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씨앗, Keep it real

Keep it real과 Ghost writer

by 주드


여느 날처럼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늘 비슷한 흐름이었던 것 같다. 이것저것 고쳐야 할 부분을 피드백받고 있었다. “예예예예…” 예스맨처럼 피드백을 받아 적고 있었다. 그런데 팀장님께서 갑자기 내 생각을 물어보셨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직급이 ‘대리’가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리라고 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아직 잡일의 현역인 막내급이다. 막내 탈출의 기준은 간식 준비, 회의실 예약, 회식 장소 예약에 인볼브 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사원, 대리는 간식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는데 생각을 물어보시니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내 의견보다 회사와 상사의 의견을 앞세우는 것에 익숙했다. 결국엔 그 의견대로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번 상사의 의견대로 해야 하니 생각하는 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누적돼 ‘내 견해’이라는 것이 효용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상사와 회사의 생각이 바로 곧 내 생각으로 엎어치기가 된다. 분명히 내가 쓴 기획안인데 나는 없다. 개인은 사라지고 우리 팀의 어느 직급인 아무개 사원, 껍데기만 남았다. 회사에서 내 영혼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애초부터 내 생각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회사나 상사의 기준에 맞춰 생각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잘하는 직원이 회사에서 인정받는다. 결국 회사와 상사의 생각과 관점을 내 머리에 탑재하는 것이 중요했다. 피드백을 들으면 '네 알겠습니다.', '네 수정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말들만 반복하면 모든 일이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생존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힙합에서는 정 반대다. 힙합의 'Keep it real'이라는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힙합에서 자기 가사는 꼭 자기가 써야 하는 암묵적이지만 확실한 룰이 있다. 가사에는 ‘내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어야 한다. 갱스터 랩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래퍼 릭 로스는 과거에 교도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밝혀져 화제가 됐다. 릭 로스가 교도관 출신인 것을 처음 밝힌 기자는 총에 맞아 죽었으며 다른 래퍼와 리스너들도 릭 로스를 비난했다. 힙합에서 진심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큰 힘을 갖는다.


더 콰이엇은 ‘Keep it real’한 가사를 쓰다가 리스너들에게 볼멘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매번 같은 내용의 가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 재미있다. 그게 요즘 본인의 생활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몇 년째 차 사고 그 얘길 랩으로 하고, 차 바꾼 다음에 그 얘길 랩으로 하면서 살고 있는데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그건 힙합이 아니지 않냐”라고 반문한다. 차를 바꾼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차를 바꾸는 것이 힙합이다. 진짜 힙합 팬이라면 그 말을 듣고 반박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 또 힙합이다.


래퍼들은 자기한테 솔직한 것을 말해야 한다. 남들이 듣기 싫은 얘기라도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솔직하니까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는 것이다. 몰입이 자연스럽다. 가사를 쓰면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래퍼가 힙합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 아닐까. 래퍼들이 힙합 그 자체로 느껴지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Ghost Writer’라는 노래가 있다. 래퍼 랍티미스트의 노래다. 언더그라운드 래퍼가 다른 래퍼의 가사를 써주는 이야기다. 힙합에서 ‘Ghost Writer’는 특히 민감한 문제다. 다른 래퍼의 가사를 써주는 것이 범죄는 아니지만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래퍼 자체가 아닌 가사는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을 하면서, 기획안을 쓰면서 ‘Ghost Writer’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이 누구의 생각인지 자꾸만 반문하게 된다. ‘내 생각’이 있으려면 기획안에 진짜 내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매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내 생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Ghost Writer’에게 몰입은 없다.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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