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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app Sep 03. 2022

좋아하는 것에서 직업으로의 변화(2)

미술관에서 깨달은 것


나는 작업에 대한 열의는 있었지만 작가로 활동할 만큼 재능이 따르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 객관화로 꿈을 일찍 내려놓은 걸 수도 있으나, 나는 부모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이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제일 중요했다. 나답기 위해서는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술관은 박봉이었으나 계속 다닐 생각은 아니었고 약간의 로망과 전공을 살린다는 만족감을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1. 청소

나는 막내였기 때문에 혼자 이틀에 한번 꼴로 사무실과 전시장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 걸레를 밀었다. 외관은 작은 미술관이었으나 막상 청소를 해보면 1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2. 주말•공휴일 출근

토요일은 교육 프로그램 진행으로  직원이 출근했다면, 일요일은 혼자 출근하는 날이었다. 주말을 반납하고 평일에 쉬다 보면 만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미술관이 월요일이 휴관일인 탓에 전시 보러 다니기도 어려운  해였다.


3. 육체노동

작은 사립 미술관일수록 짧은 전시를 많이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깊이는 없고 노동량은 많다는 것이다. 전시 철수일에는 드릴로 피스를 빼고 퍼티로 구멍을 메운  사포로 벽을 매끄럽게 만들어 페인트칠을 하는  기본 업무다. 그러나 매년 계약직으로 직원들을 꾸리다 보면 제대로  교육이 되질 않아서인지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럼  전체에 페인트 도색을 해야 하고... 사다리를 타고 조명을 교체하는 것도 일상이다. 미술관은 생각보다   일이 넘쳐나는 곳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규모의 미술관인 경우 운송 업체에서 설치까지 맡아서 해준다.)


4. 디자인

전시장 입구에 붙은 월텍스트와 엽서, 포스터, 현수막, 리플릿 디자인이 기본 업무였다. 심지어는 간단한 교육프로그램 도록 제작까지도 해보았다.

 년은 썼을 법한 후진 컴퓨터로 일러스트를 돌리다 보면 저장 시간도, 작업 과정도 늘어졌다. 그러다 보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까지 디자인을 하게 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디자인과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찾아가며 어렵게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미술관에서 '인턴'이었다. 정부 보조금이 지원되는 프로그램 면접을 보고 들어간 10개월 계약직이었다.


5. 야근

전시 준비 기간에는 야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자주 찾아왔다. 아무리 늦게 끝나도 다음날 정상 출근을 해야 했고 휴무일에도 출근을 했는데 대체휴무나 야근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최저시급도 받지 않고 일했다며 업무 환경이 매우 개선된 것이라는 합리화의 말들만 가득했다.

지금보다 어리고 건강할 때에는 야근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야근을 해도 내가 이 전시에 일조했다는 성취감마저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2년 이상의 경력과 석사 졸업이라는 학예사 자격증의 요건을 갖춘 지금, 과연 나는 이 길에 왜 남았을까 하는 후회만 남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학예사가 되어 식대가 지원되고 야근수당을 받고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으로 지원해서 근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4년을 전전한 나에게는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연차를 다 써본 적도 없고 식대는 당연히 없으며 명절 상여금, 야근수당 등 노동에 대한 보상조치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 환경이 혐오스러운 것이다. 내가 학예사가 되어도 나와 같이 일하는 누군가는 그런 삶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나만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일하면서 전시를 보조하는 직원들은 육체노동을 감내해야 하며 디자인을 비롯한 온갖 잡무도 잘했으면 좋겠고 학예, 교육 업무 전반을 보조해야 한다니.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에 다 같이 죽자는 거 아닌가.


나는 더 이상 이 업계에서 일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끝을 모르고 부려먹기 좋은 환경이다. 휴무일에 출근해도 대체휴무 지급을 요구하지 않으면 주 6일을 야근하면서 일을 해야 했다. 그곳만 그랬다고 넘기기에는 경력이 쌓인 지금도, 나는 할 줄 아는 일이 많아 더욱 부려먹기 좋은 노예일 뿐 일 잘하는 직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직원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1년 계약직이기 때문에 복지가 없는 것은 당연한데 최대한 많은 일을 시키고 몸을 망가뜨리는 착취의 노동형태를 요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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