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보라 Feb 04. 2022

[해고노트] 두 번째 페이지 : 임금체불 (5)

김민지가 마지막 술자리를 함께 했던 윤 과장, 선 과장을 다시 만난 건 2주 뒤 고용노동부 서울지역본부 건물 앞에서였다. 김민지는 퇴사 후 고용노동부 방문을 약속했던 지훈 씨, 디자인 팀 한 주임과 함께였고, 윤 과장, 선 과장도 한 팀을 이루어 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신고'라는 인륜지대사를 하기엔 혼자보단 여럿이 나았다.


작성해야 하는 서류에는 직장 주소 및 대표번호뿐만 아니라 업종, 담당 업무, 체불된 임금까지 상세히 적어야 했다. 다행히 남다른 각오로 서류를 준비했기에, 근로계약서뿐만 아니라 총무팀 과장이 챙겨준 서류까지 필요한 정보가 들어있는 서류는 전부 있어서 머뭇대며 어리바리 굴 틈이 없었다.


며칠 뒤,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라 "임금체불 등 사업주 확인서"가 발급되었고, 각 직원들의 거주지 소속 대한법률공단으로 사건 접수가 예정되었다. 법률공단으로부터 방문 예약 문자를 받고, 지훈 씨는 시흥에서, 디자인 팀 한 주임은 서울에서, 김민지는 경기도 여주출장소에서 "임금체불 등 사업주 확인서", 법인등기부등본, 주민등록등본, 신분증, 도장을 지참하고 사건 접수를 진행했다.


1개월이 지났다.

김민지는 가계 사정 상, 한 시도 쉴 수 없어서 퇴사 직전 새 직장을 미리 구해두었다. 사보와 관련 없는 일이었지만, 월급 밀릴 걱정 없는 안전한 직장에서 한 달간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 동안, 이따금씩 억울함과 분노가 차오르며, 괜찮지 않은 순간들이 더러 있었지만, 국가가 선지급해준다는 희망이 김민지에게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사람은, 그 대표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법률구조공단에서 김민지의 대리인으로 소송을 진행했고, 소송 결과 소액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는 "확정 판결문"이 발급되었다.

법률공단 지부마다 처리된 시일이 달라 시흥과, 서울에서 진행한 지훈 씨와 한 주임은 김민지보다 "확정 판결문"을 조금 일찍 발급받은 상태였다. "확정 판결문"은 근로복지공단으로 제출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지의 밀린 임금이 소액체당금으로 지급되었다.

임금이 체불되기 시작한 이후로 5개월 만에 받게 된 임금이었다. 김민지는 이날 소고기와 소주로 상을 차렸다. 돈이 들어온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날아갈 듯이 좋고 뿌듯하여 즐거이 할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축하주가 아닌, 속을 달래주는 일에 더 가까웠다.

1년 넘게 근속한 직원들은 퇴직금까지 더해져 체불된 임금이 천만 원은 훌쩍 넘었다. 체당금 신청 금액인 천만 원 외에 엑스트라는 민사소송으로 진행해야 해서, 함께 노무사를 선임하기로 했다고 한다.

김민지가 들은 그들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이전 04화 [해고노트] 두 번째 페이지 : 임금체불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