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노트 세 번째 페이지.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부당해고가 어디 딱군과 같은 계약직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딱군은 비록 계약직일지언정, 본사만큼은 대한민국에 손꼽히는 대형 유통업계였고, 92년생 김민지는 경우, 좋소기업이라고 조롱당하는 중소기업이었지만, 고용 형태는 정규직 대리였다. 해고에는 음지와 양지, 울타리와 야생의 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양산되는 모든 김민지들과 우리의 불행은 불행하게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불행이었다.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는 이 심심한 말이 부디 작은 위로의 힘을 갖기를. 더 이상 밤마다 특별한 불행의 무게에 눌려 제 상처를 키워내지 않기를 바란다.
김단추 작가를 보면 어딘가 김민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단추 작가의 얼굴에 이 시대 청춘들의 여러 표정이 녹아있기 때문일까.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많아 괴롭지만 목구멍에 거미줄 칠 수는 없어 어쨌든 오늘도 출근하는 그녀.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지 말라는 김단추의 말을 통해 당신의 밤은 가벼워질 것이다.
Q. 힙스터를 꿈꾸는 김단추님 안녕하세요. 영화과를 나오시고, 작가를 업으로 삼고 계신 김단추님께서 겪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에이치 아이. 하이. 안녕하세요 김단추입니다. 저는 영화과 출신으로, 현재 글과 만화를 콘텐츠로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10년 전부터, 업계 불문하고 영상물을 주요 콘텐츠로 다루는 곳이 많다 보니, 다양한 업계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회사든지 다 좋고, 다 나쁠 수는 없지만, 저에게 부당해고의 상처를 준 최악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Q. 다양한 업계에서 근무하셨다고 하니, 말씀하시려는 해당 업종 또한 단순 사무직은 아닐 것으로 짐작됩니다.
A. 경기, 인천 지역의 프랜차이즈 헤어숍을 운영하는 본사에서 근무했습니다. 2017년 3월부터 약 6개월 정도 근무했네요.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고 싶지 않은 아득한 시간이었습니다.
Q. 그렇게 말씀하시니, 실례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당시 직장과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있었나요?
A. 직원들은 모두 성품이 바르고 예의가 발라 조화롭게 지냈어요.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작고 체계가 바로 잡히지 않아 업무 분담에 혼란스러움이 있었지요. 무엇보다 제 포지션에 대한 명확함이 없었어요. 사실 이 부분은 많은 회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긴 하지만, 영상물 작가로 들어간 저로서는 기획, 감독, 작가, 업무지원 어느 경계까지 터치하고, 말아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어요. 사회초년생이기도 해서, 포지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불안정함이 있는 상황이었죠.
Q.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조직에 대한 기여도가 있었나요?
A. 업무분장은 늘 혼돈의 카오스였지만 공식적으로 업무 분장표 상에 명시되어 있는 저의 주 업무는 헤어 화보 촬영 PD로 화보 촬영 현장을 진행하는 일이었어요.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없는 일이었죠. 첫 사회생활이기도 했고 신경 써야 할 자잘한 업무가 많다 보니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데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까 함께해서 더러웠다고 했는데 팀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조금 머쓱하네요.
Q. 욕하셔도 돼요.
A. 감사해요. 제 기여도에 큰 자신은 없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명절이 되면 직원들은 받는 것 없이, 돈을 걷어 대표에게 선물을 해준다거나, 밤늦게까지 남아 헤어쇼를 봐야 했어요. 제정신들인가. 우리가 주최한 행사도 아니었고, 남아서 보는 게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야근 수당도, 대체 휴가도 쓸 수 없는 부당한 관객 동원이었습니다. 아주 이런, 이해가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었어요.
Q. 회사는 직원 해고를 쉽게 하는 편이었나요?
A.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회사였고, 직원들 대부분이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런 불안정한 상태다 보니 직원들이 자주 들어가고 나오는, 퇴사율이 높은 회사였습니다.
