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명리학 팟캐스트를 들으면,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로 해가 뜰때 일어나 아무 할일이 없어도 밖에 나가 돌아다니고 해가 지면 들어와 일찍 잠을 자라는 해법을 제시할 때가 많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니 만물이 시작하는 일출시간에 같이 행동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휴식의 기운이 천지에 퍼지니 그때에 맞춰 쉬라는 뜻이다.
이런 사이클을 지키지 못하고 사는 현대인들이 있다. 밤문화에 취해 늦게 술을 마시는등 놀다가 늦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직종들도 많다. 이런 생활이 오래될 경우 몸에서 탈이 날 수 있다고 경고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이론에 비추어 보면 화섭씨는 해가 뜬 후 항상 외출을 한다. 평일에는 출근을 하고, 휴일에는 서점이나 본인이 가고 싶은곳을 간다. 화섭씨와 어딜 같이 가면 어떻게 목적지에 갈건지 물어본다. 지하철은 장애인 할인으로 공짜지만, 마을 버스 등은 교통카드가 필요하다. 버스를 몇번 탈거니 요금이 얼마 들건지 미리 계산해서 교통카드에 충전해 두어야만 한다고 한다. 준비성이 좋구나 싶어서 한번은 용돈 겸 해서 요금보다 돈을 더 준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충전기 앞에 서니 잔액이 뜨는데 21만원이라고 뜬다.
"왜 이렇게 잔액이 많아?"
"경품응모해서 당첨된 포인트를 교통카드에 모아둔거야."
"그런데 왜 지금 안 써?"
"이건 모두 내년에 쓸거야."
하루도 외출을 빼먹지 않는 화섭씨에겐 교통카드의 잔액을 관리해서 내년 예산을 확보해두는게 중요한 일이었다. 포인트가 생기는 내내 족족 써버리는 나하고는 완전 다른걸? 우리집 남자들이 대체 짠돌이 기질이 있는데, 화섭씨에게도 그 유전자가 있는것 같다. 앞으로는 충전요금을 후하게 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때 화섭씨는 툭하면 밖으로 나가 없어지곤 했다. 미아보호소도 수차례 오고갔다. 엄마는 이런 화섭씨를 집에 가두지 않았다. 언젠가는 스스로 외출을 해서 살아가야할걸 예상해서 멀리 있는 복지관도 혼자 보내셨다. 처음에는 잘 가는지 뒤에서 미행도 했는데 길눈 밝은 화섭씨는 잘 찾아가더란다.
국민학생때부터 그렇게 혼자 외출하는 화섭씨는 말띠라 그런지 지금도 아침에 눈뜨면 나가 저녁에 귀가하는 일상을 하루도 어기지 않는다. 집에 하루 종일 있는적은 거의 없다. 마치 매일 들판에 나가 논밭을 경작하는 농부처럼 해를 따라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온다. 그래서, 화섭씨는 건강한것 같다.
1990년대 말, 내가 마라톤을 했을때 화섭씨랑 같이 조깅을 한적이 있다. 2000년에 내가 마라톤을 중단하고, 걷기 대회에 간혹 나가기도 했다. 가장 사랑하는 걷기 대회는 캐나다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테리팍스 Fun Run이었다. 많은 대중들이 참여하도록 5km를 걸으면 푸짐한 사은품을 줬다.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캐나다인과 진귀한 외국견들도 나와 이국적인 풍경을 주는 서울내 행사였다. 그때 화섭씨도 데리고 가면 걷는것을 싫어하지 않고, 끊임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걷는다.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는게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주제가 경품응모와 글쓰기로 바뀌고 좀 더 다채로워져서 대화의 질도 업그레이드 되었다.
화섭씨가 혼자 외출을 하고, 어디를 가든 지도앱을 보고 집에 잘 찾아오는 능력이 있다는걸 알고 내가 만난 몇분의 장애인 어머님들은 놀라워하셨다. 모두 그런건 아니지만, 발달 장애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제한된 공간에만 있다보니 스스로 목적지에 가거나 집에 돌아오는 능력이 덜 발달된 친구들도 봤기 때문이다. 제한된 공간안에 있으면 일반 사람들도 답답할텐데, 힘들어 하는 친구들도 있고. 우리 엄마가 화섭씨를 세상에 내보낸 용기는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것 같아. 그때의 습관이 현재 건강한 화섭씨를 만든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5km정도의 재밌는 걷기 대회를 화섭씨와 같이 나가고 싶다. 다른 친구들도 부르면 재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