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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Sep 07. 2024

무계획 퇴사자는 이직 면접 안 보고 퇴사한다?

아뇨, 오히려 대기업 이직 면접 다 떨어지고 퇴사를 결심했어요.


무계획 퇴사 전, 교육담당자로 12년 넘게 근무했다. 입사초부터 이 업무를 평생 할 수는 없겠다 생각하면서도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 대기업이라 급여도 나쁘지 않았고, 대기업인데 워라밸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회사는 돈벌이 수단이었다. 퇴근 후에 더 바빴다. 직무 전문성을 살리기 위한 자기 계발보다는 회사 밖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글쓰기, 이모티콘, 유튜브, 사이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니 시간은 순삭 됐다.


커리어 욕심은 없었지만 이직은 계속 시도했다. 현재 회사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때나 더 나은 처우를 위해 찾는 탈출구였다. 절실하지는 않았기에 적극적인 시도는 아니었다. 대부분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을 때 지원하는 수동적인 형태였다. 회사도 카카오, SK, 신세계, 롯데 등 굴지의 대기업만 골라서 지원했다.


운이 좋게도 모두 서류를 통과했다. 1차 면접도 곧잘 통과했다. 그리고 이들 중 가장 최근에 본 면접에서 탈락 문자메시지를 받은 날, 퇴사를 결정했다. 현 회사에서 이직과 퇴사 이후 삶에 대한 준비를 병행할 수 있음에도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4년간 최상위 대기업 다섯 군데의 면접을 보고 탈락하며 느꼈던 한계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면접관의 물음에 “저는 석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산업군 직원들의 성장을 지원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OO사에서도 기여하고 싶습니다.”라고 멋쩍게 대답했다. HRD 특성상 석사인 교육담당자는 널린 데다가 박사도 발에 채는 상황에서 ‘석사는 하지 않았지만…’이라는 말이 내가 생각해도 궁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탈락이었다. 이때 적당히 연명하는 것으로는 이제 힘들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내가 이직을 하고 싶은 좋은 자리는 10년간 직무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직무에만 집중해 치열하게 살아내 온 사람의 자리였다.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겠구나.'라는 판단이 들었다. 15년, 20년 차가 되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10년 차 이상이 되면 성의 있는 노력을 통해 전문성 확보하지 않으면 상향 이직은 어려웠다. 이직을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했다. 이대로의 나는 경쟁력이 없었다.


이직에 성공하려면 이직 시도도 계속해야 했다. 이 행위 자체도 너무 힘들었다. 퇴근 후 밥도 챙기고 운동도 하고 글도 써야 했는데 늘어난 짐짝이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일이라 더 힘들었다. 영혼 없이 경력기술서를 고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는 게 내키지 않았고 부담이었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그 좌절감 또한 며칠은 갔다.


그럼에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직을 도전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오히려 미련 없이 퇴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일로 더 먹고살 수 있을까? 이 일로 더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내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평생 업을 삼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도전한 이직이라 몇 배는 괴로웠지만 남는 게 많았다.


나는 지금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5년 뒤에도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5년, 아니 1년 뒤에도 하기 싫은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조건으로 눈을 낮추기도 싫었다. 커리어에 욕심이 없다고는 했지만 현재 회사에서도 새로운 일을 계속 벌이며 나름대로는 성장을 챙기고 있었다. 교육 업무에서 회사 규모는 업무 퀄리티와 성장 기회와도 같은데 탈출을 위해 더 안 좋은 조건으로 향하는 것은 제살 깎아먹기였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직무에서 성장하려는 의지에 비해 직장인으로서 회사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높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노력한 것에 비해 더 좋은 처우만 바라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탈락 문자 수신과 함께 퇴사를 결정했다.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나와 맞는 일, 재미있는 일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또렷해졌다.


역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편이 낫다. 퇴사를 고민하는데 망설여지는 분이 있다면 지금 현재 직무로 이직부터 도전하는 것부터 행동하시기를 추천한다. 잘 되면 연봉이 올라가고 잘 안 돼도 내 앞길 가는 데 깨달음을 준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이직 시도는 성공해도 이득, 실패해도 이득인 몇 안 되는 행동이었다. 백익무해다.



면접대기실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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