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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Sep 26. 2024

퇴사하면 폐인이 된다? (feat. 퇴사자 루틴)

게으른 퇴사자의 루틴은?


 고백하자면 나는 게으른 편이다. 밖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누워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회사에 다닐 때에도 휴일이면 정오 즈음 느지막이 일어나기에 브런치보다는 저녁 약속을 선호했다. 별일이 없으면 종일 시체처럼 유튜브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나 자신을 잘 알기에 평소에는 각종 학원이나 스터디, 스포츠 센터 등 강제로 밖에 나갈 일을 만들어두곤 했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내가 게으른지 잘 모른다.(맞나? ㅎㅎㅎㅎㅎ)


 그래서 퇴사 이후의 삶이 더 걱정됐다. 하고 싶은 게 많아 퇴사한다고 으름장을 냈지만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내 모습이 어떨지 반신반의했다. 학교도 회사도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은 처음이다. 퇴사한 뒤 게으른 내 하루는 어떻게 될까? 대학교 방학 때는 밤낮이 바뀐 삶을 살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나조차 나를 믿지 못했다.


 퇴사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우려와는 다르게 폐인은 아니다. 밤새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느라 밤낮이 바뀌진 않았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루틴이 자리 잡았다.




1. 8시 ~ 8시 30분 : 기상

 회사에 다닐 때와 다르게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것은 여전하다. 좀 더 자고 싶지만 스스로와 약속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이 시간에는 일어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그 힘듦의 정도가 덜하다. 회사 다닐 때보다 1시간은 더 늦게 일어나기에 내게 맞는 수면 시간에 더 가까워졌다. 나는 야행성이다.

 회사원일 때와 달라진 점은 아침에 청소를 한다는 점이다. 매일 화장실 물청소를 1분 동안 한다. 무척 짧은 시간이지만 예전에는 이조차 할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던 것도 컸다. 이후 방도 간단히 청소하고, 밀린 설거지가 있으면 한다. 깔끔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2. 9시 전후 : 책상에 앉아 커피를 내린다.

책상에 앉아 핸드드립 커피를 마신다. 그라인더에 원두 20g을 직접 갈아 종이 필터에 내린다. 카페에 가는 대신 대부분 집에서 작업하기에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신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집에서 캡슐 머신을 이용했다. 그런데 캡슐은 아무리 신경 썼다는 제품을 사도 맛있진 않다. 그래서 맛있는 원두를 갈아 내려 마신다. 내린 커피에 MCT 오일 한 큰 술을 넣어 마신다. 간헐적 단식 시간을 지키기 위해 공복시간을 조금 늘려본다. (커피에 대한 내용은 글을 하나 별도로 작성할 예정입니다.)


3. 9시 30분 ~ 11시 : 1차 허슬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공부를 한다. 그때그때 급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한다. 가장 정신이 맑은 아침에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시도해 보는 중이다. 그 말이 맞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해봐야 알 것 같다.


4. 11시 전후 : 아침식사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13시에 운동을 가야 하고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기도 버거우니 간단히 먹는 편이다. 삶은 계란 2개나 다이어트 빵 또는 그린 스무디 등으로 요기한다. 그리고 이어서 허슬을 한다.


5. 12시 ~ 15시 : 운동

월수금은 수영, 화목은 요가를 하고 있다. 나는 오랜 시간 집중하고 머리 쓰는 것이 힘들다. 중간에 한번 끊어줘야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점을 알았다. 그래서 중간에 몸 쓰는 시간을 넣었다. 운동은 13시부터 14시에 한다. 수영을 하려면 샤워도 하고 수영복도 갈아입어야 하고 준비물과 세면도구 등 챙길 것이 많다. 12시 15분 정도부터 준비를 해서 여유 있게 도착한다.


6. 15시 ~ 16시 30분 : 점심 먹고 뭉그적

운동을 하고 씻고 집에 걸어오면 15시 정도가 된다. 집에서 해 먹든 밖에서 사 먹든 점심을 먹고 좀 쉬다 보면 16시가 넘어 있다. 특히 수영에서 새로운 영법을 배우면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체력적으로 힘들어 뻗기도 했다. 이 시간을 버리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강박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면 번아웃이 올까 봐 아직까지는 그냥 여유 있게 지내려는 편이다.


7. 16시 30분 ~ 19시 : 2차 허슬

하던 허슬을 이어간다!


8. 19시 ~ 20시 30분 : 저녁식사

저녁은 웬만하면 직접 해서 먹으려고 한다. 안 하던 요리를 시작했다. 자립에 꼭 필요한 것이 요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건강한 식단에 관심이 많아서 동기부여도 된다. 저속노화 식단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가공식품을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요리하는 것을 유튜브 쇼츠로 찍어서 올려 보고 있다. (요리에 대한 내용은 별도의 글로 올릴 예정입니다.)


9. 20시 30분 ~ 23시 : 3차 허슬

요리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하거나 이전에 허슬 했던 내용을 이어간다.


10. 23시 ~ 23시 30분 : 취침

가능하면 23시 이전에 자려고 노력한다. 22시부터 피부재생이 된다 하여 가속 노화를 막기 위해 ㅠ 일찍 자려고 노력하는데 허슬을 계속하다 보면 이 시간을 넘길 때가 많다. 그래도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에는 자기 아쉬워서 더 늦게 잤는데 요즘엔 자기 전 아쉬운 마음은 없는 것 같다.

대신 내게 맞는 수면 시간을 찾고 싶다. 깨어 있을 때 최대한 생산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현재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삶은 잠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게으른 사람이 자유인이 됐을 때, 의외로 폐인이 되지 않았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기준으로 루틴을 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잘 지킬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를 잘 알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수년간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며 죽 쒔지만 그 과정에서 어떨 때 내가 동기부여되고 움직이는지를 인지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나를 스스로 일으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본 과정이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의 실패가 헛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그 마음에만 집중하며 셀프 동기부여로 이 정도 생산성을 내는 지금이 만족스럽다.


 내 하루가 아직까지는 기대보다 생산적이진 않은 것 같다. 허슬을 할 시간에 샛길로 새기도 하고 무턱대고 쉬기도 한다. 중간중간 낭비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 내 의지를 써서 이 시간들을 줄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지쳐버릴까 고민이다. 이런 생활을 오랜 기간 이어갈 예정이기에 지쳐서도 안 되고 강제로 하는 느낌이 들어서 하기 싫어지면 안 된다. 그래도 순수한 생산의 시간을 8시간 정도는 확보하고 싶어서 여러 생각 중이긴 하다. 어떻게 할지는 조금 두고 보는 중이다.


 혼자서 생산의 삶을 지속해 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움을 실감한다.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은 더 어렵기도 하다. 그래도 먹는 것과 자는 것, 내 몸을 움직이는 행위들이 내 행동과 기분, 컨디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민감하게 캐치할 수 있다. 조금만 루틴이 달라져도 이후 루틴들이 도미노같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미처 몰랐던 나에 집중하는 삶이다. 이렇게 나를 알아간다.


요가 갔다 온 어느 가을날, 여유를 부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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