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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보라 Feb 07. 2022

임금체불 진정 제기의 안 좋은 예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 회사가 자신에게 차지하는 중요도의 차이는 직원들마다 다르다. 그래서, 모두가 회사의 성장과 함께 나와 연봉의 성장을 이루고, 결국엔 행복해지기 위한 공동의 목표로 모였음에도 갈등은 생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안타까운 것은 갈등이 갉아먹는 것은 직원들이다. 결코 운영진이 아니다. 냉전시대에도 양 측의 약소국만이 가장 큰 피해를 봤으며, 현대의 당파 싸움에도 분열된 국민들만 타격을 입을 뿐이다. 국가, 정당을 거쳐 사람이 모이는 작은 단위인 회사라고 다를까. 회사 돈을 내 돈처럼 아끼는 회계팀 직원과 회사 복지를 공동으로 누리길 원하는 사업팀 직원이 서로 아등바등 싸워봤자, 회사가 보는 손해는 하나 없으며, 갈등의 주인공들만이 시간, 에너지, 감정을 낭비로하며 서로에게 피해를 줄 뿐이다. 임금체불이라는 회사의 절체절명 위기 속에서 갈등은 더 크게 조장된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입장 차이 속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공동의 목표로 입사했음을, 우리는 모두 잊게 되는 것이다.



Q. 양수리 몽키스패너 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에디터 님. 저는 임금체불의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 학교 행정실에서 교육행정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천사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세 아이를 키우며 정답게 살고 있답니다.


Q. 양수리 몽키스패너가 아니고, 성시경으로 개명하셔야겠는데요? 꿀보이스를 가지셨어요. 자 그럼, 꿀보이스로 근무했던 회사와 기간, 그리고 직무 소개해주시죠.

A. 건설회사였습니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연수원에서 근무했고요, 본사 인사팀 소속으로 연수원 교육 운영을 담당했습니다. 거의 원장 노릇을 했다고 봐야지요. 2007~2013 무렵까지 근무했습니다.


Q. 당시 회사와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셨나요?

A. 임금체불 전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나름 업무 능력에 있어서 인정도 받았고요. 소속된 인사팀 부장님이 힘이 있었어요. 그분께서 인정해줘서 대리 진급이 다른 사원에 비해서 빨랐습니다. 그 당시엔 꽤 괜찮았어요.

연수원에 진돗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연수가 없을 땐, 개 밥만 주면 됐어요. 듣기에도 꽤 괜찮죠?

그러다가 2011년부터 건설업이 어려워지면서 교육연수 쪽을 쳐내기 시작했어요. 본사로 올라오라는 지시를 받았죠. 본사는 청담동에 위치했고, 그곳에 있는 많은 회사들처럼 높은 빌딩이었어요. 그런데 가기 싫었어요. 당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통근거리가 먼 본사로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어요. 사실상, 학업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니까요. 시설관리 정도로 연수원 관리만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고, 백만 원 정도의 월급만 받으면서, 개밥이나 주고, 계약직처럼 편안하게 다녔어요. 그러다가 결국 회사가 파산해버렸지만요.

      

Q. 개가 꽤 상징적으로 들리네요. 임금체불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A. 1년 반 정도 백만 원가량 받으면서 일하던 중이었죠. 건설업 특징이 나가는 돈, 들어오는 돈이 일정하지 않아요. 큰돈이 들어오면 그때 자금을 확 풀죠. 지급해야 할 돈을 한꺼번에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연수원 운영비를 내 돈으로 했어요. 선납 후 결제죠. 1년 정도는 그 운영비가 딜레이 됐어요. 1천~2천만 원 정도가 밀렸습니다. 회사 상황이 악화된 거죠. 결국 '운영비 다 주세요' 하면서 그만둔 거예요. 밀린 운영비가 1천만 원가량, 월급이 7~800만 원 정도였어요.

     

Q. 임금체불 신고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A. 일단 노동지청을 찾아가 진정서 넣었죠. 그 회사가 노동지청에서 유명해져서 아예 감독관이 지정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감독관이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명할 것도 없었죠. 노동지청으로부터 회사 측에서 공문을 받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조금만 참아달라는 이야기였죠. 절반 정도는 지   있고, 나머지는 나중에  테니 취하해달라고 제안받았어요. 직속 사수가 설득하니까, 취하를   수가 없겠더라고요. 사수랑  친하게 지냈어요. 3~400  정도를 남긴 상태에서 합의를 봤죠. 노동지청에  이상 진행하기 않겠다고 하니, 끝까지 가야 한다면서 아쉬워했어요. 그들의 아쉬움대로, 결국 남은 금액은  받았어요. 1 정도 뒤에 회사가 부도가 나버렸거든요.


