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노트 두 번째 페이지
나는 마트에서 일한 지 364일 만에 해고되었습니다.
계약직과 정규직, 당신이 원하는 고용 형태는 무엇인가?
자발적 계약직 헌터인 직장의 신 '미스 김'이 아니라면, 미생의 장그래로 직장생활을 마치는 새드엔딩 따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자리를 내줘야 하는 기간제 계약직, 성과급과 복지혜택에서 차이를 느끼게 되는 무기계약직. 계약직 앞에 붙는 수식어는 직장에 느낄 서러움의 분류다. 그리고 그들은 '불안정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직장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유, 그것은 고용안정성이라는 과녁을 향해 있다. 지금의 과녁이 정규직에서 살짝 빗겨나간 자리일지라도, 다음 달에는 다르겠지, 내년에는 맞출 수 있겠지 라는 간절한 희망이 다시 활시위를 잡게 만든다. 비록 활시위를 잡은 손의 살가죽이 들뜨고 그 속에 물이 고일지라도.
여기 정규직을 원했던, 92년생 김민지와 같은 과녁을 보고 있던 한 청년이 있다. 많은 사회 초년생이 그러하듯, 그도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한 대기업 유통회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후, 그의 직장생활은 강렬한 메시지를 가진 한 편의 단막극이 되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딱한 남자'라는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대기업의 약속은 중소기업의 약속과 그 견고함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계약서란 약속에서 얼마나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지.
Q. 안녕하세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딱한 남자, 딱군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두 살의 딱군입니다. 유통업 대형마트에서 계약직으로 냉장냉동, 유제품 관리직을 맡아서 근무했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계약을 맺는 아르바이트 형식이었는데, 1년이 지나면 정규직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Q.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셨어요?
A.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어요. 원래 회사 정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그렇잖아요. 처음에는 저도 포부가 있었죠. 그런데, 알면 알수록 처음 같지 않았습니다. 업무도 몸 쓰는 일이라서 출근하자마자 물건 나르고 진열하는 것의 반복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성격이 긍정적인 편이라, 무기계약직 전환만 생각하면서 만족하려고 노력했어요.
Q. 근무 형태는 어땠나요?
A. 근무 형태는 주 5일, 교대 근무로 일을 했습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쉬었지만, 연달아 이틀을 쉴 수 있어서 나름 괜찮았습니다.
Q. 긍정적으로 근무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열심히 하셨을 것 같은데, 해고 당시의 상황을 말씀해주시겠어요?
A. 저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점포마다 각 지점장의 권한으로 주니어 급이라고 부르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3개월에 한 번씩 4번의 계약서를 썼고, 주니어 급 전환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 되었죠. 그런데 그거 아시죠. 비극은 정면으로 찾아오지 않아요. 웃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칼을 꽂죠.
평안히 웃고 있던 그 시기에 본사에서 공문이 내려옵니다. 주니어 급 전환 시, 시험 제도가 추가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공문이었죠. 갑작스러운 시험 제도 추가에 불만은 있었습니다만, 어쩌겠어요. 하라고 하면 해야죠.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공부했으면 제가 판, 검사라도 됐을 텐데요. 저한텐 당시 판, 검사만큼 소중했던 게 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직이었습니다. 사활을 걸고 했어요.
Q. 결과가 좋지 않았나요?
A. 예, 떨어졌습니다. 저는 시험 보자마자 합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 있었거든요.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를 믿을 수가 없어서, 왜 점수가 커트라인에 미달이었는지 본사에 문의했어요. 서술형 문제에서는 부분점수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기재한 답을 확실히 기억해서, 직원들과 의견을 공유했는데 유통업에 오래 종사하신 분들도 모두 그 답은 만점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서술형이 채점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보니, 어떤 기준으로 제가 점수를 얻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본사에 수십 통 전화했죠. 그런데 돌아온 답은 보안상 시험지는 공개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비통함과 억울함을 참을 수 없어서,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같은 답만 반복해서 들었을 뿐입니다.
Q. 세상에, 죄송하지만 이 드라마, 화나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그래서 이후에 어떻게 되셨나요?
A. 그렇게 주니어 급 전환은 무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3개월에 한 번씩 계약서를 쓰는 형태의 계약이었다고 했잖습니까? 12개월이 채워지면 퇴직금이 있습니다. 4번째 계약서를 쓰고 난 뒤 무기계약직이 무산된 상황이잖아요. 지점장님께서 절 부르시더니 새로운 계약서를 주시더라고요. 새로운 계약서에는 12개월이 채워지는 하루 전 날로 계약 만료일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Q. 당시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A. 당연히 억울했고 화도 났습니다. 하필 전에 없던 시험 제도가 도입된 것도 감내하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긍하기 어려운 결과였으니까요. 모두가 제가 제출한 답이 맞다고 하는데 본사에선 알려줄 수 없다는 이야기뿐이라서. 속된 말로 조금 쪽팔리기도 했어요. 어쨌든 떨어진 건 떨어진 거니까 모든 점포 직원들이 알게 돼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창피하기도, 속상하기도 했어요. 지점장님에 대한 야속한 마음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분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무환경과 점포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었거든요. 본사 놈들이 싫은 거지.
