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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Jul 21. 2020

나는 행정공무원이 아니라 교육공무원일 뿐인데,




적당히 튀지 않고 뭐든지 중간은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마 학교일지도 모르겠다.

교사라는 집단 속 사람들 말이다. 학창시절에 모난 구석 없이 얌전히 선생님 말만 잘 듣고 따라서 부모님이 바라는 적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 동화로 따지자면 <미운 오리 새끼> 속 다른 형제들 쯤 되려나. 너무 못나지도 않고 특출나게 빼어나지도 않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아무 갈등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탈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매번 깜깜해진 밤, 독서실에서 제일 마지막에 불을 끄고 나올 때마다 '하늘이시여, 나를 합격만 시켜주신다면 스카우트 대장을 시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혼자만의 서약을 했던 것이 떠오른다. 1차 필기 시험과 2차 면접 시험을 거치고 희망찬 마음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세상에, 서울 한복판에 있는 50학급이 넘는 학교에서 나 혼자 막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 교사들이 하나같이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것이었다. "선생님, 힘 내." 존대인지 반말인지 모를 그 문장을 선배 교사들에게 3월 내내 들으며, 겨우 '스카우트 대장'따위를 걸며 하늘에게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약속한 내 자신이 너무 가여워서 3월 내내 울어야 했다.


하늘이시여, 제가 꿈에 그리던 학교가, 직장인들한테는 이런 곳인가요?












 나홀로 막내인 생활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이 곳은 담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고사하고, 행정공무원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먼저 장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이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기피업무라고 말하는 '방과후업무'를 덜컥 맡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초과근무 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야근을 줄창 하는 나날을 보냈다. 자신의 업무를 갈기갈기 나누어주어서 '스트링치즈'라는 별명이 붙은 교무부장은 마주칠 때마다 밝게 인사를 하셨지만, 초과근무 결재를 올리면 온갖 이유를 붙여서 반려를 하셨다. 근무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을, 근무 시간 외까지 끌어오는 것은 초과근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놓고 웃는 얼굴로 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현장체험학습을 연간 5회 이상 해야하는 업무를 하나 더 얹어주셨다. 이런건 젊은 선생님이 해야 애들이 좋아하지, 라는 칭찬의 허울을 쓴 논리 빵점의 근거와 함께. 나는 거절하지 못해서 또 광광 울었다.





 교생 실습 시절, 나를 지도해주셨던 선생님은 그 당시의 내가 보기에도 과중한 업무를 떠안으며 (학년 부장 + 방과후 부장 + 영재원 팀장 + α) 매일 7시 퇴근 시간을 엄수하는 위엄을 보이셨는데, (교사의 정시 퇴근 시간은 4시 40분이다.) '칼퇴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 '나중에 발령받으면 남들보다 일을 하나 더 하려고 노력하라'는 등의 '행정가'스러운 조언을 듬뿍 해주시고 떠나셨다. 어리숙했던 나에게는 프로페셔널 해보이고 능력있어 보였지만, 지금의 내가 감히 돌이켜보자면, 그 선생님이 일을 잘해서 맡은 것이 아니라 일이 그 선생님의 능력을 만들어낸 것이었으리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교사는 '행정공무원'이 아니라 '교육공무원'이긴 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초임인 나에게 학교에서는 '평균적으로' 많은 행정 업무를 부여했고, 그것은 내가 일을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서라기 보다는, 결혼하지 않고 신체 건강한 저경력 교사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트링치즈'라는 딱지가 붙은 교무부장은 재작년에 이 학교를 떠났고,

 젊은 사람은 원래 그런 거라며, '라떼는 말야'를 시전하시던 교장선생님도 작년에 퇴직하셨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 연가를 살포시 반려하시던 교감선생님도 다음 학기에는 승진하셔서 이 학교를 떠난다.


 하지만 맡은 업무의 크기가 호봉에 반비례하는 이 세태, 그리고 교사가 아이들과의 수업보다는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이 어이없는 구조는 소위 말하는 '관리자'들이 바뀌어도 절대 바뀌지 않는, 만고불변의 거지같은 진리였다. 그리고 그 진리가 쌓여 꼰대를 만들고, 부조리한 학교 업무 체계 시스템을 만들고, 태만한 교육을 만든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건 바로 교사들이 <미운 오리 새끼> 속 무난한 형제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크게 모나지도, 크게 우월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Lesson 1, 바꿀 수 없다면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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