한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녀가 오는 날을 인니어 수업처럼 기다렸다.

독학으로 꾸역꾸역 보던 책이 재밌어지고 있었다.

야니가 좋아하는 블랙핑크 얘기를 하는 날이면 그녀도 십 대 애들처럼 좋아라 했다.


야니가 집에 오간 지 다섯 달이 지날 무렵.

단 일 분도 안 늦던, 되려 몇십 분씩 일찍 도착하던 야니는 그날 삼십 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두세 달에 한 번씩 하는 에어컨 청소였다면 미리 메시지를 보내뒀을 터였다.

한 시간. 두 시간.

연락 없이 세 시간이 넘어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는 신호음만 가다 끊어졌고 메시지는 답이 없었다.


아픈가. 너무 아파 일어나지도 핸드폰을 켜지도 못하는 건가.


나는 감기약 진통제 등을 챙겨 처음 정대리 집으로 향했다.

정대리 집이자 그녀가 사는 옆 동 21층에 도착해 벨을 눌렀지만 아무 기척이 없었다.

문을 두드리고 계속 전화를 걸어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에어컨 없는 복도는 더웠고 불안한 마음에 땀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 벨을 누르다 돌아서는데 띠리릭, 번호 키는 해제됐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얼른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야니는 문 안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하체 뒤로 마치 그림자처럼 피가 번져있었다.

상당한 하혈이었다.

당황하니 한국어밖에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은 kenapa(끄나빠;왜) 뿐이었다.

나는 다급히 남편에게 전화했다.

야니가 하혈을 하고 쓰러져 있다고, 빨리 구급차를 불러달라 요청하고 전화를 끊었다.

야니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휴지를 가져와 얼굴과 피 묻은 손을 닦아주는 동안 야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숨이 가늘었지만 의식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도 그녀는 계속 눈을 뜨지 못했다.

뜨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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