Q. 회사에선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면서 덧붙인 말이 있나요?
A. 본사 협력업체로 들어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미 마음이 떠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Q. 당시 회사에 대한 기여도는 어떠셨나요?
A.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기여도는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맡은 파트 쪽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파트에 비해 현저히 부족했어요. 한 사람만 빠져도, 교대 시간 이후까지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워낙 물건이 많았고 유제품은 유통기한이 중요해서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다른 파트에 비해서 컸고요. 중간중간 고객 응대도 해야 하고, 창고 재고 관리도 중요했습니다. 다른 파트의 경우 오전 2명, 오후 2 명 정도 있었지만 제가 있던 냉장냉동, 유제품 파트는 오전 1명, 오후 1명으로 배정되어 있었어요. 업무는 다른 파트에 비해 많았는데 인력은 반밖에 되지 않았죠. 인력 배치는 지점장님의 권한이었는데 저희 파트로 배정은 안 해주시더라고요.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어요.
Q. 딱군님의 퇴사 후 회사가 받은 타격은 있었을까요?
A. 퇴사하자마자 대대적인 부서 이동이 시작됐어요. 다른 층에서 일하던, 아예 다른 파트 소속 직원이 배정되기도 하고요. 가끔 마트에 들르면 같은 파트에 일하시던 분들이 다시 들어오라고 하세요. 일하기 너무 힘들다고. 한 명이 빠지면서 일하던 직원 분들만 힘들어진 거죠.
Q. 지점장님은 타격이 있었을까요?
A. 지점장님은 타격이 없었을 거예요. 지점장님도 승진을 해야 하니까 본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다른 움직임은 할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후에 지점장님은 다른 곳으로 가셨어요. 보통 지점장은 순환근무라서 2년에 한 번 점포를 돌아요. 제가 나가서 직원들의 불만은 높아졌지만 점포 이동으로 타격은 피할 수 있었죠. 지점장님도 받은 타격이 없는데 본사라고 있을까요. 워낙 대기업이라 저 하나 빠지는 건 일도 아니죠 뭐.
Q. 퇴사 후 딱군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근무할 때는 그곳에서 승진도 하고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마트를 포함해서 다양한 직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회사는 다니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히, 큰 회사는 안 되겠다! 본사에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까. 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그쪽에선 지시만 내리면 되는 거잖아요. 점장 하던 사람을 일반 직원으로 좌천시키는 경우도 있고, 아주 자기들 마음이에요. 죄송해요 말하다 보니 제가 화가 났나 봐요. 표현이 격앙됐네요.
Q. 진로에 큰 변화가 생기셨네요.
A. 그렇죠. 회사보다는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약 만료되는 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뭐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지인의 권유로 요식업계에 들어가게 되면서 일을 배우다 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일을 하다가 여건이 마련되면 제 사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Q. 딱군님이 점장이었더라면 어떠셨을까요?
A. 지점장의 권한으로 어떤 이야기라도 본사에 내보지 않았을까요. 점장 추천을 해줄 수 있지도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Q. 유통업계 해고 동향은 보통 딱군님의 케이스와 비슷한가요?
A. 온라인 마켓 시장의 확대로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힘들어요. 그래서 인원 감축을 하고 있어요. 좌천시키거나 통근이 힘든 곳으로 발령을 내리면서 인원을 줄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마트가 전체 지점 통틀어서 대리 직급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리급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눈에 보일 정도로 컸어요.
Q. 본사에게 하고 싶은 말
A. 규모가 크다 보니 소통이 힘들 거라고는 생각해요. 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아휴, 복잡하네요 심경이. 그런데 제가 치른 그 시험의 의도가 너무 다분하잖아요. 자격 검증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딱히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네요.
Q. 같은 업종에서 해고당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여러분의 과거가 된 그 회사. 그곳을 나오게 된 것은 오히려 더 축복입니다. 같이 일했던 다른 파트장님도 말씀하셨어요. 저의 불합격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요. 여기서 오래 있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는 말씀이셨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성격이 긍정적인 편이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서 여태껏 상처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려고 이렇게 됐구나. 싶어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고, 지점장님도 동료였던 분들도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나쁘게 생각하면 저만 안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