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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보라 Feb 12. 2022

나는 기레기였습니다

임금체불과 부당해고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겪는 부당한 처우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인수인계, 상식 밖의 인격모독과 성희롱 등으로 직장인들을 삶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 뉴스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상처 없이 성숙해지지 않는다지만, 겪지 않아도 될 상처는 연약한 이들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인가?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가장 약한 이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는 너무나 쉽게 생기곤 한다. 많은 직업군을 거치며 다양한 부당함을 겪은 34세의 한 청년은, 자신의 20대 시절을 돌아보며 순진했던 과거를 탓하기도, 회한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부당함 없이 일을 해내는 사회생활 만렙이 된 이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부당함을 조명해보려 한다. 그리고 다시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그 사람은 부디 같은 부당함은 피해 가기를. 


Q. 안녕하세요 많이 먹는 펠리컨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저는 2022년도에 방년 34살이 된, 많이 먹는 펠리컨입니다. 현재는 영어 강사로 일하는 중입니다만,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졸업 직후에 작은 언론사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죠. 그런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많이 나지 않아서 제가 인터뷰에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Q. 괜찮습니다. 기억에 나는 부분들만이라도 이야기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언론사에서 취재 일을 하셨나요?

A. 네. 3대 신문사 출신의 대표가 설립한, 당시 2-3년 정도 된, 작은 언론사였어요. 저는 2014-2015년 정도 사이에 근무한 것 같네요. 근무 기간은 짧아요. 1~2개월 정도였어요. 취재 및 기사 작성을 맡아서 했죠.


Q. 기자로 근무하셨네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으시다고?

A.  제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古신해철 님의 장례식이 있었죠. 그곳 취재를 맡아서, 종일 장례식장에 머물렀어요.  그때 막 연예인들의 장례식장 취재와 유명인들의 자살 뉴스에 대한 '보도 윤리' 의식이 생겨나던 시기였죠. 그래서 사진도, 되는대로 찍을 수 없었고 입구에 지정된 곳에서 찍어야 했어요. 그런데 저는 신입이고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조문을 위해 방문한 가수 싸이 씨 뒤를 쫓아다니다가 결국 한 소리를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인데, 그땐 제가 참 생각이 짧았네요.


Q. 취재 업무 외에도 기사 재작성 업무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A.  네. 온라인 언론사였기 때문에, 다른 언론사에서 올라온 글을 재편집하여 업로드했죠. 중요한 것은 제목으로 일명 '어그로 끌기'를 해야 했어요.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서 조회수가 높이 나와야 성과를 볼 수 있었거든요. 아우 부끄럽네요. 정말 부끄러운 과거예요.


Q. 그래서 그만두셨나요?

A. 아뇨. 그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어요. 우선 워라벨이 너무 안 좋았어요. 일에 강도가 높았거든요. 주말에도 근무해야 했어요. 회사 출근이 아니고 재택근무였는데도 주말 수당이 없었죠. 말만 재택근무지 빡센 모니터링 업무 때문에 9시부터 6시까지 컴퓨터 앞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회식도 잦았죠. 술 못 마시면 집에 가도 된다고 했지만, 어떻게 신입이 먼저 간다고 해요. 심지어 대표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사무실 내에 bar가 만들어져 있었어요. 근무 중에 술을 권했죠. 알코올이 들어가야 글이 잘 써진다며…. 제가 술을 못 마셔서 그런 것들이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월급이라도 괜찮으면 돈 생각하고 참을 텐데, 월급이 120만 원이었어요. 수습이긴 했지만, 아르바이트생도 아니고 정직원인데 주말근무까지 하는 것을 생각하면 턱 없이 낮은 수준이죠.

