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발 담그면나만 손해래.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주변에 이렇게 능력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다니. 가까이는 학교 업무에 능해 승진까지 하이패스로 달리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더 나아가서는 외부 강의를 다니거나, 아이들 대상으로 영화를 찍어 영화제에 출품을 한다든가 하는 등의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선생님이 도처에 계신 것이다. 그런 선생님 주위에 있는 나는 행성 주위를 휘휘 맴도는 소행성 1쯤 이나 되려나. 물론 이 직업 자체에 만족을 하며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소임을 다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긴 한다만….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교직 사회 속에서 안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만만했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살다가는 나도 결국 <미운 오리 새끼> 속 형제1로 전락하게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학부 졸업하자마자 대학원도 가고, 영상을 배우고 싶어서 교원 학습공동체에 들어가 영상 편집을 배우고, 공영방송에서 온라인 강의도 찍었지만, 나라서 필요한 일이었다기보다 우연히 들어온 일에 내가 우연히 부합한 느낌이 더 컸다고나 할까. '나라서 필요한 일'에 쓰이고 싶은 성취욕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배교사 A와의 티타임 때였다. 초임인 내가 힘겨워할 때 적절한 조언을 가득 해주신 고마운 분이었는데, 그만큼 A 선생님도 대외적인 일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쉬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A 선생님은 내 고민과 내가 해온 일에 대해 차분히 듣더니 말씀하셨다. '이것저것 많이 했네.'
그건 마치, '이것저것 많이 해서 기특하다'의 느낌보다는, '이것저것 많이 해서 안 되겠네'라는 뉘앙스가 더 컸다. 뭐든 경험해봐야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게 된다는 나의 지론과는 사뭇 상반된 반응이라,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선생님, 그래선 안 되었던 걸까요?'
'뭐, 안 된다기 보단….'
선배의 주변에도 우리가 이름을 대면 알만한, 성공한 교사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바로, 한 우물'만' 팠다는 것. 내가 어떤 것을 배우고자 마음먹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는 의미이다. 이것저것 손대고 말 바에야 아예 발도 들여놓지도 않았다는 고런 의미.
일단 분야를 하나 정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대학원에 가거나, 전문 서적 공부를 많이 하거나, 연구학교에 가서 프로젝트를 해보는 등)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면, 대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라고 마무리 된 선배의 조언을 듣고 나서, 잠시 멍해졌다. 이제까지는 구슬을 서말로 만들기 위한 노력만 무수히 많이 했지, 정작 꿰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구나. 그 구슬의 색깔과 크기가 심지어 제각각이었다는 사실에 기운이 쭈욱 빠졌지만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고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뭘까, 혹은 좋아하는 것은 뭐였을까. 사춘기 소녀나 할 법한 진로 고민을 이제서야 하는 나는, 오늘도 우리반 아이들의 진로 상담을 해야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