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의 홈파티

by 김솔솔



친한 동생들과 간단하게 홈파티를 했다


밖에서 만나는 것이 편하지 않은 요즘, 오래 못 만난 그리움이 커져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파티 음식은 패밀리 레스토랑 애슐리의 이탈리안 밀키트 3종. 연말연초 홈파티 특수를 겨냥하여 다양한 밀키트들이 선 보이고 있다. 애슐리, 소이연남, 툭툭누들타이, 목란 같은 유명 오프라인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로 꾸려진 밀키트들은 식재료가 신선하고 알차다. 기존에 식당에서 먹어 본 메뉴인지라 '맛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우려도 적다. 조리법도 잘 소개가 되어 대략 요리 하나에 10분에서 15분 정도, 조리 안내를 착실하게 따르면, 그럴싸한 비주얼과 맛을 갖춘, 유명 맛집 요리를 내가 완성하게 된다. 오늘은 3인분을 준비하느라 게스트들도 조리에 합세했다. 함께 나눠 먹을 음식을 같이 조리하니 혼자 사는 이 집이 '사람' 사는 집처럼 북적대고 온기가 돈다.



강아지와 둘이 사는 이 집은 언제나 조용


내가 말을 하거나, 넷플릭스이나 유튜브를 켜 놓지 않으면 인간의 육성은 없는 공간. 요즘은 가전제품들도 작동 소음이 거의 없어서, 기계음조차 없다. 가끔 위층에서 아이가 바닥을 콩콩콩 뛰거나, 가구를 끄는 소리 정도. 예전에는(코로나 전) 집에 들어와 맞이하는 이 고요가 참 좋았다. 어느 날인가는 많은 말을 하고, 들었는데 남는 것이 없이 멍했다. 오늘 내가 누굴 만났더라, 무슨 얘기를 했더라, 등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 역할놀이에 충실했던 날들은 더욱 이 고요가 그립고 고마워, 집의 품에 포옥 안겼다.



이런 분위기 참 그리웠지


코로나가 바뀌 놓은 싱글의 생활 풍경. 바깥세상이 역할극을 하는 무대고, 집이 무대 뒤 배우의 화장대 앞이라면, 이제는 무대에 올라가는 시간이 줄어들고,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덕분에 내 얼굴을 더 자주 보고, 내면을 더 자주 들여다 보아 좋지만, 가끔은 무대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오늘처럼 조용한 집에 사람이 오고, 음식 냄새를 풍기고, 와인을 따르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아, 이런 분위기가 참 그리웠지.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이 소란스러운 공기를 맘껏 마신다.

이번 모임은 댄스 동호회 카톡방 동생 하나가 제안했다. '언니 우리 신년회 해요' 일사천리로 날짜, 시간, 장소가 정해졌다. 메뉴를 정하고, 주류를 정하고, 누가 무엇을 준비하고, 주류는 무엇으로 하고, 누가 준비를 해 오는지 등 세부적인 조율도 착착착.



우리는 댄스 동호회에서 만났다.


서로 알고 지낸 지 7~8년 정도 되었는데 코로나 이전까지 우리는 한 번도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커플댄스 동호회 회원이었던 우리는 주로 바에서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만났고, 대부분의 시간, 플로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요즘 어떻게 지내요?', '이번에 공연하나요?' '그 수업 들을 거예요?' 등의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다가 누군가의 홀딩 신청(춤을 추자고 청하는 행위)이 들어오면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하고 춤추는 무리들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그때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직장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번에 소개팅한 사람과는 어떻게 되어가는지, 서로의 사생활 얘기를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코로나로 겪은 변화가 또 하나 있다면, 댄스 동호회 활동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열정적인 마니아들이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 허용 범위 내에서 인원과 시간을 정해 모임을 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들의 특출난 폐활량에 박수를 보낸다. 내 폐활량은 도저히 마스크를 쓰고 BPM 160에 육박하는 몇 분 간의 댄스를 이겨내지 못할 거 같다. 어쨌든 소셜댄스 바에서 만나던 그녀들과 바에서 만나지는 못하지만 홈바에서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제 혼자 살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


올해 앞자리 숫자가 바뀐 제이가 뜻밖에 말을 꺼냈다. 제이는 작년까지 자기가 한 번도 싱글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든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소개팅을 열 손가락이 꽉 차도록 해 봤지만,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견고해질 대로 견고해진 나이에 서로에게 좀처럼 '맞춰 살자'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고 했다. 진지한 만남도 몇 번 있었고, 이번에는 결혼까지 가나보다 생각했지만, 아주 다양한 이유들로 엔딩크레딧에는 늘 제이의 이름만 올렸다나. 제이는 비혼주의도 아니고 그녀 인생에서 여러 번 진지한 만남과 프러포즈를 받아 왔다. 그래서 더욱 싱글로 생을 마감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워워,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길다고. 종전 선언 같은 싱글 선언이나 엔딩 크레딧은 아직 일러. 우리는 웃음으로 그녀의 '혼자 선언'을 말렸다.



