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하우스 지붕 위로 꽃잎들이 떨어졌어요.
엘리는 피코를 품에 안은 채
방 안을 둘러보았어요. 이상했어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조차
이 방에 닿으면
색을 잃고 회색으로 변해버리는 것만 같았어요.
목재 가구의 갈색도, 침대 시트의 흰색도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모든 빛을 빨아들여
회색 물감으로 바꿔버린 것처럼요.
천천히 걸어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어요.
책상 위에 놓인 편지 봉투가 눈에 띄었어요.
엘리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어요.
오래된 편지에서 먼지가 일어났어요.
사랑하는 나의 소녀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화려한 성은 내게 감옥과도 같았단다. 금빛 왕관 아래, 나는 늘 고개를 숙인 채 살았고, 충성을 맹세한 신하들조차 끝내 내 뜻을 거스르며 나를 배신했지....
엘리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이곳이 왕의 방이라는 것을요.
그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침대 시트를 쓸어내렸어요.
그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지가 느껴져서
가슴이 저려왔어요.
결투의 그날, 쓰러진 내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고, 나의 충직한 말만이 내 옆에 있었지.
엘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어요.
여전히 자신의 곁에 바짝 붙어 있는
피코의 온기를 느끼며
그 따스함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오직 너만이 내게 진심 어린 미소를 선사했고, 네 작은 버섯집만이 내 영혼의 안식처였어. 다시 네 집 앞에 서지 못한 것이 내 평생의 후회로 남는구나.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이 늦은 고백과 함께, 내 마지막 숨을 네게 바친다.
그런데 이상했어요.
이곳에 와서 왕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 어딘가가 묵직했고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그러니까 두근거림이나 설렘 같은 건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요.
심지어 그 따스했던 버섯집 안에서도요.
엘리는 자신이 아직 모르는 둘만의 일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었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때는 왕관도, 성벽도 없는 곳에서
그저 우리이기만 한 채로.
영원히 너를 사랑하며... 마이클이 나의 엘리에게
...
"엘리? 엘리라고?"
숨이 멎는 듯했어요. 그리고 세계가 멈췄어요.
그녀의 이름이 편지 속에,
사랑의 끝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요.
그때, 빛이 쪼개지듯 세계가 다시 갈라졌어요.
눈꺼풀 너머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엘리는 눈을 꼭 감았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이대로
그저 깊이 잠들고 싶었어요.
햇살, 빵 냄새, 그리고 차향.
테이블 위엔 찻잔이 두 개 있었어요.
엘리가 웃으며 문을 열었어요.
"어서 와요." 엘리가 말했어요.
"여기 오면... 숨을 좀 쉬는 것 같아.” 그가 대답했어요.
"여기선 그냥, 마이클이에요." 엘리가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어요.
햇빛이 그들의 손끝 위로 내려앉았어요.
오랜 긴장이 풀리고,
두 사람의 얼굴엔 진짜 웃음이 번졌어요.
꽃을 따고,
강가에서 장난을 치고,
별이 뜨면 함께 걸었어요.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었어요.
그 눈빛 하나로 충분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오지 않았어요.
엘리는 그날처럼 찻잔을 닦고,
문 앞을 쓸고,
그의 자리를 비워두었어요.
그렇게 며칠이, 또 며칠이 흘렀지만
끝내 그는 오지 않았어요.
엘리는 잠에서 깨어났어요.
다시 티하우스였어요.
테이블 위에는 찻 잔이 두 잔.
그 모습을 보고 엘리는 쓴웃음을 지었어요.
바람이 커튼을 밀어 올렸고,
민들레 씨앗들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어요.
엘리는 느릿하게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Mr. GreenHand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버섯집에서 마이클을 기다렸던 것처럼,
엘리는 이제 티하우스에서
누군가를 혹은 어떤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막연히요.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엘리는 피코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피코, 너무 고맙고 사랑해.”
바람이 불었고,
티하우스 지붕 위로 꽃잎들이 떨어졌어요.
엘리는 피코를 품에 안고
천천히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어디선가,
희미하게 마이클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어요.
엘리...
EP.11 정원 끝 짧은 대화
엘리 : (눈을 감은 채) "그냥 이대로 있고 싶어."
피코 : "그렇게 있으니까 좋아?"
엘리 : "응. 아무것도 안 보여서 좋아."
피코 : "근데, 너. 울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