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교육의 힘
겸손은 미덕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어릴 적부터 겸손은 미덕임을 주입식으로 교육받고 적당히 강요받고 자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겸손은 미덕일까? 의문이 든다. 지나친 겸손은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게 되면서 자신감도 사라지고 급기야 자존감까지 바닥을 치게 되는 건 아닐까? 실제로 나만해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칭찬을 들었을 때 '아휴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에이..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말하곤 한다. 교육의 힘이란 참 무섭다. 가정과 학교에서 꾸준히 '겸손이 미덕'임을 세뇌당해온 덕분에 우리는 나를 낮추고 부족하다고 표현하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저런 상황이 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가식적 겸손의 멘트들이 튀어나오늘 걸 보면 가끔은 돌아서서 헛웃음이 난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고 잘나가던 프리랜서 강사였던 내가 아이 셋을 낳고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고 나의 커리어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나를 점점 깊은 지하 세계로 끌고 내려갔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까지 찾아왔다. '누군가의 누구'로 살아가는 것은 참 쉽지 않다. 그 대표 주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들 엄마로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내는 엄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아이 셋을 낳고 일을 내려놓게 되면서 경제적 압박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생존'이라는 어마어마한 단어 앞에 나의 부족함만을 탓하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현실적으로 그걸 깨달은 순간 받아들이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것은 뭐가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건 뭐가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이들이 낮잠을 자거나 밤 시간이었다. 컴퓨터 좀 다룰 줄 알고 소통하는 걸 좋아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접근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받아들인 순간 나를 빠르게 돌아보고 내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이야 고급진 말로 자기 발견, 강점 찾기, 나다움 등으로 표현하지만 나는 그때 그런 건 모르겠고 생존을 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빠르게 찾아내고 도전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성실하고 꾸준한 아이였는데 그것은 나의 강점 중 하나이다. 처음 온라인으로 부업을 시작하던 10여 년 전의 나는 강점을 살려서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새로운 분야에 접근했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배움은 실력이 아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것이 있다. 많이 배우면 실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움으로 인풋만 계속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내 실력이 되지 않는다. 지식이 쌓이면서 머리가 굵어지고 알고 있다는 우월감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것 자체가 실력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실행력이며 '성과'라는 선물은 내 행동의 결과물인 것이다.
내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시발점으로 배우고 실행하는 과정은 아주 중요하다. 이 과정 속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빠지면 안된다.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되고 믿어주어야 한다. 나 스스로도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어주겠는가!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강점은 있다. 발견해서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강점을 발견했다면 그 강점을 가진 나를 인정하고 믿는 것이 그 어떠한 것보다 중요하다. 내가 가진 강점을 찾았는데 그것을 그냥 두면 남들보다 조금 나은 재능을 가진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라는 악기에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을 나의 강점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수많은 시간 노력했고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기 위해 전공을 하게 되었다. 피아노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을까? 절대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은 윌리엄 해즐릿은 명언이다. '천재는 노력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탁월하다. 그러나 천재는 탁월하기 때문에 그 일에 노력하는 것이다.' 노력하기 때문에 탁월하지만 탁월하기 때문에 그 일에 노력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물론 나와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재는 아니다. 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꼭 천재일 필요는 없다. 내가 가진 조금이라도 탁월한 장점, 재능, 강점이란 재료에 노력이라는 양념을 얹고 실행이라는 조리과정을 거쳐 성과라는 일품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며 책임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온라인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과정은 나에겐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급변하면서도 험한 그 세계에서 지금도 나름 잘 살아남아 있는 나는 도약하려고 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고정관념들과 우리가 미덕이라고 세뇌당해왔던 겸손이 만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나만 남아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등 자기 발견의 시작점인 나에게 묻고 나에게 답하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더 깊이 알아가길 바란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고 할 수 있다면 글로 옮겨보길 권한다. 처음엔 그 행동이 어색하겠지만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시간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당신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단숨에 대답할 수 있는가? 나도 이 질문을 받고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동안 생각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나는 크리스천이기에 이 땅에 보내진 이유가 분명하다. 첫 번째는 '그 사랑'을 전하고 그분께만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내기 위함이다. 목적이란 불현듯 어느순간 생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의도적으로 고려하여 선택하며 꾸준히 노력하여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삶의 목적은 누가 찾아줄 수 있는것이 아니며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처럼 크리스천이라면 기도를 하면서 찾아나갈 것이고 크리스천이 아니라면 명상이나 자기 성찰을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과정을 걸어 나가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믿고 책임지는 일련의 노력들을 통해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