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노트 네 번째 페이지
잘못은 팀장 새끼가, 퇴사는 저보고 하랍니다.
직장인이 된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대화는 직장 배틀로 이어진다.
누가 가장 격무를 하고 있는지, 누가 가장 때리고 싶은 상사를 두고 있는지, 누가 가장 최악의 업무 환경인지. 이 배틀 중 가장 참가자들이 하나 되는 종목은 바로 '억울 in 직장 배틀'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억울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곳이 회사일 테니 말이다. 지금은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웹 기획 노예 출신 인어공주 또한 관련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 억울 겨루기만큼은 둘째가 일 수 없다는 그녀, 인어공주와 함께 분통을 터트려 보자. 렛츠 기릿.
Q. 세계로 뻗어 나가는 A 회사의 대표이신 인어공주님도 해고와 관련한 흑역사가 있으시다고요. 어떤 회사였나요?
A. 안녕하세요. 대략 2010년도쯤이었던 것 같아요. 웹에이전시 회사였고, 기획팀에서 1개월간 근무하였습니다. 주변에 관련 업종 종사자들이 다 가지 말라고 한 회사였어요.
Q. 모두의 만류에도 그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A. 그러니까요.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말이에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제 감을 믿는 편이고, 감보다 더 믿는 것은 사람이에요. 면접을 봐주신 차장님이 너무 좋았어요. 그분과 함께 일하면 너무 즐겁게 회사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입사했고, 직원들도 대체로 좋아 보였지만 몇몇 사람은 그 차장님과 저, 기획팀을 견제하듯 대하는 게 느껴졌어요.
Q.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셔서 1개월이라는 짧은 회사 생활은 어떠셨나요?
A. 당시 기획자로서는 신입이었고 배우고 싶은 마음에 차장님을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봤었는데 본인도 바쁘다며 알려주는 걸 꺼려했던 기억이 나요.
Q. 회사가 직원을 쉽게 해고하는 곳이었나요?
A. 잘리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임금체불도 많이 봤고요. 이직도 잦고, 아니다 싶으면 당일날부터 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어요. 또 성과를 내지 못하면 팀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IT 관련된 것이라 그런지 변화가 빠르다 보니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Q. 회사도 쉽게 자르고, 직원들도 이직률이 높은 곳이었군요. 인어공주님의 해고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제가 면접에서 혹했던 여자 차장님이 먼저 나가셨어요. 퇴사 반, 해고 반이었죠. 그리고 새로운 팀장님이 왔어요. 저는 거의 그분과 미팅을 다니며 일을 하게 됐죠. 그날도 여느 날처럼 미팅 후에 사무실로 복귀한 때였어요. 복귀하자마자, 부족한 인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고객사와 주고받는 인트라넷에 문의글이 올라와 있기도 했거든요. 팀장님은 앞으로 인력 충원 계획이 있다는 답변을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죠. 그런데, 그 글을 모니터링한 대표이사가 팀장님을 불렀어요. 누구 맘대로 인력 충원이냐면서 노발대발한 거죠. 팀장님이 깨지는 동안, 저도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 걱정을 할 때가 아닌데, 그때만 해도 참 착했네요.) 대표이사 방에서 나온 팀장님은 한참 뒤 저를 불렀어요. 그리곤, 오늘까지만 근무하라고 하더라고요.
Q. 잠깐!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데요? 자기가 깨져놓고, 인어공주님을 갑자기 해고시켰다고요?
A.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죠? 혹시 인력 충원 관련된 글 때문에 이러시냐니까 맞다고 하대요?
"그거 팀장님이 시키는 대로 제가 한 건데요?" 했더니 그 팀장 왈, "억울하면 너도 팀장 해."
답답하면 니들이 뛰시던지가 생각나는 대목이네요. 하. 덧붙인 말들도 웃겨요. 자기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갈 곳도 없고 여기서 지금 버텨야 된다고 했어요. 미안하게 됐다면서요. 어처구니없는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정리하고 나오면서 대표이사 책상에 온갖 침을 다 뱉었어요. 생각 같아선 침 대신 분뇨라도 투척하고 싶었죠. 팀장에게는 퇴사 후에 화가 치밀 때마다 분노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세상에, 화병 안 나신 게 다행일 정도인데요. 정말 부당한 해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A. 매우 부당했고, 억울했어요. 잘한 것도 없지만 신입 딱지도 감안되지 않은 질서도 체계도 정신없는 회사였어요. 노무사 온라인 상담도 받아보았는데 4대 보험 가입이 6개월 이상 가입되어 있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다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냥 삭혔어요. 친구들에게 말도 못 했고요.
Q. 내가 대표였다면?
A. 팀장 말고 직원과 대화했을 것 같아요. 양쪽 말을 들어봐야 되는데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지 않았을 거예요.
Q. 해고 이후, 나와 회사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나요?
A. 아마 그해 가을쯤 해고되고, 12월 말까지 계속 화가 나서 부들부들했어요. 그런데 연말에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오늘 호텔에서 연말 행사를 했는데 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술주정을 부리는데, 앞에 있었으면 한 대 때렸어요 정말. 별안간 아쉬움? 이 분 인생에는 맥락이라는 것이 없나 봅니다.
저는 그 후에 소개로 다른 에이전시에 입사해서 2년여간 일했어요. 그곳은 신입을 제대로 가르치려고 하는 회사였어요. 많이 배우고 왔죠. 이것이 호사다만인가요.
Q. 해고가 인어공주님에게 미친 영향은 어떠한가요?
A. 저는 어릴 때부터 목표가 창업이었어요. 회사는 중간에 거쳐가는 다리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내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사람들이 내가 아쉬워서 붙잡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어요. 네까짓게 나를 해고하려 한다면, 주변 사람이 저 사람 해고시켜봤자 당신만 손해라는 말을 하게 만들자... 배울 수 있는 것 다 배우고, 만나야 되는 사람들은 다 만났던 것 같아요.
Q.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
A. 사장님! 그때 본인 동생이 목사님이라는 말만 안 했어도 제가 덜 열 받았을 텐데 말이에요. 저 말고 많은 직원들을 데스노트처럼 잘라버리시더니 나중에 폐업하시고 다른 회사 차리셨더라고요! 잡플랫닛 보니까 리뷰가 똥망이던데... 페이스북 잠깐 염탐했는데 요즘도 예전처럼 직원들과 사이좋은 척 행복한 척 가짜 글 올리시더라고요. 그렇게 큰 기업 인척, 직원들과 단합 잘되는 척하면서 큰 일 따오고 많이도 챙기셔서 외제차로 바꾸시고 그런 거 다 알아요. 또 있어요! 제안서에 실적도 다 구라 친 것도 알아요. 사장님! 언젠가 다 돌려받으실 거 아실 텐데 그렇게 살지 마세요.
Q. 나와 같은 업종에서 해고당한 분들께 한 마디
A. 저는 저만 잘려본 줄 알고 부들부들했는데, 은근히 많더라고요. 쫄 것도 없고 주눅 들것도 없고요. 내가 한번 잘리면 세상에서 매장돼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에요. 확실한 건 갑-을 관계가 아니고 갑-갑의 관계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봐요. 나도 윈 회사도 윈. 그리고 지금 더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고 계실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