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 정답 고르기를 멈추지 못하나?
매년 11월, 대한민국은 40만 명의 수험생이 풀어내는 정답지 위에서 거대한 침묵의 의식을 치른다. OMR 카드에 새겨진 정답의 개수로 한 세대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이 제도의 반석을 이루는 단어는 단연 '공정성'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객관식 단일 시험이라는 형식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 기원은 명확하다. 학력고사 이전, 대학별 본고사가 횡행하던 시절의 불투명성과 부패에 대한 사회적 염증이 그 배경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험지, 동일한 정답, 동일한 채점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사람의 개입'이라는 불안 요소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약속. 그것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최악을 피하기 위한' 절차적 공정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그 단단해 보였던 공정성의 성벽에 난 균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수능이 보장하는 공정은 '시험장 안'에서만 유효하다. 시험지를 받는 순간의 평등은,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불평등했는지를 가리는 허울 좋은 막이 되었다.
오늘날 사교육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지식이 아닌 '정답을 찾는 기술'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역추적하고, 선택지를 효율적으로 소거하며, 킬러 문항의 패턴을 암기하는 전략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비기가 아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패키지 상품이 되어 특정 계층에게 독점적으로 제공된다. 이는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절차의 동일함'이 어떻게 '결과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결국 모두가 같은 문제를 푼다는 사실은, 누군가는 정교하게 튜닝된 레이싱카로, 누군가는 낡은 자전거로 경주에 참여하는 현실을 외면하게 할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공정의 참모습인가?
우리가 '정답 고르기'의 효율성에 매몰된 사이, 세계의 교육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어떤 나라의 입시 제도도 완벽하지 않다. 미국의 에세이와 추천서 제도는 고액 컨설팅과 스펙 경쟁이라는 또 다른 불평등을 낳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특정 계층에 유리한 문화적 편향성을 지적받는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평가가 지향하는 '질문'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들은 불완전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학생의 고유한 생각, 비판적 사고력, 문제 해결 과정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무엇을 아는가?"를 넘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다. 이들의 고민은 '정답 채점'의 편의성이 아니라 '미래 인재상'에 맞춰져 있다.
반면 우리의 수능은 여전히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과 평가가 측정하는 능력 사이의 간극을 넓히고 있다. 세상은 정답 없는 문제에 부딪혀 협력하고 대안을 찾는 인재를 원하지만, 우리는 5개의 선택지 중 가장 안전한 답을 가장 빨리 고르는 훈련에 미래를 걸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수능을 폐지하고 서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40만 명의 답안을 어떻게 공정하게 채점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타당하며, 교사의 주관성 개입에 대한 국민적 불신 또한 현실이다. 그러니 변화에 대한 공포는 지극히 합리적이라 하겠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급진적 혁명이 아닌,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전환을 위한 로드맵이다.
(단기적 처방) 하이브리드 모델의 도입 : 우선 국어, 사회탐구 등 일부 과목에 한해 전체 배점의 10~20%를 단답형 및 짧은 서술형 문항으로 배정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채점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학생들이 암기를 넘어 자신의 생각을 글로 구성하는 훈련을 유도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기적 투자) 평가 인프라의 구축 : 국가 수준의 평가 전문 기관을 강화하여 서술형 문항 개발과 채점 기준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 역량 강화 연수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AI 채점 보조 시스템과 같은 기술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채점의 객관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장기적 비전) 교육 철학의 전환 : 궁극적으로 단 한 번의 시험이 아닌, 고교 3년간의 학습 과정과 성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평가 권한을 존중하고, 학교생활기록부의 신뢰도를 회복하며, 교육 현장에 대한 사회 전체의 깊은 신뢰를 쌓아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마주한 선택은 '절대적으로 공정한 수능'과 '혼란스러운 서술형 평가'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안정'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정답을 고르는 능력으로 미래를 평가하는 나라는, 결국 정답이 정해진 길만 따라가는 사회가 될 뿐이다. 이제는 익숙한 정답지를 내려놓고,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그 여정을 여는 첫 번째 질문을 해본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