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겉절이로 있을 순 없지 않나.

by 바보

연애편지는 사랑을 갈구할 때 써진다. 연애할 때 받았던 절절한 연애편지를 10년 20년이 지나서도 기대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일 게다. 물론 사랑이 식어서 혹은 사랑이 변해서일 수도 있다. 영원하기를 꿈꾸지만 실은 식을 수도 변할 수도 있는 게 사랑인 것을 어쩌겠나. 하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랑이 변질되지 않은 채 좋은 관계를 꾸준히 유지한다 해도 절절한 연애편지는 기대할 수 없단 말이다.


편지 귀퉁이에 눈물자국이 선명한 격정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는 봄의 벚꽃, 여름의 매미소리처럼 그때이기에 가능한 또 그때이기에 자연스러운 존재다. 상상해보라. 겨울인데 벚꽃이 만개하고 매미가 맴맴 거리고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불혹의 나이에 성장통이 시작되고 여드름이 뽀록 뽀록 솟아오르는 모습을. 내가 아무리 벚꽃을 좋아하고 매미소리를 좋아하지만 그것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그 시간을 벗어나 흰 눈과 함께 흩날리는 벚꽃잎과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상상만으로도 괴기스럽다. 그리고 불혹의 나이에는 성장통이 아니라 관절염이, 여드름이 아니라 뾰루지와 검버섯이 자연스럽지 않겠나.


감수성은 어떠한가? 당신의 감수성은 한결같은가? 햇살이 아프던 그 시절의 감수성을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가짜다. 나의 젊은 날의 감성을 표절하는 게다. 그러니 우리 중년의 남자들에게 한결같기를 강요하지 말자. 궁지에 몰린 남자는 표절과 전쟁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 기꺼이 표절을 선택하는 남자를 꿈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차라리 전쟁이 낫다 생각한다. 다툼으로 상처가 날 수 있어도 언젠가는 아문다. 하지만 표절의 말로는 관계의 종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절을 선택한 한 남자를 상상해보자. 자신의 마음에 없는 말들로, 또는 마음에는 있지만 과장해서 표현할 때 진실된 마음과 표현된 글 사이의 괴리를 그 남자는 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근원적인 의문이 싹튼다. '내가 왜 과장해서 글을 쓰지? 왜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있지? 내 마음에 사랑이 없는 건가?', 이 의문이 뿌리를 내리면 급기야 '내가 사랑하기는 했던 걸까? 사랑이 없는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가? 표절보다 전쟁이 낫지 않은가?


나를 비롯한 중년의 남성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중년의 여성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관계에서 얻어지는 행복의 과실을 남김없이 수확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배려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면 의도하지 않은 다툼을 야기한다. 그래서 뜨겁게 사랑할 때처럼 사랑받지 못함에 서운한 중년의 여성들이 이 글을 읽고 중년 남자의 마음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한결같지 않은 남편의 행동을 보고 서운한 마음이 들 때 '한결같지 않음이 자연스럽다'는 문장을 떠올리면 좋겠다.


사람은 변한다. 체형도 변하고, 머리 색깔도 변하고, 머리숱도 변하고, 몸무게도 변하고, 피부결도 변한다. 성격도 변하고 행동도 변한다. 감수성도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 남녀 간의 관계도 변한다. 그리고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늘 겉절이만 먹고 싶은가? 갓 담근 김치의 맛이 시간이 변해도 늘 한결같기를 바라는가? 갓 담근 김치 맛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양념과 배추의 맛의 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김치는 숙성되고 어떤 김치는 상한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썩지 않고 잘 숙성되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밤낮으로 살피는 일이듯이 사랑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이러해야 한다. 맛있게 익어도 서운하고, 상하면 더 서운한 인생이라면 도대체 언제 행복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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