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친 원장님

해고 노트 열두 번째 페이지

by 신보라

잘 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잘못 타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목적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실수 덕에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 이리 치이고 저리 굴러 지금 당신이 선 곳에 당도했다. 기차를 잘 탔더라면 지금보다는 삶이 편했으리라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 탄 기차 덕에 배운 것도, 모난 것들을 깎아내며 지금의 멋진 당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번의 잘못 탄 기차를 거쳐갔나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어땠나요? 좋은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조금 미쳐있었을까요?


Q. 여러 번 기차를 갈아타신 의정부 맨주먹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 부당해고 경험을 안긴 회사는 어떤 곳이었나요?

A. 안녕하세요 의정부 맨주먹입니다. 저는 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일했습니다. 2016년 3월부터 약 6개월 정도 근무했습니다.


Q. 당시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셨어요?

A. 우선 원장님이 정이 많고 잘해주셔서 만족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냉장고에 커피와 얼음을 꽉 차도록 채워주셨고 피곤해서 잠들어 있으면 깨우기는커녕 선풍기까지 틀어줄 정도였어요. 일의 강도도 세지 않고 근무 분위기가 즐거워서 거의 원장님께 홀려 있는 상태였죠. 아마... 그때 난 미쳤었죠.


Q. 자체평가로 학원에 대한 기여도는 높으셨나요?

A. 아무래도 국어 과목이 영어, 수학과 비교해서 전체 성적에 영향을 덜 끼쳤기 때문에 기여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어요. 과목 특성상, 수학처럼 노력 대비 성취도가 높지도 않거니와 타고난 언어적 센스가 점수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도 하고요.


Q. 학원 업종의 해고 동향은 어떤가요?

A. 강사들은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기 때문에 자주 옮겨 다녀요. 이직률이 높죠. 그런데 이직률만큼 해고율도 높아요. 원장 입장에서도 정규직보단 프리랜서를 해고하기가 더 수월하겠죠. 고용형태와 업종 특징이 그 이유가 되기도 하고, 원장과 강사들 간 교육관이나 수업 스타일이 다르면 같이 일하기 힘든 것 같아요.


Q, 해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앞서 원장님이 잘해주셨다고 했는데, 그만큼 반전 매력 또한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원장님은.. 미쳤었죠..

남편 분과 가정불화가 있으셔서 정서가 많이 불안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오래된 동료 강사와 남편 분 사이를 의심하는 것을 넘어서서 저와 남편 분이 당신을 험담했다 생각하시곤 했어요.

의심은 파국을 맞아 결국 다른 강사 분께 저를 해고해야겠다고 하셨더라고요. 저를 딱하게 여긴 그 선생님께서 해고 전 날 저에게 미리 언질을 주셔서 전 뜻하지 않게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됐답니다. 마지막까지 어이없었던 건, 학원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핑계를 대시더라고요.


Q. 그 해고는 부당했나요?

A, 제 입장에서 해고가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황을 고려할 때 원장님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당시 학원 운영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자주 봤었고 그 상황에서 데리고 있는 강사들을 모두 정리하고 혼자 작은 과외방을 운영하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그 계획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 입장에선 부당하다면 부당한 일이지만 정규직도 아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해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Q, 내가 사장님이었다면?

A. 제가 원장님이었어도 잘랐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그만큼 원장님의 정서가 안 좋았고 사실 규모에 비해 이것저것 나가는 것이 많고 신경 쓸 것이 많아 혼자 과외방을 소소하게 운영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Q. 나와 회사의 해고 이후 행보

A. 어쨌든 해고를 당한 거니까 기분이 무척 무척 나빴어요, 화도 나고요. 끝이 좋진 않았잖아요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의심까지 샀으니. 날 잘라? 나도 똑같이 학원을 차리겠어. 원장이 돼서 내 학원으로 성공하고 복수할 거야. 원장 대 원장으로 만나서 눈앞에서 으스댈 거야!!!!! 전 그래서 정말로 학원을 차렸어요. 그리고 원장님은 저에게 해고 통보를 미리 알려준 그 선생님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잘랐고 결국 운영하던 학원은 문을 닫고 다른 자리로 옮겨 가 작게 재오픈하셨더라고요. 직접 학원을 차리기로 하고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식당에서 원장님을 만났어요. 잘 지내냐고 하시길래, “잘 지내요! 원장님이 저 자르셔서 직접 학원 차리려고요!” 앙심 1/3 진심 1/3 농담 1/3 섞은 한 마디였는데 꽤 불편하셨나 봐요. 이후에도 먼발치에서 마주쳤는데 절 발견하시곤 황급히 차에 타시는 모습도 봤어요. 저는 그렇게 그녀에게 피해야 할 존재가 되어버렸답니다...


Q. 해고가 미친 영향

A. 어마어마해요. 그 학원에서 일하기 전엔 식품회사 연구원으로 일했거든요. 식품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생 때 학원 강사로 일했던 기억이 좋았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답니다. 학원계로 아주 전향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재밌기도 했고 해고로 인해 약간의 복수심과 나도 잘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학원까지 열게 됐으니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죠. 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요. 거의 송두리째.


Q. 사장님께 하고 싶은 말

A. 비록 마지막엔 해고를 당하긴 했지만 좋은 기억도 있고, 정이 많은 분이라 감사한 부분도 있어서 이대로 인연을 확 잘라낼 생각은 아니었거든요 전. 그래서 전화를 한 번 드렸는데 안 받으셨어요. 지금도 근처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계셔서 소식이 들려올 때가 있는데 여전하신 것 같더라고요. 잘 지내셨으면 좋겠고 한 번쯤은 피하지 마시고 저랑 만나주셨으면 싶기도 해요.


Q. 나와 같은 업종에서 해고당한 분들께

A. 업계 특성 때문에 원장이 아닌 학생한테 해고되는 경우도 있어요. 학생에게 말을 전해 들은 부모가 선생님 맘에 안 들어요 바꿔주세요 하는 경우도 있고, 아이다 보니 선생님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괜한 소리 덧붙여서 곤란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경우엔 정을 줬는데 배신한 경우도 당연히 많죠. 해고율 이직률보다 학생들의 이적 시장이 더 크니까요.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또 종류도 다양한 곳이니, 너무 그 일들로 인한 상처나 스트레스를 내 삶으로 갖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맺는 일이다 보니 일상과 업무의 경계가 무너질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상처를 일상으로까지 갖고 오고, 내 잘못인가 싶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즐겁고, 또 오래 일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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