[ 2015년 최저시급 기준 : 5580원*209시간=1,166,220원(연 13,994,640원)]


Q. 힘든 점들이 많으셨네요.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셨나요?

A. 내가 직접 작성한 기사가 업로드되는 거면 뿌듯했을 텐데, 다른 사람이 쓴 기사를 재 양산하는 거라서, '타자 치는 공장 같은 느낌', '직업에 대한 자괴감'. '회의감'이 들었죠.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매일 했어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한 채, 상처 줄 수 있는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어요.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까 정신없이 힘들 뿐이었어요. 교통사고 나서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 어느 날, 단풍이 들고 낙엽 지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이렇게 계절이 지나는 것도 모르고 사는구나 싶어서요. 돈도 적게 주면서!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죠. 이 공장에서 타이핑하는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어요.


Q. 퇴사 후 월급은 제대로 받으셨나요?

A. 한 달 조금 넘게 일했는데 통장에 들어온 금액은 100만 원이었어요. 왜 그렇게 적게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화났던 기억뿐이에요. 팀장에게 전화해서 제 월급이 왜 이렇게 적냐고 물어는 봤는데, 팀장 설명을 사실, 못 알아들었어요. 당시엔 뭔 개소리야 하면서 혼자 화는 냈는데. 왜 노동청에 신고할 생각까지는 못했는지 모르겠네요.


Q. 한 달 넘게 일하셨는데 월급 받는 시기도 두 번이어야 했던 것 같은데요. 계약서는 쓰고 근무하셨나요?

A. 썼을 거예요 아마…?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아하하하하. 주말 수당도 주는 게 맞는데, 주말 수당도 못 받고. 머저리였던 것 같아요. 말로는 강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어쨌든 분위기가 강압적이었어요. 주말 근무를 안 할 수 없게 만들었거든요.


Q. 그때로 돌아간다면?

A. 부숴버렸죠. 노동청에 내 집 드나들듯이 다녔을 거예요. 그땐 너무 아무것도 몰랐어요.


Q. 이후 다른 직장에서도 부당한 일을 당하셨다고?

A. 네. 영어학원에서 근무했는데요, 아 물론 지금의 학원은 아니에요. 유명 프랜차이즈 학원이었는데, 4대 보험료를 제가 다 냈어요. 원칙적으로는 회사와 제가 반반씩 내야 하잖아요? 제가 100% 다 냈어요.


Q. 왜죠?

A. 그때 제가 아무것도 몰랐어요. 정말 무지렁이였죠. 원장이 4대 보험을 내든 안내든 월급은 똑같이 받을 거라고 하면서 선택하라고 했기 때문에 저는 4대 보험 납부해서 직장인 신분을 갖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죠. 그들은 그걸로 세제혜택을 받기까지 했어요.  나중에 이게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노동청에 신고하는 방법을 알아봤는데, 부모님이 어차피 학원 업계에 계속 있을 거고 언제 마주칠지 모르니까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라고 말리셨어요. 그래서 결국 신고하지 못했죠.


Q. 그 일로 느낀 점이 있다면?

A. 아주 많아요. <절대 참지 말자.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그때 즉시 해결해야 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나 유아 무야 지나치지 말자. 내가 신고를 함으로써 내 뒤에 입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

내가 그냥 넘어가면 그들도 똑같은 피해자가 된다.> 여러분 참지 마요.


Q. 사회초년생에게 하고 싶은 말

A. 요즘 초년생들은 또 우리 때랑 다르잖아요. 요즘 친구들은 더 똑똑해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순응하지는 마세요. 이것저것 많이 알아보고 목소리를 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알게 되고 나 또한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요. 힘들면 힘들다고 회사 측에도 지혜롭게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특징이 다들 너무 열심히잖아요. 하지만 그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너무 안타까워요.


Q. 나를 부당하게 대했던 회사의 대표 입장이 된다면?

A. 저는 돈에 욕심내서 사람을 잃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당장을 생각하면 직원을 더 부려먹고 싶을 순 있겠죠… 그래도 멀리 생각하면 사람이 득이 될 수 있잖아요. 사람이 큰 재산인데, 그걸 잘 모르는 사장님들이 많아요. 왜냐면 저를 부당하게 대했던 그 회사도 다 몰락했어요 결국. 워라밸이라던가 복지라던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직원들을 더 배려하고 생각했다면 그 회사들도 다 잘됐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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