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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Sep 24. 2024

30대 후반이 무계획 퇴사할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핸드폰으로 글을 쓴다고요?


5년 전,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님이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써 내려가기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강제로 꾸준히 쓰려고 내 눈에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거기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회원이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쓴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각 잡고 써도 한 줄 써내려 갈까 말까였기 때문이다. 내게 글 쓰는 일은 세상에서 최고로 힘든 일이었다. 다이어트보다도, 새벽 요가보다도 어려웠다.


글쓰기 모임의 연말파티,,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밌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핸드폰으로 글을 쓴다. 지하철에서도 쓰고 카페에서도 쓰고 심지어 허리가 아프면 누워서 소파에서 쓰는 날도 많다. 글 쓰는 일이 더 이상 최고로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모임에서 일주일에 글 하나 제출하는 일이 너무나도 부담이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하나 거뜬하다. 5년을 낑낑대며 뭐라도 쓰고, 중간에 안 썼다가도 다시 또 쓰고를 반복하니 글쓰기가 수월해진 것이다.


글 쓰는 일이 쉬워졌다는 것은 잘 쓰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애석하다. 그 회원도, 나도 작가처럼 잘 쓰지는 못한다. 정말 말 그대로 수월하다. 그러나 쉬워졌다는 것을 얕볼 순 없다. 계속, 많이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잘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쓰다 보면 실력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실제로 5년간 계속 쓰니 조금은 늘었다. 무엇이든 쉽게 흥미가 떨어져 금방 그만두는 내게 5년을 지속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짐작해 본다.


30대 후반 무계획 퇴사를 지르게 만들 수 있었던 자신감은 단연코 글쓰기가 ‘쉬워진’ 덕분이라 말할 수 있다. 글은 단순히 글 자체만 의미하지 않았다. 글은 모든 콘텐츠의 뿌리였다. 글을 유튜브 대본으로 바꾸어 낼 수 있었고, 글을 쓰다가 발견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살려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콘텐츠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과 같았고 내 생각과 개성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동안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글 쓰는 일이 어려워서였다. 더 근본적으로는 콘텐츠 만드는 일이 어려워서일 테다. 하나를 만들어 내기도 힘이 드는데 얼마나,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어느 세월에 영향력을 얻을까 싶었던 거다. 회사를 그만뒀는데 콘텐츠 만드는 일까지 그만두면 그것은 진정한 백수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앞으로 어떤 콘텐츠든 계속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을 콘텐츠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확신은 베팅을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커졌다. 1년 안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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