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스키장에 가지 못하는 이유

두려움을 깨니 새로운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by 프니

고이즈미 총리를 닮은 큰 고모부는 어릴 때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다정다감의 대명사로 변하셨지만, 철없던 내 눈의 고모부 모습은 심술이 가득해 보였다. 종말 공포가 온 세계를 씹어 삼켰던 Y2K, 2,000년, 겨울. 엄마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와 길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티브이를 보고 있는 언니와 내게 엄마가 다가왔다.



“너희 다음 주 토요일에 스키장 갈래?”
“스키장? 누구랑? 우리 가족끼리? 나 스키 한 번도 안 타봤는데.?”
“아니 큰고모 가족들이랑 같이. 너네만 가는 거야,”



우리끼리? 언니와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방에 들어온 언니와 나는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우선 스키장에 가고 싶은 의향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 우리 모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 바로 별로 친하지 않은 고모부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잔걱정이 많던 나는 만약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못 탄다고 우리에게 구박을 하면 어떡하지?. 스키장 가서 자기들끼리만 재미있게 놀면 너무 슬플 거 같아. 등의 걱정을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나름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언니는 자기도 사실 그 점이 걱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흰 설원 위에서 스키를 오른쪽 휙, 왼쪽 휙 타고 내려오는 우리가 너무 멋있을 거 같지 않냐는 꼬드김에 언니와 나는 결국 고모부 식구들과 스키장에 가게 됐다. 



새벽부터 일찍 우리를 데리러 와주신 고모부. 스키장 일정은 2박 3일이었다. 우리를 배웅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무언가에서 탈출되었다는 깊은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엄마를 뒤로하고, 몇 시간을 달려 스키장에 도착했다. 짐을 풀어놓고 점심을 먹었다. 이제 배도 채웠겠다. 본무대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발 사이즈를 물어간 고모는 우리에게 맞는 스키용품을 대여해주시고, 털모자와 장갑은 절대 빼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는 이내 고모부에게 스키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스키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고모부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했다. 내가 그동안 알던 고모부는 누구였을까 싶을 정도로. 절대 다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하며 스키 타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의 강습을 마치고, 언니와 나는 초급 코스에 올라갔다. 쉬이이이이잉, 쉭, 쉭 하고 내 몸이 내려갔다. 차가운 바람은 나의 얼굴을 시속 200km로 스쳐 지나가고, 사람들은 내가 무서운지 쏙 쏙 피해 가는 것이 마치 모세의 기적이 눈 위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나에게 이런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주신 큰고모 가족 일동에게 감사를 표하며 언니와 나는 몇 번이고 리프트에 오르고,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다음날이 되었다.
앉으나 서나, 눈을 감으나 뜨나, 눈 위를 휙휙 달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스키의 매력에 빠진 어린 나는 밥을 먹자마자 언니와 함께 뛰쳐나갔다. “야, 오늘은 중급 가볼래.?” 용기 있는 언니는 역시 6학년스러웠다.
"야 먼저 간다. 아래에서 만나." 말을 남기고는 쿨하게 떠나는 언니, 곧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중급은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느낌이었다. 아, 이곳이 내 스타일이네. 내일은 마지막으로 고급에 올라가 볼까 하던 생각이 들던 즈음 나는 앞사람과의 간격이 가까워짐을 느끼고 급하게 옆 구덩이로 몸을 넘어트렸다. 다행이었다. 기지를 발휘하여 사고를 면한 나는 스스로를 장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내 발이 너무 가벼웠다.


내 발에 길게 붙어있던 그 스키가 사라진 거다. 하얀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당황스러웠던 그때,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며, 언니도 아닌 고모부였다. “그걸 잃어버리면 어떡하냐! 우리가 정말 물어내 줘야 되지 않느냐!.”라고 혼이 날 생각을 하니 그제야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엄마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났다. 나는 엉엉 울며 왼쪽 스키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엉엉엉 울며 남아있던 오른쪽 스키까지 빼고서는 무거운 부츠를 끌고, 스키 폴대로 눈을 콕콕 찌르며 내려왔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아 걱정을 하던 언니는 나를 찾으러 왔고, 구석에서 혼자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그리고는 나의 사고지점을 같이 올라가자마자, 그 길쭉한 스키를 찾아냈다. 눈에 눈이 멀어 가까운 곳에 있던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언니는 진짜 장난하냐고 소리치며 내게 스키를 건네주었다. 부츠에 스키를 끼우며 엉엉 울던 그 불쌍한 초등학생은 이내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더 이상 스키장에 안 올 거야.
엄마가 오자고 해도 안 올 거야,”


고모부 때문에 무서워서 스키장에 가지 않으려 했던 어릴 때의 나는, 그 무서워하던 고모부에게 혼이 난 것도 아닌데도 그 후로 스키장에 가지 못한다. 20년째 스키장에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두려움의 원인은 고모부가 아닌 나라는 것을, 그 두려움을 깨부숴야 하는 것도 나라는 걸 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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