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베서머(Sir Henry Bessemer, 1813~1898, 런던)는 '타고난' 쇠쟁이였다. 부친이 주물공장을 경영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용 위인전에 의하면 베서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모래로 거푸집을 만들어 쇳물을 붓는 연구를 했다는데, 위인전 제발 이런 식으로 쓰지 말았으면 한다.위대한 업적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보건대 그는 하루종일 머리 깨져가며 놀다가 엄마한테 등짝 맞는,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게 틀림 없다.
흔한 한국의 위인전
아버지인 앤서니 베서머도 광학 현미경을 개량한 공으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이름을 올렸다가 대혁명으로 고국에 돌아온 기술자였다. 아들 헨리는 젊은 나이부터 죽을때까지 평생 발명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허만도 최소 129건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건물과 인테리어에 금분을 칠하는게 유행이었는데 베서머는 금분(황동 분말) 페인트 제조 공법을 개량하여 원가를 무려 1/40로 낮추었고 이 발명으로 큰 돈을 벌었다. 우리가 잘 아는, 돌려서 날짜를 맞추는 스탬프를 발명했고 광산 배수 펌프를 개량하였으며 유압으로 작동하는 배멀미 방지 선실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가 제강법에 꽂히게 된 계기는 분명치 않으나 1853년 크림 전쟁 때, 그때까지도 주철로 제작하여 쉽게 깨졌던 대포의 재질을 개선하려 백방으로 연구했던 건 사실인 것 같다.
1855년, 선철에서 탄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한지 8개월, 베서머는 회심의 일타를 날리게 되는데 그게 만루홈런이었다. 다음해인 1856년 영국 왕립학회에 공식 발표한 논문으로 특허를 취득한 베서머 제강법은 용융 선철에 공기를 강제로 불어넣는 방법이었다.
오늘날 베서머법(法)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공법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전에 가장 선진화된 제강법이었던 헨리 코트의 퍼들링법으로 만 하루동안 처리하던 선철을 단 10분만에 강철로 만들었으니 세상이 뒤집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10분. 용융로(爐)도 퍼들링 로보다 대형화 할 수 있었고 용융철에 불어넣는 공기중의 산소 반응에 의해 별도의 가열도 필요 없었으며 핸들링도 거대한 암포라 비슷하게 생긴 로에 쇳물을 부었다 따라냈다 하는 아주 단순한 작업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제강 공정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전로(轉爐; converter)다.
영국 셰필드 켈럼아일랜드(Kelhem Island) 박물관에 전시중인 최초의 베서머 전로
로 이름이 furnace나 hearth가 아닌 converter임에 유의하자. 이 주전자는 철을 가열하여 녹이는게 목적이 아니라 선철을 강철로 변환(conversion)하는 설비다. 그만큼 버너든 전기 코일이든 가열 장치는 일체 없다. 컨버터를 일본인들이 번역한 '전로'도 구를 전(轉)자, 전환하는 솥단지라는 뜻이다.
전로의 등장으로 유럽 전역의 조강(造鋼) 능력은 연간 25만톤에서 순식간에 1000만톤으로 무려 40배나 증가했다. 폭발적인 증가는 가격 하락과 함께 엄청난 수요를 창출했으며 이로부터 불과 30년 뒤 프랑스 파리에는 에펠탑이 올라갔고 미국 대도시에는 철골을 사용한 마천루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섰다. 바야흐로 인류 역사가 바뀐 것이다.
우리는 흔히 위대한 발명은 위대한 천재가 어느날 필을 받아 하늘의 도움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기술 혁신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이 있으려면 첫째, 선행 기술이 있어야 한다. 둘째, 개발자의 손에 닿는 곳에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어야 한다. 세째, 가장 중요한 건데, 강력한 이윤 동기가 있어야 한다.
베서머가 어느날 졸다가 쇳물 가마에 바람이 불었고, 잠에서 깨어 아이구 큰일났네 했는데 가만 보니까 강철이 되어 있더라, 그런 이야기도 있다. 아이작 뉴튼이 사과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것만큼 헛소리다. 공기 중의 산소가 용융 선철에서 탄소를 빼앗는다는 것은 베서머 전에도 유럽 제철인들에게는 상식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스코틀랜드의 학자이자 기술자인 제임스 나스미스(James Nasmyth)도 산소 주입법을 착안하고 헨리 베서머와도 기술적 교류를 하고 있었다. 베서머가 산소를 불어넣을 생각을 한 건 인식의 벽을 깬 위대한 발상이었으나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선행 기술을 토대로 혁신을 일군 하나의 예(例)다.
헨리 베서머 경(Sir Henry Bessemer)
개발자가 유용할만한 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렇다. 이미 산업혁명이 일어난지 100년도 더 지난 시점이었고 영국의 기계 제작 기술은 현대 기술이 무색할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스케치만 해줘도 바로 실물 설계와 제작이 가능했다. 질 좋은 내화벽돌과 고압의 송풍기, 운반기술도 베서머가 원하는대로 받쳐줬다. 무엇보다도, 그의 구상을 믿고 투자해 줄 자본이 있었다.
강력한 이윤 동기란 건 당연하다. 개발자도 지주나 부르주아지와 다를바 없이 돈을 벌고 싶어한다. 아니면 가문의 명예나 하다못해 자손들의 앞날이라도 보장되어야 양질의 기술이 나올 수 있다. 헨리 베서머는 비록 그의 전로를 구매한 제철소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이 발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1879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왕립 학회(Royal Society) 종신 회원이 되었다. 미국 앨러배마 주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도 있다.
