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노트 여덟 번째 페이지
이십 대의 나는 사랑을 참 많이도 주었다. 순수했고, 욕심 없던 내 사랑은 그들에게 그렇게 주기에는 너무나 과분한 것이었다. 삼십 대가 되었다. 쌓인 세월만큼 지나간 연애로 배운 것들이 많아진 내 사랑은 더하기 빼기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받은 만큼 주게 된 교활함일까, 더는 큰 사랑의 에너지를 쏟을 수 없는 노쇠함일까.
지나쳐 간 사람들은 취향, 생김새에서부터 외투에 깃든 냄새, 젓가락을 잡는 본새까지 달랐지만, 아직도 또렷한 1번 남자에서부터 벌써 흐릿해진 8번 남자까지 굴비 한 두름 엮듯 기억의 줄로 엮어보니, 그놈이 그놈이다. 그래서 내 사랑은 이번에도 최저 시급 동결이다. 진절머리 나도록 좋아했고 다시 주는 상처에 놀랐던 내 사랑의 호재는 다 간 것이다.
어디 연애뿐일까? 사람과 사람이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관계에 상관없이 닮아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 만나지 말자는 노사 간의 이별도, 시작에는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손발이 잘 맞는다는 기쁨으로 정주고 마음 주었다가 뒤통수 맞기에 바빴던 초보 사장님. 어느덧 10년 차, 잔뼈 굵은 사장님이 되어 상처받을 일 따위 만들지 않는다. 사랑과 배신, 배신과 사랑은 어쩌면 노동자와 사측의 이야기를 담은 가장 저릿한 단어가 아닐까.
Q. 안녕하세요 사장님. 고기가 무척 맛있어요. 운영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A. 감사합니다. 저희는 숯불 고깃집을 총 10년 정도 했고, 이 자리에서 한 지는 5년 되었어요.
야간에만 운영하고 있고, 전에는 직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저랑 신랑이랑 둘이서만 일하고 있네요.
Q. 사장님이 젊으신데, 식당이 생각보다 유서 깊네요! 직원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혹시 직원이 있을 때, 해고한 경우가 있으신가요?
A. 아유, 없을 수가 없죠. 저희가 24시간 운영을 하다가 저녁 장사로 바꿨어요. 그래서 낮 시간대에 일하던 분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저희가 해고한 경우보다는 하루아침에 직원이 안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업종 특성 때문에, 갑자기 말도 없이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해요. 오늘부터 일 못하겠다고 통보받은 때도 많은데 말이라도 해주니 좀 나은 경우죠. 며칠이라도 미리 사직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정말 괜찮으신 분들이에요.
Q. 아이고. 곤란하셨던 때가 많았겠어요. 그럼 사장님의 해고 기준은 운영 방식의 변화 때문이었나요?
A. 그렇죠. 운영 시간을 바꾸는 바람에 해고했던 경우가 유일하죠. 사고를 쳤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해고한 적은 없어요. 정리하자면, 우리의 해고 기준은 바뀐 운영 시간 및 운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해고 당시, 해고 결정권자로서 어떠셨어요?
A. 바뀐 운영시간으로 어쩔 수 없이 해교해야 했던 경우라 많이 미안했죠. 나는 미안해서 말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사장들도 다 성격이 다르잖아요? 우리 신랑은 비즈니스적인 면에서는 나보다 선이 확실한 사람이라, 신랑이 해고 통보를 했어요. 그래도 지켜보는 입장에서 마음이 좋지 않았죠.
Q. 직원이 말없이 그만둬 버릴 때는 다른 이유로 마음이 안 좋으셨겠어요.
A. 해고할 땐 미안함이 컸지만 직원이 말도 없이 그만두는 경우는 굉장히 짜증 나죠. 이제 다 가르쳐놨는데 그만두니까. 가르칠 때는 혼자 일 할 때보다 더 힘들거든요. 아무래도 이 일이 처음인 사람은 실수도 많잖아요. 저는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투자기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그냥 그만둬버리면 마음이 많이 상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더라고요.
Q. 직원의 퇴사와 해고, 식당 운영에 어떤 영향이 있었나요?
A. 바뀐 운영시간 때문에 해고한 것은 큰 영향이 없었지만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기도 전에 그만둬버리면 영향이 상당히 큽니다. 셋이 하던 일을 둘이 하게 되면 일도 많고 힘들어지잖아요. 그렇게 되면 남아있던 사람들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게 제일 안 좋은 영향인 것 같아요. 적어도 새로운 직원 고용해서 자리 잡을 때까지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Q. 사장님의 속상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해고당한 직원분의 심정과 상황을 짐작해본다면 어떠세요?
A. 아까도 말했지만 해고당한 분께는 정말 죄송해요. 아마 많이 속상하셨을 거예요. 자진 퇴사하신 분들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식당 일이 쉽지 않잖아요.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스트레스 주는 진상 손님들도 있으니까요.
Q. 부당해고와 관련해서 사건에 휘말리셨다고 들었습니다.
A. 스스로 그만두신 분들 중에서 오히려 우리한테 부당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도 이제야 운영한 지 좀 됐지만 예전에는 저도 어렸고 초보 사장이기도 했잖아요. 그래서 직원 채용과 관련한 법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았죠. 저희가 사무실이 아니라 식당이라 더 그런 부분에 신경 쓰지 않은 것도 있고요. 말도 없이 그만두신 분들 중에서 우리가 당신들을 부당 해고했다고 신고하는 일들이 있었어요. 해고에 대해 '서면 통지'한 증거가 없다 보니 오히려 우리가 합의금을 줘야 했어요. 노동자의 편에 선 법을 악용한 거죠.
Q. 식당은 해고와 자진퇴사가 잦은 편인가요?
A. 대형 식당은 정직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식당은 영세한 사업체가 많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분들도 그만큼 많아요. 특히 해고보다는 자진퇴사의 경우가 높은 것 같아요. 정리하는 데도 다른 오피스 직보다는 간단하기도 하고요. 법적으로는 한 달 전에 해고에 대해 고지하거나, 사직서를 제출해야 되는데 식당은 자진퇴사와 해고, 두 경우 모두 정리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리지 않거든요.
Q. 운영자가 생각하는 노사 간 입장 차이 그리고 노동자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전에는 내 돈 주고 고용한 사람들이다 보니 열심히 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저 사람들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서비스직이다 보니 손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줬으면 해요. 손님 있을 땐 졸지 않거나, 술 마신 분들과 크게 싸우지 않거나 하는 정말 상식적인 것들이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보니 피곤하고 힘든 것은 이해가 됩니다. 저도 손님 없으면 졸기도 해요. 그리고 사실, 일만 잘하면 월급 올려주는 건 사장 입장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최저시급에 맞추게 되더라고요. 일 잘하는 사람이 오래 일하면 챙겨주고 싶죠. 우리 신랑도 일 잘해주는 직원한테 30만 원짜리 옷도 사줄 정도로 잘해줬어요. 그런데 그렇게 챙겨줘도 그만둬요. 그만두는 직원한테 바라는 것은 새 직원을 구하고 그 직원이 자리 잡을 때 까지는 있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 사람 몫까지 일을 해야 해서 힘들어지거든요. 업무 과중으로 남은 사람들까지 그만두는 악순환이 생기니까 하루아침에 그만두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