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임이 이 상황 다 알고 들어온 거라던데?"
"누가 그래요?"
"김 주임 입사 확정된 날, 우리가 최 팀장한테 물어봤거든. 이 상황에 뽑아도 되는 거냐고. 상황 다 말해줬더니, 괜찮다고 했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도 되게 의아했지."
추석 연휴가 끝나고, 김민지가 일주일 뒤 퇴사하겠다고 통보를 한 날이었다. 출장 후 미복귀 퇴근하는 맞선임은 지금까지 버텨줘서 고맙다는 인사로 김민지를 격려했다. 팀장은 이제 자기도 어쩔 도리가 없다며 받아들였지만, 이후 눈만 마주치면 열흘만 더, 일주일만 더 안 되겠냐고 질척대던, 김민지의 고된 하루였다.
결국 피곤이 눈밑까지 내려온 김민지를, 마케팅 팀 윤 과장, 사업 팀 선 과장이 불러서 함께 하게 된 술자리. 두 과장은 임금이 체불된 뒤로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퇴근 후 술잔을 자주 기울이는 듯했다. 김민지가 상황을 다 알고 입사했다는 윤 과장의 말에 김민지의 눈썹 양끝이 욱하는 성미와 함께 쭉 올라갔다가, 찬찬히 평정을 찾으며 면접 당시를 떠올려보았다.
'이 쪽 업계가 영세해서, 잔금 처리가 늦어지면 월급이 하루, 이틀 밀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안 나오진 않으니까 큰 걱정은 말고요.'
하, 기가 막혀. 숨통에서 공기 한 움큼이 터져 나왔다. 면접이 끝날 무렵, 팀장이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살면서 임금을 받지 못한 경험이 없는 지라, 그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민지는 미련의 똥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을 자책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이내 생각을 바꿨다. 대표가 저지른 잘못에, 왜 직원들이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줘야 하나. 좋소기업이라는 말의 의미가 여기까지 효용 되는 것이었나 보다. 말 참 잘 만들었네. 웃음이 나왔다.
가벼운 대화, 농담 한 마디 없는 일주일이 지났다.
김민지의 퇴사일은 어떤 술자리도 만들어지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갔다. 그저 조용히, 혹시 모를 증거를 위해 출퇴근 기록부를 챙기고, 이직을 위해 두 달 반 동안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김민지의 원고가 담긴 책자들을 쇼핑백에 넣었다. 월급에 대해 가장 많은 질문을 듣고, 나중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아야 했던, 총무팀 과장이 김민지에게 소득증명서와 임금체불 확인서를 챙겨주었다. 대표에게 따로 받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 과장에게 김민지는 괜히 고마웠다. 그렇게 퇴사일은,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한 전쟁 준비로 채워졌다. 끝이 아닌, 시작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