Q. 김단추님의 해고 이야기를 풀어주세요.
A. 실장이 한 명 있었어요. 그 실장이 대표에게 제 험담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행정적인 부분에서 꼼꼼함이 많이 부족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그 실장과 남자 PD가 저를 불러서 한 달 동안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급여를 감봉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를 협박한 거죠. 심지어는 성과를 내지 않으면 계속 함께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식으로까지 말했다니까요? 누가 들으면 제 월급이 300만 원은 넘을 것 같겠지만, 겨우 180만 원가량이었습니다. 이걸 깎으면 누구 코에 붙일까요. 제 조카 코에도 못 붙이겠네요. 이런 조카. 어쨌든, 그때는 굉장히 순진했을 때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날 받아줄 거라고 믿었어요. 여러 가지 영상들을 기획하여 콘티를 짜서 보여줬죠. 반응이 어땠냐면요. 별로였어요. 그리곤 2주쯤 지났을까요, 저를 부르더니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고 통보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만둘게 할 작정으로, 기회를 주는 척 협박한 거죠.
Q. 나 김단추가 당한 해고는 부당한가요?
A. PD로 뽑혔지만,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이유로 다양한 업무를 시켰어요. 갑자기 웹툰을 시키질 않나, 블로그에 들어갈 그림도 그리라고 하지를 않나. 영상 기획부터 화보 촬영 현장 기획, 모델 섭외, 스케줄 조율... 신입이었던 저한테는 모두 버거운 일이었어요. 때문에 주 업무인 영상 쪽에 전념하지 못했고 그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부분은 있어요. 그런데 또.., 생각하니까 화나네요. 체계적이지 못했던 업무 분담으로 혼선을 준거잖아요? 또한 실장이 직원 험담까지 대표에게 학교에서 반 친구 욕하듯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회사와 사람에 대한 정나미가 뚝 떨어졌습니다. 나 역시 어느 하나 잘 해내지 못했지만, 회사도 엉망이었어요. 피장파장이네요.
Q. 김단추님이 대표의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A. 실장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직원을 불러 직접 대화를 나눠보았을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고 평가하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뒷얘기만 듣고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란 계급사회고 팀의 장에게 보고받는 형태이니 대표 입장에서도 어찌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Q. 해고 이후의 김단추님, 그리고 회사는 각자의 길을 잘 걸어가셨나요?
A. 다신 회사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사람에게 오만정 다 떨어지고, 실망했으니까요. 실장이 대표에게 뒷얘기도 모자라, 직원들 간 이간질까지 했어요. 그래서 한동안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웹툰을 배우러 다녔어요. 행복했던 시간이었죠. 제 후임으로 들어온 직원들도 얼마 되지 않아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왔어요. 변하지 않는구나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지금까지, 잘 돌아가고 있대요. 많은 직원들이 오갔지만 워낙 헤어숍이 탄탄해서, 높은 퇴사율이 본사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은 것으로 보여요.
영원히 대표의 오른팔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간신배 실장은 제가 나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고 해요. 사람 일 참 알 수가 없죠. 간혹 저에게 연락을 하고 SNS로 댓글을 남기는 등 잘 지내냐고 묻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이상한 여자예요.
Q. 해고가 김단추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요?
A. 중소기업과 사람에 대한 경계가 생겼어요. 특히 회사 생활에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처음에는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나의 노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 많이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곳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Q. 대표님께 못다 한 말이 있다면 하세요.
A. 별로 없는데...
대표님 잘 지내시는지요. 헤어 디자이너로서는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한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이셨습니다. 직원들 얼마 되지도 않는데 한 명 한 명 말에 귀 기울이시고 절대 사람을 믿지 마십시오
Q. 나와 같은 업종에서 해고당한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모든 일을 다 잘 해낼 수는 없습니다. 일이 버겁다고 느껴지면 과감하게 나오십시오. 결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지 마십시오. 자기 탓을 하지 마세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그 회사가 다가 아닙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전문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회사로 가십시오. 하지만 결코 그 일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뒤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여 3개의 회사를 거친 제가 느낀 것은 대한민국 중소기업에서 많은 것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건 취하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모조리 얻어내세요. 그리고 적당히 내 할 일을 하십시오. 받은 만큼 일하자고요. 더러운 사회생활, 부조리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에서 존버 하는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언젠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잠시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인생의 목표도, 우리의 전부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