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복강녕, 오래 살고 복되며 건강하고 평안함

by 바보

내가 기억하기로는 늘 병상에 계셨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100세를 코앞에 두셨으니 오래도 사셨다 싶지만 수십 년을 병상에서 보내셨기에 이를 축복받은 삶이라 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수무강'은 한없이 오래 사시기를 기원하는 말인데 의학의 눈부신 발전의 부작용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수년 수십 년을 연명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에 이보다는 '무병장수'나 '수복강녕'이 현대사회에 적합한 인사란 생각을 했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뒤집어주고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으로 번갈아 몸을 닦는 일이 주된 일과였던 할머니를 자녀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라도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 하셨는데 진심이라 믿기 어려웠다. 처음엔 몸을 가누기 힘들다 나중에 가서는 정신도 혼미해져서 말을 거의 할 수 없게 되셨다. 처음엔 짧은 소통만 가능하다 나중에는 신음인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웅얼거림인지 알 수 없는 힘없는 소리만 내다, 나중에는 그 힘없는 소리마저 사라지고 긴 침묵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여느 때와 같이 몸 구석구석을 수건으로 닦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또렷한 목소리로 말 한마디를 하셨단다.

"왜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해."

이 말이 할머니는 그렇게 좋았단다. 그 말이 너무 좋았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제야 나는 할머니의 진심을, 그리고 신화나 망상으로 여겨지는 영원한 사랑의 실재를 믿게 되었다.


할머니가 보기에는 똑같은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은 때가 되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퇴원해도 좋다 했다. 할머니 귀에는 때가 되었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할아버지와 함께 집에 가도 좋다는 말만 들리셨나 보다. 할머니는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시장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입힐 새 옷을 장만하셨다. 날이 풀리면 할아버지에게 새 옷을 입히고 함께 동네 산책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유난히 춥던 날 할아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너셨고, 초봄처럼 날이 풀려 산책하기 좋은 날 발인했다.


김춘수 시인은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했다.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의미가 된 두 분의 삶은 비록 수복강녕은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했다. 숨이 멈춘 할아버지의 얼굴을 감싸 안고 세상을 다 잃은 듯 서글피 우는 할머니의 모습이 한없이 슬프고 또 아름다워 보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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