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안 최최종과 오리지널리티

단점도 장점으로 만드는 오리지널리티

by 주드


모든 직장인의 폴더에는 공통적인 파일명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확장자도 아니면서 확장자와 유사하며 일정한 규칙을 띠고 있다. v1, v2,...v6 이나 진짜 최종, 최최종 따위다. 파일의 정체는 기획안이다. 직장인의 공통 업무 중 하나는 기획안 작성이다. 이름과 형태는 다르더라도 직장인이 만들어내는 것중 많은 것이 기획안이다. 그리고 이것을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 디폴트다.


몇 번의 기획안 보고 끝에 1차 상사에게 통과를 받고 안심한 적이 있다. 그런데 2차 상사에게 보고 후 돌아왔을 때 불상사가 일어났다. 피드백을 들어보면 최초 버전으로 다시 고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예전의 그 파일을 모르고 새 파일로 덮거나 지워버렸던 것이 기억났다. 순간 땅을 치고 후회한다. 기억에 의존해 첫 번째 파일을 복원한다.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입사원에게 직장 생활의 팁을 전해야 한다면 하나는 이것이다. 파일을 여러 버전으로 수정하더라도 예전 버전은 절대 지워서는 안 된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기획안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이 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보고 받는 분이 이해를 못 했다면 다시 써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 목적은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퇴색된다. 보고를 받는 상사나 중간 상사의 취향으로 목표와 내용이 바뀐다. 물론 파일을 수정하면서 내 기획안이 환골탈태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험상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렇게 고치나 저렇게 고치나 비슷하다. 최악의 경우는 원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이 과정을 거치면 애매한 기획안이 남는다. 개인의 뾰족한 개성이 담긴 최초 기획안은 최종안이 되어서는 누구의 아이디어나 기획안 인지도 모르게 된다. 출처가 불분명하다. 기안자이자 실무자는 본인의 아이디어가 퇴색된 기획안을 계속 생산하고 싶을까. 내가 쓴 기획안으로 떼돈을 번다고 해도 계속 찍어 내기 어려운 것이 바로 기획안이다. 그런데 기획안을 쓰지 않아도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이라면 그것을 계속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동기부여는 바닥을 치게 된다. 결국 영혼을 집에 두고 오는 직장인으로 시들어간다.


많은 회사에서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저성과자다. 저성과자 중에는 사고를 일으키는 직원도 있지만 생산성이 낮은 직원도 있다. 일을 안 하고 논다고 여겨지는 직원들이다. 이들이 저성과자가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놀라운 점은 고성과자가 저성과자로 돌변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변절(?)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 최최최종 파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가 지워진 기획안이 이들을 멈춘 것 아닐까. 이들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오늘도 힙합에서 한번 찾아본다.


힙합 하면 개성 있는 래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힙합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가 오리지널리티이기 때문이다. 타이거JK는 랩에서 리듬, 플로우, 운율, 메시지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자면 오리지널리티라고 말했다. 랩만 들어도 '이건 타이거 JK다'라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느낌은 랩톤에서도, 가사에서도 나올 수 있다.


힙합에서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직접 가사를 쓴다. 래퍼들은 개인으로 대중 앞에 서서 자기의 색을 더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개성이 확실할수록,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 주목을 받는다. 결국 고유성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티스트의 음악과 부는 자라난다. 물론 최근 하이어뮤직, 하이라이트레코즈 등 레이블 내 컴필레이션과 다른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작업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 협업 또한 개성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작업물 또한 레이블별 오리지널리티가 확실하다.


오리지널리티는 단점마저 생산적인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 타이거JK는 평소 단점이라고 여겨지던 것이 오히려 랩에서는 멋있는 스타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예로 래퍼 ‘메이스(Mase)’를 들었다. 메이스는 어릴 때 말투가 어눌해 놀림을 많이 당했다. 대인기피증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만의 랩 스타일로 만들고 대박이 났다. 단점도 오리지널리티로 만들 수 있는 것이 힙합이다.


그래서 래퍼들은 허쓸하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열심히 하면 단점마저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 것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동기부여다. 내가 하는 것이 바로 결과와 직결되기 때문에 허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퀄리티에도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과도 관련 있다. 자아가 실현된다는 성취감을 주는 것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긍정이 된다. 올라간 자존감은 또 다른 성취로 선순환을 이끈다. 생산적 시스템이다.


반면 회사에서는 여러모로 오리지널리티가 없어진다. 기획안뿐만 아니라 인성과 태도에서도 그렇다. 회사에서 이상적으로 생각되는 인간성이 명확하다는 것이 내가 8년 동안 느낀 점이다. 그 모습에 맞지 않으면 피드백이 뒷구멍으로 들어온다. 나는 내 개성을 그 이상적인 인간상에 맞게 잘라내야 했던 기억이 많다. 내 주위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장점 하나가 명확한 사람보다 두루두루 단점이 없는 둥글둥글한 사람이 더 좋게 인정받는 것 같다. 회사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부각돼 깎아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회사는 개성과 오리지널리티가 자취를 감추게 되기 쉽다.


힙합의 오리지널리티 개념은 기업의 환경에 도입해봄 직한 문화다. 수직적인 체계에 개인의 개성이 가려지는 곳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개인이 더 부각되게 하면서, 단점도 장점으로 만들면서 고성과자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상상해본다. 최최최종은 개인의 개성을 지우는 문화다. 물론 예술과 직장생활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성공적인 방법이라면 도입해봄 직하다. 특히 열정이 없다고 악명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를 움직이려면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좀 더 인정해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개성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될지 모른다.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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