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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Nov 10. 2024

자해를 하는 분들을 위해

저는 자살, 자해, 섭식장애(또는 프로아나) 등 남들이 관심을 잘 갖지 않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경험해보지 못 했던 일들이라도 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저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듯 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자해에 대한 설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해란 정신적 고통 때문에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솔직하게 답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나눠볼까 합니다.  


저는 자해를 하는 분들이 그걸 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어릴 때 나도 자해를 했었는데 주로 가슴이 너무 답답하거나 아플 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설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자해를 하는 이유는 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마음이 속상하고 아플 때 그걸 잊기 위해 한다는 대답이 많이 나왔습니다. 극도의 긴장이나 불안, 절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도 하고요. 또한, 자신이 미울 때 한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자해를 하는 대신 있었으면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일지 물어봤더니 마음이 찡해지는 답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주로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끌어안고 위로해줄 사람도요. 저 역시도 많이 마음이 아플 때 혼자서 견뎌내지 않고 누군가 위로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에 마음이 아프고 많이 공감 되었습니다.  


 자해 충동이 들 때 대처법에 대한 설문에는 아주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여러 방법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힘든 분들은 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1. 종이를 잘게 찢어요!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요. 


2. 저는 자해 욕구가 올 때 제 소중한 물건을 들여다봤어요. 작년에 큰 슬픔이 있었고 그 이후로 다시금 자해 욕구가 들면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며 산 반지를 잡고 있거나 저의 반려동물을 보았어요. 사실 이 방법이 영구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효과를 보고 있어요. ‘소중한 이들과 소중한 물건’을 저는 기록해놓았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저에게 <너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저는 제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우울해질 때, 제가 죽고 싶을 때, 스스로 학대할 때. 처음에는 기록한 것들이 보이지는 않고 아무것도 의미 없게 느껴졌지만, 치료를 병행하면서 의식적으로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정말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아직 저도 노력 중이고 함께 방법을 찾아서 평온하게, 온전하게 살아가요. 우리!  


3. 그냥 혼자 방에서 숨을 쉬어요. 일기를 쓴다거나, 향초를 키고 숨을 쉬어요. 그리고 눈물이 나면 울어요. 지금은 그만뒀는데, 어떻게 그만뒀냐면, 메디폼을 붙였어요. 생각보다 간단한데(ㅎㅎ) 그냥 메디폼을 붙이니 점 나아지더라고요. 사실 그 이후에도 욕구가 생겼지만, 그냥 계속 숨을 쉬었어요.  


 4. 빨간 잉크펜을 써서 손목에 선을 그어요. 천천히든 빠르게든. 실제로 흉터가 생기지는 않지만 꽤나 개운했어요. 그렇게 감정을 분출한 다음에는 자연스레 충동적인 감정이 가라앉더라고요. 


5. 손목에 고무줄을 끼우고 튕기는 것도 도움이 되고 너무 심한 충동이 아니면 나가서 돌아다니거나 연락을 하는 등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걸 해요. 


6. Calm harm이라는 앱에 들어가서 심호흡 모드를 키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요. 무기력할 때는 움직이기 싫은데 이러면 누워서도 할 수 있고 그래도 진정이 되더라고요. 


 7. 트위터에 저의 우울한 마음에 대해 트윗을 올리고 위로가 될 수 있는 말들을 올려 나 자신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줍니다. 


8.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큰 소리로 따라불러요. 저는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그런 식으로 감정을 쏟아내면 자해 충동이 좀 줄어드는 편인데, 의미 없는 말을 하거나 운다거나 소리 지르거나 하는 행위를 그냥은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노래를 따라부른다'라는 행위로 의미를 부여해서 감정을 쏟아내면서 자해에서 관심을 돌려요. 큰 소리를 내는 것이나 눈물이 나는 것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그게 되는 편이라서요. 


약한 충동은 저 정도로 충분한데, 좀 더 심하게 자해를 하고 싶다 싶어지면, 제일 좋아하는 향수를 방에 뿌리고 일단 자버려요. 자고 일어나면 조금 나아지는데, 그래도 안 되면 집중할 수 있는 걸 해요. 긋는 행위가 있는 것들을 주로 하는 편인데,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페이퍼아트를 하거나 색칠을 하거나 그렇게 시선을 돌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한참 듣고 하다 보면 좀 이겨낼 법한 수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것 같아요. 


9. 전보다 자해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자해할만한 도구들을 싹 치웠어요. 눈에서만 안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예 버렸어요.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다 보니까 커터칼이나 그런 걸 사러 나갈 수가 없어서 도구로 자해하는 방법은 줄이게 된 거 같아요. 조금씩 줄이다 보니 자해 충동이 와도 도구를 이용한 자해는 많이 안 하게 되는 거 같더라고요.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저는 꽤나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10. 저는 방에 홀로 들어가서 문을 꼭 닫고 좋아하는 향, 코코넛 향이 나는 향초를 켰어요.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서 향초 불빛을 한참이나 바라봤어요, 심지가 나무로 되어있는 향초는 타닥타닥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왠지 모르게 위로돼요. 


11. 자해 흉터에 타투 커버업을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자해하고 싶어져도 또 남들 눈총 때문에 타투로 커버하려면 돈이 최소 5만원이다. 5만원 모으려면 이것도 저것도 해야하고, 등등 금전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오히려 자해 충동은 좀 가라앉게 되었어요. 


12.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지했었다. 


13. 병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자퇴를 한 후로 증상이 호전되어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종종 자해 욕구가 들 때가 많았는데요, 그럴 때마다 1) 일기를 쓴다. 2) 영화나 책을 감상한다. 3) 예전 일기를 보며 우울한 감정을 예전의 나와 공유한다. 4) 산책한다(담배를 피우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도움이 되었지만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5) 위의 것들을 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누워있는다 등의 방법으로 대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로도 막을 수 없을 땐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횟수는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한 번 그만두게 되면 나름 깨끗해진 팔을 뿌듯하게 여기기도 하며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다른 방법으로 대처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칼을 놓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부러 자해를 끊으려고 하는 건 스트레스가 될 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치료를 꾸준히 하면서 자해횟수를 줄여보도록 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이 설문의 내용입니다. 물론 이밖에 상담과 정신과 치료 등 전문적인 치료도 병행되어야 하겠지요. 자해에 대해서 당사자의 이야기들을 들어볼 일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분들이 원하는 바와 도움이 되는 대처 방법들을 알게 되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자해를 하는 분들이 읽어도 좋고, 자해를 하지 않아도 그 주위 사람들이 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혀 자해에 관심이 없고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고통을 겪는 분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해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평안이 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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