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위의 왕

버섯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어요.

by 엘리

<성>

눈을 떴을 때,

엘리와 피코는 성 아래 광장에 서 있었어요.


왕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금빛 깃발 아래서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그의 곁에는 한 여인이 조용히 서 있었지만,

빛이 닿지 않아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엘리와 피코는 군중들 사이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어요.


그때


피코가 갑자기 몸을 낮추더니,

엉덩이를 쭉 들어 올렸어요.

꼬리를 흔들다가 말고는,

망설이듯 엘리에게 돌아와

그녀의 다리에 코를 묻었어요.


“왜 그래, 피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야?”


엘리는 피코를 조심스레 안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줬어요.


피코는 귀를 바짝 눕힌 채,

성 꼭대기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봤어요.


그 순간,

엘리의 주머니 안에 있던 유리병 속 음표가

작게 떨리기 시작했어요.


‘이번엔… 저 사람이 나인 건가?’


음표의 진동은

군중들 사이로 조용히 퍼져갔어요.


<성 안 -서재>

장화 굽소리가 복도의 고요함을 깨며 무겁게 울렸고,

그의 그림자가 등불 아래 길게 드리워졌어요.


왕은 서재로 들어와 램프에 불을 켜고,

책장을 뒤적이다가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펼쳤어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집중하는 듯하더니,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어요.


그 순간,

엘리의 가슴이 불덩이 같이 달아올랐어요.

뜨거운 숨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고,

눈꺼풀이 자꾸만 무겁게 내려앉더니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어요.


왕이 숨을 쉴 때마다

엘리의 머리가 둥둥 울렸어요.


〈숲〉

숲은 여전히 푸르고,

빛은 바닥 위에 작은 보석처럼 반짝였어요.


그 한가운데

버섯 모양의 집 하나가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어요.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올랐고,

창문 너머엔

흰 앞치마를 두른 소녀가 움직이고 있었죠.


빵을 자르고, 허브차를 따르며

미소 짓는 소녀의 웃음이

숲 전체를 환하게 밝히더니

그들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숲이 온통 물들었어요.


식사가 끝나고,

왕은 버섯집에서 나와 개울가로 향했어요.


그늘진 나무 아래

말 한 마리가 묶여 있었어요.

물을 마시고, 풀을 뜯으며 머물고 있었죠.


그 순간

엘리는 움직일 수 없었어요.


말의 모습을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히고

무릎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눈물이 이유도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그 말은, 바로

피코였어요.


늘 함께했지만

끝내 지켜내지 못했던,

하지만 마음 깊이 각인된 그 존재.


잊고 있던 모든 감정이

차원을 건너 밀려왔고

엘리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어요.


피코는 천천히 다가와

그녀 곁에 앉았고,

엘리는 피코를 꼭 끌어안은 채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어요.




EP.9 정원 끝, 작은 대화


소녀: “다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왕 : “언제든. 네가 원한다면."

소녀: “그럼, 만약 내가 기억을 잃으면요?"

왕 : "그럴 리 없어. 넌 항상 웃으며 여기 있었으니까."

요요: "꽃은 햇살이 있어야 피잖아. 그늘에 오래 있으면 웃는 법도 잊게 되는 법이지."

9화삽화.png 성 위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