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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보라 Feb 05. 2022

소녀의 기도 - 영감님, 부디 월급을 주소서.

임금체불 인터뷰 1

"당신의 첫 회사는 어땠나요?"

사회생활 10년 차 이상의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기상천외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첫 취업일수록, 어느 회사든 들어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크고, 간절함이 클수록 시야는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어두워진 시야는 갖고 있던 지혜와 냉철함을 재우고, 눈앞에 떨어진 것을 급하게 주워 먹게 한다. 굶주린 이에게 똥인지 된장인지 확인할 새란 없다. 내가 먹은 게 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게워내는 법을 몰라 이리저리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홀로 이방인으로 일하며, 모든 설거지를 담당했다라던가, 사장님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사장님 어머니의 병원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라던가, 아침마다 하는 커피 심부름도 모자라서 회식 때 내 부모님을 대리기사 부리듯 했다라던가, 온갖 기가 막힌 첫 회사 썰들이 넘쳐난다. 이 모든 사연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시무시한 사회 악을 경험하고 다시는 사회에 발 못 붙이고 나가떨어졌을까? 그렇지 않다. 엉망으로 시작한 첫 연애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점점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듯이, 진상 회사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더 좋은 회사로 옮겨 가며 연봉까지 성숙해진 것이 저 사연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니, 수많은 회사 중 유일하게 당신을 뽑아 준 당신의 첫 회사가 똥이었다 해도,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첫 회사가 임금도 밀릴 만큼 엉망이었다 해도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또 바란다. 당신의 다음은 분명 더 좋을 테니까.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이렇게 임금체불로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는 첫 회사 경험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 도림천 수니엄마입니다.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니어머님. 어떤 회사에서, 얼마나 근무하셨나요?

A. 10년 전에 다단계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근무했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회사에서 100만 원을 1년 만에 1억으로 불려준다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던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엄청 비싼 재킷을 팔기도 했는데, 양 겨드랑이 털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양 겨드랑이가 다른 부위에 비해 더 털이 고급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입어보니까 착용감이 좋긴 했어요. 마치 안 입은 것처럼 가볍고 따뜻했어요. 그때 돈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순진했던 제가 돈까지 있었으면 아마 홀려서 샀을 거예요. 동네 사모님들이 와서 많이들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Q. 다단계 회사, 양 겨드랑이 털이라는 키워드만 들어도 냄새가 나네요. 체불된 기간과 금액은 어느 정도였나요?

A. 2개월, 240만 원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처지라서 더 다니고자 하는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둬야 했어요.


Q. 어쩌다가 임금체불 사태가 생겼나요?

A. 처음부터 월급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신규 고객 유치를 하지 못하면서 임금체불 사태가 생긴 것 같습니다.


Q. 대표에게 항의는 해보셨어요? 항의해도 끄떡없던가요?

A. 네, 아주 거세게 항의했었는데,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 밖에는 하지 않더라고요. 당시 제가 대학을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었어요. 같은 과에 나이가 많으신 학우 분이 계셨는데 학교 밖에서는 사업을 하시는 아저씨였어요. 그분이 저 대신 회사에 전화해서 화도 내고 그랬어요. 어린 학생 돈을 그렇게 안 주면 되겠냐고 호통을 치셨는데, 그것도 전혀 통하지 않았죠.


Q. 지독하네요 정말.  임금 체불되는 동안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A.  어쩔 수 없이 가족에게 알렸죠. 엄마한테 생계 비용 중 일부를 받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통해 메꾸기도 했어요. 그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예요.

          

Q. 함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동료들은 어떻던가요?

A. 작은 다단계 회사라 동료가 없었어요 (하하하하, 아 민망하네요.) 직원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Q. 체불되자마자 바로 신고하셨어요?

A.  네. 한 달 참고 바로 신고했어요.


Q. 신고 후 어떻게 되셨나요?

A. 벌써 10년이나 지났네요. 오래전 일이라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노동지청 남자 직원에게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어요. 그분이 아주 경청하며 공감해주시고, 다음 절차에 대해 설명해주었어요. 다음번에 연락이 가면 사장과 제가 출석해야 한다고도 말해주었고요. 제가 겪었던 고용노동부 소속 직원들은 대체로 친절하셨어요. 약간 상담가 같기도 했죠.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 남자 직원이 사장과 제가 출석해서 만나게 될 것을 이야기해줬지만, 결국 그 사장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어요. 출석 당일에 제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거든요. 사장도 안 왔다고 하고요. 그 후 임금체불 2개월 만에 사장이 미안하다고 하며 밀린 월급을 입금해주었어요.


Q.  대표는 처벌받았나요? 사과는 하던가요?

A.  처벌은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생각나네요. 그 말이 너무 싫어서 전화 끊자마자 바로 차단했어요. 치가 떨리네요 정말. 퉤퉤!


Q.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A. 삼계탕 한 마리 끓여주시길래, 나 혼자 다 먹으라고 주신 줄 알았는데 국물에 고기 몇 점 주시는 거 보고 눈치챘어야 했어요. 그때 눈치챘다면 당장 추노!!!!!!!!!!!!!!


Q. 이후 자신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면?

A. 분명한 가치관이 생겼어요. 바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익구조가 발생하는 사업장의 돈은 받지 말자입니다. 그 대표님은 도대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요. 다단계는 사업장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곳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근로자도 돈나올 곳이 분명해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내가 사장이었다면?

A. 사실 10년이 지난 지금의 저도 사장이 되었거든요. 아직 사업자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직원 없이 저 혼자 일하고 있지만,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직원의 월급을 지급할 거예요. 당시 사장의 입장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고요.


Q. 이런 회사는 피해라! 이런 사장은 피해라!

A. 직원이 자주 바뀌는 회사는 피하세요. 꼭 들어갔을 때 내 상사나 동료가 이 회사에 얼마나 다녔는지 확인하시고요. 허황된 꿈을 늘어놓으며 허세 부리는 사장은 무조건 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윗사람들이 같은 성씨인 가족 회사는 피하세요. 최악입니다.


Q. 최악의 회사란?

A.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회사. 본전을 생각하게 만드는 회사. 명절에 김세트 주면서 우리 회사 복지 좋다고 말하는 회사. 가스 라이팅 하는 회사


Q. 좋은 회사란?

A.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리지 않는 회사. 다닐수록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싶게 만드는 회사.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


Q. 개선되고 있는 노동법에 대한 나의 견해

A. 전보다 좋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련된 용어들이 너무 어려워서, 어린 친구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사장에게 한 마디

A. 영감님,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고 행복하십쇼. 에피소드 만들어주셔서 아주 감사합니다요.


Q. 임금체불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한 마디

A. 앞으로는 입사 시, 신중하게 골라서 가시고요. 1~2년 넘게 밀려도 버티고 다니는 사람들 봤거든요. 그거 못할 짓 같아요. 요즘에는 정부에서 보증해주고 먼저 돈을 받을 수도 있는가 봐요. 옛날엔 그런 게 없었어요. 임금 체불되었다고 발만 동동 구르지 마시고 여기저기 도움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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