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경남 통영 출신이다. 현재 통영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 어릴 때 부모님 따라 통영 가면 거친 억양의 사람들이 무뚝뚝하게 대해줬던 기억이 난다. 큰 어머니가 밥을 차리면, 큰 국그릇에 고봉밥을 주신다. 통영식 나물은 고춧가루가 없이 하얗게 소금이나 간장으로만 무친 거다. 거기에 조갯살을 넣은 두부국을 붓고 비벼서 한 그릇씩 배부르게 먹었다.
통영의 나물은 6-8가지종류의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데 바닷가라는 점 때문에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많이 쓰는데 보통 호박, 박, 시금치, 미역, 고사리, 도라지에 조갯살을 넣어 만든 것을 기본으로 해서 콩나물과 톳을 더하기도 합니다. (출처 : http://bluetaipei.egloos.com/v/1796062)
이런 음식 위주여서 우리 집 식구들은 배가 크다. 부모님 두 분 다 소화력이 좋으시고 많이 드신다. 작고 귀여운 밥그릇은 우리 집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친구 집에 가서 예쁘게 담아 먹는 걸 보고 그릇을 사들였다. 하지만, 식습관은 큰 국수대접에 밥을 넣고 비벼먹는걸 젤 잘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먹다 보니 화섭 씨의 식습관도 많이 빨리 먹는다. 반찬이 없어도 큰 국수대접에 밥을 담아 케첩을 찍 둥글게 둥글게 뿌려서 콧노래를 부르며 비벼 먹는다. 밥솥에 밥이 없으면 어설픈 손동작으로 쌀을 씻는다. 개수대에 쌀알 몇 개는 버리면서. 밥을 한 솥 터질 듯이 한다. 대접 비빔밥을 먹기 위해.
그릇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변화가 쉽지 않다. 어느 날, 의사가 진행하는 유튜브에서 한국인들은 빨리 많이 먹어서 많이 아프다고 한다. 지난여름, 엄마와 이시형 박사님이 만든 힐리언스 선마을에 가니 모래시계 30분짜리를 놓고 천천히 먹는 훈련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모래시계 30분짜리를 주문했다.
식탁에 두고, 밥을 먹기 전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화섭 씨에게 설명을 해준다.
"이 모래가 다 떨어질 동안 밥을 먹는 거야. 일찍 먹지 말고, 얼마나 떨어졌는지 보고 천천히 먹어."
도구를 쓰는 걸 좋아하는 화섭 씨는 알겠다고 한다. 한 식탁에서 다 같이 밥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몇 번 자기 방에서 화섭 씨를 불러냈더니 인심 쓰는 척 나와 같이 먹어줬다. 하지만, 중간 정도 먹으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습관이 쉽게 안 바뀔 테니 이제 들어가 먹으라고 해줬다.
그런데, 모래시계를 놓고 처음 밥을 먹은 날 자기 대접과 모래시계를 같이 챙겨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고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규칙을 한번 정해주면 지키려는 화섭 씨. 빨리 먹어도 많이 먹어도 되니 아프지만 말아다오. 좋아하는 것을 먹을 때 콧노래를 부르니, 잔소리를 하기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