지난 소개팅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제이가 말을 이어 갔다. 지난 소개팅 상대는 분명히 장점이 있는 사람이지만, 맞지 않는 부분이 더 크게 다가왔단다.

'달리기' 때문에 헤어졌어요.'

'무슨 얘기야?'

제이는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실내 운동을 좋아하는데, 상대방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좋아하는 운동 취향이 다른 거 인정.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사람은 너무나 달리기의 운동효과를 맹신한 나머지 제이에게 권하기 시작했다.

'저도 운동 좋아해요. 그렇지만 실내 운동을 더 선호해요'

라고 제이는 여러 번 얘기했지만, 소개팅 상대남이 달리기를 계속 권하더란다. 그깟 달리기 하면 되지, 하고 마음도 먹었는데 결론은 엉뚱한 곳에서 났다.

'네 번째 만남에서인가? 옷을 사러 같이 백화점에 갔어요. 그 사람은 취향이 클래식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저는 페미닌하고 패턴이 좀 과감한 스타일을 추구해요. 그런데 몇 번을 자기 취향의 브랜드 옷을 권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예쁘네요 하며 호응하고, 착용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예요. 나랑은 안 어울리는 거 같다고 얘기했는데 또 제가 거절한 옷이 어떠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분인 거 같은데 너무 자기 취향과 의견을 강권하시는 거 같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상대 쪽에서 거리를 두더라고요.'


나랑 잘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거 같아


제이도 상대방도 모두 살아온 세월만큼, 자기 취향에 익숙해져 있고, 그걸 바꾸고 싶지 않다. 각자의 공통 취향 부분에서 만나 합류하면 좋은데, 아무래도 상대방이 좀 더 자기 취향과 영역으로 제이를 끌어당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런 제이에게 가족 중 누군가가 '그러니까 넌 아직 혼자인 거야'라는 말로 상처를 주었다. 때로는 가족이 가장 잔인하다. 왜 그 소개팅 불발 책임을 제이 탓으로 돌릴까?

제이는 자기가 아무렇게나 오려 붙인 '콜라주' 같다고 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전통적 가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전에 결혼을 하려면 운동과 옷 입는 스타일 정도 그냥 별 거 아닌 것처럼 상대 취향에 맞춰야 했던 걸까? 생각하다가도 도저히 자기 체형에 맞지 않는 라운드 숄더의 논 카라 코트는 못 입겠더라고. 나보다 내 체형과 패션 스타일을 그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을 리는 없다고. 그 사람이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입지 않았던 옷을 입을 일은 없을 거라고. 제이는 '달리기'와 '라운드 숄더 논 카라 코트'에 빗댔지만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다. '상대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 상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해주는 것' 그걸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제이의 혼자 선언은 자포자기 심정이 아니었다. 우리는 제이와 어깨를 둘렀다. 그래, 꼭 둘일 필요가 있을까? 꼭 가족을 이뤄야 할까? 꼭 그게 결혼이라는 방식이어야 할까? 제이는 그동안 대체로 부모님 세대의 의견에 동의해 왔다. 홀로 늙어가는 딸을 안쓰럽게 보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 그런 제이가 달라지고 있었다.'어쩌면 나는 누구랑 같이 잘 살기보다는 '나와 잘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맞추기 어렵다면,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지금 이대로의 너도 좋아. 혼자도 괜찮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인생은 독고다이, 이젠 부동산과 주식에 올인할 때?


혼자는 외롭다. 물론이다. 커플 친구들이 싱글 친구의 외롭다는 투정에 보조를 맞춰주기 위해서 '야 같이 있어도 외로워. 인생은 독고다이야' 라고 맞장구를 쳐 주지만. 평일에 이어, 혼자 지내는 주말에 이르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았지? 너무 나태했어. 또는 왜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은 걸까?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 스스로의 인간관계를 점검하고 나의 소셜 네트워킹 능력을 냉혹하게 평가하게 된다. 그럴 때면 강신주 박사에 대한 일화가 생각난다. 삶을 좀 먹는 우울감이 올라올 때 박사님은 침대 맡에 써 붙여 놓은 글귀를 떠 올린단다. '너는 뒤진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휘 선택의 예리함과 정확함에 속이 시원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정신 차리자. 제이야, 톰슨가젤아.

그리고 우리 모임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재테크로 흘러간다. 뉴스에서 읽거나, 유튜브 동영상에서 접한 게 다인 부동산 시세며, 주식 시황 등을 비전문적인 의견과 함께 재잘거린다. 그러다 문득 겜블러 마냥 외친다 '좋아! 인생 독고다이인 거 받고, 재테크 더블로 걸게'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길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 놓는 것이 좋지 않겠어. 언제나처럼 우리는 소개팅에 이어 재테크로 화제를 이어간다. 과연 올해 선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초미의 관심사. 주식 시장은 어떻고.

이렇게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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