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노트 아홉 번째 페이지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
배우 고현정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 중 하나인, '선덕여왕' 속 미실의 명대사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직장 내 직급 최소 '주임' 이상일 것이다. 선덕여왕 드라마는 무려 12년 전 드라마로, 종영 후 강산이 변했고, 드라마가 시작되던 해에 대학에 입학한 09학번은 서른을 넘은 나이가 되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고현정의 미모뿐인가 보다. 우리는 늙고, 사회생활 가능 몹으로 진화도 하고, 진급도 했다. 자축의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최소 '주임' 이상 되는 선덕여왕 세대들이여, 당신의 회사가 미실이라면, 당신은 미실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미실 기준, 그의 사람이 될 만한 값어치를 갖는 사람일까? '나'라는 소모품은 가성비가 나올 만한 성능을 가졌을까? 대답을 망설이는 자, 들어라. 회사는 말한다. 우리에게 제값을 다 하라고.
덕만처럼 타고난 성골도, 춘추처럼 든든한 배경을 가진 진골도 아닌 우리가 회사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 여기 혹시 비담은 없겠지?
Q. 안녕하세요 대표님. 회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희 회사는 디자인 회사로, 교육기관의 책자부터 각종 인쇄물들을 제작하고 있는 작지만 강한 회사입니다.
Q. 작지만 강한 회사도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가 있으셨나요?
A. 네. 딱 한 번 있었습니다만, 한 번에 두 명을 해고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Q. 대표님의 해고 기준은 무엇인가요?
A. 첫째는 일단 제 기준, ‘거래처에 불친절하다’라는 것이 거래처까지 느껴지게 하는 게 가장 컸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이렇지만, 이게 또 뭐랑 연결되냐면 ‘월급을 주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기대하고 해 줘야 되는 업무량이나 거래처에 응대해야 하는 것이 분명 있는데 그게 맞지 않았어요.
Q. 자세한 해고 당시 상황과 해고 결정권자로서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A. 당시 사무실을 이전하게 되면서 거리 문제로 자연스럽게 해고된 케이스였어요.
한 1년 안 되게 근무하다가 해고했지요. 홀가분했어요. '빨리 정리하길 잘했다.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나하고는 섞이기 힘든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위해서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까지만 이야기한다면 그 정도예요. 그리고 내가 좀 그들을 어려워했었고, 야근수당을 지급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야근을 아예 하지 않았어요. 해고된 두 명 중 한 명은 매일매일 지각을 했어요.
Q. 그 해고가 회사와 대표님에게 미친 영향이 있을까요?
A. 아 그럼요. 직원을 정말 신중하게 뽑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부정적인 사고방식이나 말이나 행동은 정말 너무너무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 때문입니다.
Q. 해고당한 두 직원의 심정과 상황을 짐작해본다면?
A. 만만한 사장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었는데, 힘든 일반 동종업계로 가야 하니 아쉬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Q. 해고가 타당했나요?
A. 내 입장에서는 타당했고, 단 1의 후회나 아쉬움이나 이런 게 없어요. 그들의 입장에서도 부당한 것도 없고 실업급여도 받게 해 주었고요.
Q. 당시 조직에 대한 해고당한 이들의 기여도가 있었나요?
A.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지요. 당시 직원이 그들밖에 없었고, 그들이 일처리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일만 처리하는 사람을 원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회사가 더 발전해나가고 커나가야 되는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이미 물들여진 사람들을 빨리 파기하고 싶었어요.
Q. 표현이 거칠어지셨어요. 해고 이후 회사와 실직자 각자의 행보는 어떠했나요?
A. 오히려 더 좋아지고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팀워크도 좋고요.
Q.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A. 절대 후회하지 않고, 좀 더 빨리 정리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안 맞는 것은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부정적인 생각과 소극적이고 자조적인 생각을 하는 직원들과 일하는 것은 힘들어요. 그런 분위기는 빨리 없애는 것이 좋아요.
Q. 동종업계의 해고 동향은 어떤가요?
A. 해고의 경우가 많지 않아요. 어느 정도 열심히 해주고 거래처에 응대만 잘해주면 굳이 자를 정도는 아니거든요. 이쪽 동종업계에서 해고를 당한다는 것은 디자인 퀄리티가 낮거나, 열심히 하지 않는다거나, 고객응대를 싹수없게 한다는 게 아니고서는 웬만해선 잘리지는 않아요. 가성비가 없을 때 잘리는 거죠.
가성비를 단순히 업무 능력만으로 100% 따지는 오너는 없어요. 일반적인 구직자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인데 일을 못해서만 잘리는 경우는 없어요. 능력이 이유인 경우라면요, 이 정도 연차에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있잖아요. 그게 안 나온다면 어쩔 수 없어요 그거는. 그들은 능력 외의 것들로 버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내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 이거고, 나머지는 플러스알파예요.
Q. 특별히 '이런 직원은 정말 아니다'라고 말할 만한 대표님의 기준이 있을까요?
A. 상사들을 욕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회사 욕을 하는 사람들 중에 과연 그 일을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회사에서 비전을 찾으려 하고, 배우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냐 이겁니다. 회사일이 너무 많고 힘든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서 얻어가려는 것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냐는 거죠.
Q. 해고당한 직원에게 하고 싶은 말
A. 그 친구들은 어디 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거예요. 나랑 일할 때랑 다르게 열심히 일하고 있겠죠. 이건 그 친구들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직원들을 컨트롤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내역량이 부족해서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반반이라고 생각해요. 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해요. 그들이 디자인 작업 자체를 못했던 것 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Q. 사장님이 생각하는 '열심히 한다'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A. 열심히의 기준은 내가(노동자 자신) 판단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오너가 아닌 이상 월급 받는 입장에서 ‘열심히’ 하는 것의 기준은 돈 주는 사람이다'는 것이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표현 자체가 수동형이잖아요? 내가 나 스스로를 인정을 하는 게 아니에요.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는 게 인정받는 것이지
내가 이 정도면 겁나 열심히 했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거울 보며 위로할 때 그러면 됩니다.
Q. 운영자가 생각하는 노사 간 입장 차이와 바라는 점
A. 입장차라면 가성비예요. 오너들은 가성비를 따질 거고, 일하는 사람도 가성비를 따지겠죠. 뭐 꿀알바, 꿀잼 이런 거 있잖아요. 일한 거 대비해서 돈 많이 받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겠죠. 나는 일단 기본적으로 그런 거를 찾아다니는 시간에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를 어디 가서 친구들과 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다니는 회사의 좋은 점,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게 훨씬 더 스스로에게 좋지 않겠나 싶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정받게 될 거예요. 그런데 천년만년 바보같이 그럴 필요 없어요. 어느 정도 내가 하는 일에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결과물이 나오고 자신감이 생긴다면, 이직할 때 내가 더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직할 수 있어요. 이건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