Q. 회유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어떻게 됐나요?

A. 제가 그만둘 때만 해도 그래도 부도 상태는 아니었어요. 아까 말씀드린 건설업 특징의 연장선으로,  돈을 늦게 지급하고. 한두 달 밀리는 건 기본이거든요. 결재판이 엄청 쌓여 있어요. 희귀한 장면이 아니에요. 그런 게 당연한 업계입니다.  몇 달 후에 여러 가지 얘기가 들리더니 정리해고가 시작됐어요. 회유했던 사람들도 임금 체불된 상태로 정리 해고된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한꺼번에 임금체불 진정 제기를 했어요.  공동으로 모아서 인사팀이 대신 진행했죠. 그렇게 했지만, 결국 회사의 파산으로 못 받은 걸로 알아요. 회사가 파산하면, 남은 금액이 우선순위대로 지급되거든요. 법원이 정한 채권비율대로 나눠지고 나서 직원들에게 돌아갈 몫은 남아있지 않았죠.


Q. 임금체불 사건이 인생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A.  많이 달라졌죠. 퇴근 시간이나, 휴무 생각 안 하고 일하는 게 한국 사람들 특징이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연수가 많을 때는 휴무 없이, 당연히 야근도, 아주 늦게까지 했어요. 그래도 이상하게 생각 안 했어요 그땐. 열심히 해야 된다고 당연히 생각했거든요. 결국 문제가 터지니, 제일 친한 사람들이 회사 측에 서서 날 설득하고. 결국 남이 되었어요. 아무리 친해도 그렇게 됩니다. 절 신임했던 부장님조차, 회사 입장만 대변하셨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에요. 부장이니까 그래야 했겠죠. 그럼에도, 회사에는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어요. 회사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나쁜 감정을 갖진 않지만, 임금체불 사건은 회사 사람은 회사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예요. 이후의 직장에선, 결국 직장은 월급 받는 곳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최선은 근무 시간에만 하자는 생각으로 변했죠. 회사에 대해서 선을 긋게 된 거예요.  지금 일은 성실하게 하지만, 초과해서 하지 않아요. 옛날에는 잔무를 참지 못해서 야근까지 불사했는데, 많이 변했네요.

     

Q.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A. 지금 기억을 갖고 돌아가면 절대 합의 안 해주죠. 하하하. 미지급액이 300백만 원 정도잖아요. 겨우 그 정도 못 주는 회사 아니거든요. 친한 부장이 설득하고, 이사가 전화해서 내가 취하 안 해주면 회장이 출두해야 한다는 둥, 그런 상황 만들면 회장님이 격노한다는 둥 이야기하는데, 거기까지는 설득되지 않았어요.

제 사수였던 과장님이 설득하시는데, 정말 친한 사람이 말하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실 딱 끊어냈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래도 기억을 안 갖고 돌아가면 설득당하겠죠?          


Q. 임금체불 업주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A. 회장은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이해도 안 되고요. 그렇지만, 회장 말고는 그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싸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들이 악했으면 싸웠겠죠. 상황이, 피해자끼리 서로 조종하게 되더라고요. 의도가 그렇든 그렇지 않든. 지금 모두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설득할 때 합리화되는 논리예요. 너만 못 받은 거 아니야, 나도 못 받았어. 그러니 이해 좀 하자.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흐르게 되죠.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까워요.

     

Q. 개선되고 있는 노동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는?

A. 당시에도 근로기준법 포함하여 노동 관련한 제도나 법은 전에 비해 꽤 개선되었어요. 그렇지만, 진정 제기 후, 과정을 겪다 보면, 합의 가능한 지점이 와요. 사측에서 실제로 돈을 주기 전에, 서로 약속을 맺는 지점이죠. 그때 합의하고 이후 사측이 돈을 주지 않고 파산해버리면 법적인 도움의 손길은 멈추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피해자가 발생하는 거죠. 법 하나에 기대기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달리하는 사항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법만 믿어서는 안 되는 거죠. 법이 다 챙겨주기 전에, 자기 권리는 자기가 챙기는 게 중요해요. 사회에 진출하는 모든 후배들이, 어차피 순간이니 너무 회사에 목매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생각으로 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임금체불 업주에게 하고 싶은 말     

A. 사업주가 되게 나빴어요. 정말 악했죠. 사업주의 핸드폰 요금을 총무과에서 내주는데, 자기가 결재 안 해서 밀린 요금이 고지서로 날아오게 된 거죠. 내가 이 고지서까지 봐야겠냐면서 담당자를 해고시킬 정도였어요.

그뿐인가요. 제가 근무하던 연수원에서 개를 키웠잖아요. 사료까지 제 사비로 구매해서 키웠어요.

그런데, 그 개를 안락사시키래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그래서 그냥 내가 데려가겠다고 했어요. 우리 이모님 댁에서 키우겠다고요. 나중에 월급 주시면 다시 개는 품으로 보내드리겠다고 일종의 볼모로 표현했지만, 보호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개는 이모님 댁에서 잘 살다가 몇 달 안돼서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그렇게 악했던 사람이 결국 감옥에 갔다 왔어요. 그런데요, 사람이 완전히 해탈한 상태가 되었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유해지고 선해졌어요. 너무 친절하고, 얼굴도 환해지고요. 가식이 아니에요 그게. 내려놓고 편하게 사는 게 느껴졌어요.  저는 그게 되게 짜증 났어요. 임금체불로 당시에 죽어나간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이 너무 잘 사니까..., 차라리 끝까지 악해서, 악한 결말을 맞았다면 좋았을 텐데요. 그래서 해주고 싶은 말이 없어요. 어이가 없어서. 좀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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