산업혁명이 왜 동시대 과학기술 최고 선진국이었던 중국이 아닌 유럽, 그중에서도 섬나라 영국에서 발생했을까? 이 주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여러가지 설명을 해 왔다. 지정학적인 해석도 있고 정치나 사회 구조로 설명하기도 한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으나 중국에 인구가 너무 많아서 산업혁명 따위 필요 없었다는 것만큼은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중국에서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 건 수(隨)나라 때부터인데, 수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도 운하를 팠고 이는 칠백년이나 지난 명나라 때까지 계속되었다. 수도를 내륙인 낙양에서 바다에 가까운 북경으로 옮겨간 뒤로도 필요하지도 않은 운하를 파고 또 팠다. 약간 정신나간 짓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사람이 많아서다. 운하에 삽질해서 먹고 사는 인구가 너무 많다보니 공사를 갑자기 중단하면 민심의 소요가 자금성을 덮을 수 있었다. 남아도는 사람을 위해 일을 억지로 만들어야 할 형편이었으니 기술 혁신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경항 대운하. 바닷길로 가도 될 것 같다.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 상황이었다. 1인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산업혁명 직전인 1725년의 주요 도시 노동자 실질임금을 추론한 최근연구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베이징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최저생계비의 1.2배에 그쳤다. 스페인 발렌시아 노동자가 1.8배, 이태리 피렌체 1.5배, 그 와중에 영국 런던 노동자는 무려 4배에 달했다. 임금의 압박을 영국 자본가들은 기술 혁신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서머 전로는 이후 시드니 길크라이스트 토머스(Sidney Gilchrist Thomas)가 염기성 내화물을 써서 인(P)과 황(S)까지 동시에 제거하도록 개량했고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VoestAlpine) 제철소에서 순산소를 주입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원작자가 발명한 원형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전로에 선철을 붓고 있다. 이 바께쓰를 래들(ladle)이라 한다.
고로에서 제강공장까지 선철 쇳물은 거대한 열차로 운반한다. 생긴 모양이 어뢰와 닮았다 해서 이름한 토페도 카(Topedo Ladle Car; TLC), 그리고 뚜껑 열린 래들을 싣고 다니는 오픈래들 카(Open Ladle Car; OLC)다. 내가 보기에는 제철소 유일한 구경거리다.
토페도 카(Topedo Ladle Car)
전로에서 생산된 강은 탄소 함량에 따라 크게 보아 고탄소강과 중탄소강, 그리고 저탄소강이 있다. 고탄소강은 대략 탄소 0.6~1.5%, 중탄소강 0.3~0.6%, 저탄소강은 0.3% 미만이다. 명확히 나누어지는건 아니고 상대적인지라 정의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흔히 탄소강이라고 하는게 고탄소강이며 표면이 단단하여 각종 공구와 내마모성이 필요한 기계 부품에 쓰인다. 단단한 대신 전성(가늘게 늘어나는 성질), 연성(넓게 펴지는 성질)은 부족하다. 중탄소강은 경도와 전,연성 모두 중간쯤이어서 열처리를 병행하여 여러 기계 부품과 레일, 차축, 나사류 등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강재 중에 아마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질은 보통 연강이라 부르는 저탄소강일 것이다. 철근과 철골, 선박, 발전기, 가전과 자동차 외장 등 당신의 눈에 보이는 철제품의 칠할은 저탄소강이다. 전,연성이 좋고 특히 용접성이 우수하여 구조용 강으로 널리 사용된다.
이렇게 다양한 성분과 성질의 강은 제강 이후 연주(Continuous Casting; CC) 공정에서 중간재(semi products)로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두께 250~400mm, 폭 1000~1500mm의 떡판 모양 중간재가 슬라브(slab)다. 슬랩이 맞는 발음이겠으나 제철소에서는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도 슬라브라 한다. 이는 다음 공정인 압연에서 다양한 두께와 폭, 길이를 갖는 강판(steel plate)이 되어 조선소로, 발전설비 제작처로, 자동차 공장으로 보내진다. 가로세로 100~150mm, 길이 10미터 내외인 중간재를 빌렛(billet)이라 하며 이는 압연에서 봉, 철근, 철선, 그리고 소형 형강으로 가공된다. 단면 한 변이 150mm 이상의 사각 중간재는 블룸(bloom)이라 하는데 이것을 압연하여 큰 단면의 형강을 제조한다.
이상의 제철 공정을 요약하면 다음 계통도와 같다.
이렇듯 고로(소결, 코크스 포함)에서 최종 압연 공정까지 전 공정 라인업을 갖춘 제철소를 일관제철소, Intergrated Steel Mill이라 한다. 이는 후술할 다른 형태의 제철소와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다.
고로에서 냉간압연까지 일관 라인 1기를 건설하는데 적어도 5조원은 소요된다. 한국의 경우 원료가 국내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일관 라인 1기를 운용하는 인력은 적게 잡아도 3천명에 이른다. 전력, 용수, 가스 등 유틸리티도 인당 가장 많이 쓰는 공장이 제철소일 것이다. 이렇듯 큰 비용을 잡아먹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철강 가격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구조용 열연강판 기준 1kg에 1000원 정도다. 시중에서 두께 12mm 폭x길이 1219x2438mm 강판 1장을 28만원이면 살 수 있다. 2020년에 700원/kg 정도까지 내려갔던게 지금 가격이 많이 회복되어 그 정도다. 규모의 효과라는게 다른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