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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대표 Oct 22. 2023

'꾸준함'이 '갑자기'로 빛을 발하는 순간

큰딸의 대입을 앞두고 수시 원서 접수기간즈음이었다. 딸아이는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하지 않았어도 될 미적분을 자의 반 타의 반 선택하여 열심히 했다. 하지만 입시 방향이 달라지면서 미적분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참고로 딸은 문과이다. 하루하루 해내야 할 분량들이 턱까지 차 올라 있던 딸은 모든 상황을 불편해했다. 필요도 없는 거 하느라 시간 낭비만 했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잘 시간도 없는데 잠 줄여가며 노력한 것을 알기에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까웠다. 운전을 하면서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일단 아이의 힘듦에 공감을 해주고 열심히 했음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가 지금까지 살아보니 불필요한 시간은 없더라. 엄마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니 그야말로 광야였어. 막내동생을 낳고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어야 했던 그 순간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블로그에서 재테크 카페 글을 읽고 카페에 가입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했더니 어느 순간 리더가 되어 있더라. 그렇게 카페 마케팅을 배우게 되었고 그 당시 지식인 마케팅도 함께 배웠어. 그리고 바로 블로그를 배워 업으로 삼았고 그 후 지금까지는 쇼핑몰을 하게 된 거야. 엄마도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렇게 광야에서 굴리시나' 싶은 마음이 들었어. 왜 필요 없는 시간들을 보내게 하시나 답답한 순간도 많았어. 어떨 때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일이 안 풀릴 때도 있었고 도대체 왜 이 일을 하게 하시는지도 궁금했어. 하지만 10년을 살아낸 지금 돌아보니 그 어떠한 순간도 헛된 시간은 없었다는 거야. 엄마는 앞으로 지난 10년간 갈고닦은 모든 도구들을 모아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할 거야. 이런 비전을 품게 되니 물음표 투성이었던 지난 10년의 시간이 어느 정도 해석되는 느낌이더라. 물론 지금도 완벽하진 않고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지만 적어도 쓸데없고 필요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는 거야. 엄마는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을 돕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아픈 이들의 '치유'를 돕는 일을 하고 싶어.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시간들도 유의미하게 보내게 되겠지? 살다 보면 당장 내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힘들고 당황스럽고 답이 안 보일 때가 정말 많아. 그 당시엔 그것 때문에 죽을 것 같고 때로는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좌절감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해석되는 일들도 있는 거야. 그리고 의외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때 당시의 일을 떠올려 보면 '내가 왜 그까짓 걸로 힘들어했지?'라고 느낄 만큼 작은 문제일 수도 있어.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좁은 시야로 봤을 때 지금 당장 해석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거야. 특히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 그냥은 없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아래 있는 거고 당장 우리가 해석할 수 없을 뿐이야.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들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거야. 엄만 그렇게 믿고 기도하고 있으니까 너무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은 너를 엄마보다도 더 많이 사랑하시고 '존귀한 자'로 세우셨어. 가장 베스트 길을 예비해 놓으셨으니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물론 베스트의 길이 우리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어. 엄마가 지금까지 경험한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었거든.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더라. 우리 반전의 하나님을 기대해 보자."


조금은 긴듯한 이야기를 딸은 제법 진지하게 묵묵히 듣고 있었다.


"정말 그럴까요? 헛된 시간 보낸 거 아니겠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저는 정말 고3 시간 엄마 없었으면 멘탈 다 털릴뻔했어요. 멘탈 관리 해주셔서 감사해요."


평소 표현이 없는 시크한 딸이지만 뜬금없는 엄마의 과거사 이야기까지 들으며 숙연해졌나 보다. 뜬금포 고백을 날리는 거 보니... 

결론적으로 딸아이는 수능에서 미적분을 선택해서 시험을 보게 되었다. 물론 처음 선택하게 된 목적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헛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딸아이의 입시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든 가고 싶어 하는 4개에 대학에 최초합격하며 화려하게 입시를 마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당차게 새내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계획대로 다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다.


나는 '1만 시간의 법칙'과 '10년의 법칙'을 어느 정도 믿는다. 1만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10년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 채웠는가? 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시간 때우기 식이라면 의미 없다. 그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짜임새 있게 집중도 있게 보냈느냐가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말하곤 한다. 피아노 전공을 한 나에게도 연습은 엉덩이 싸움이었다. 입시를 준비할 때는 하루에 12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 연습을 해도 해도 잘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잘 안될수록 부분 연습을 더 집중적으로 될 때까지 했다. 교수님께 레슨 받을 때 1,000번을 연습하면 해결될 부분을 999번에 멈췄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학생인 나에게 참 가혹한 말씀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계를 넘을 만큼 온전히 집중하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 지속적으로 집중하여 의식적 연습을 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면 한계를 넘어 한 단계 성장했을 것이다. 이 깨달음이 20년 전에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더욱 성장한 모습이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딸아이에게 들려주었던 10년의 시간은 당사자인 나 조차도 해석하기 힘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 내 던져진 기분이었다. 꾸준함으로 매일 최선을 다했지만 어쩌면 잘 버티고 살아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분명 막막한 광야에 있었지만 온라인이라는 곳에서 꾸준하게 점을 찍었다. 작은 점들이 따로 있을 때는 보잘것없고 뭐가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을 살아내고 점들을 다 연결하고 보니 어느 정도 큰 그림이 그려졌다. 앞으로 나를 든든히 지켜줄 도구를 꾸준히 만들어 온 것이다. 지인들은 나를 온라인에서 뭘 하든 잘 먹고살 거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온라인 여러 분야에서 크고 작은 성과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갑자기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재능을 몰빵으로 받은 가진 게 많은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 "다 갖고 태어나셨네요!" 최근에 알게 된 분께 실제로 이런 말도 들어봤다. 작은 것 하나라도 이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그분은 아마도 모를 거다. 그래도 괜찮다. 지난 10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라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앞으로도 '꾸준함'이 '갑자기'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는 그날까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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