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 과자 박사가 될 줄 알았습니다만

by 프니

<역사적인 과자봉지 50년 동안 최고의 상태로 보관돼...> 2050년 3월 2일

<과자봉지의 역사를 찾아서> 김기자입니다. 몇십 년 동안 그렇게 찾아 헤맸던 과자봉지의 보관인이 경기도 남부에 사는 여성분으로 밝혀져 화제입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면서 우리 집 현관 앞에 몰려온 기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보관한 썬칩 봉지를 머리 위로 흔들며, 2003년의 썬칩 맛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해내 사람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멋진 나!


그건 정말 어린 나이니까 이해할 수 있는 당찬 계획이었다. 나는 50년 뒤에 유명한 사람이 되어 공중파 뉴스에 나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슴속에 품었다. 어떤 걸로? 뛰어나게 대단한 피아노 실력으로? 지극한 효심으로? 그보다 쉬운 길이 있었다. 바로 과자였다. 나는 과자계의 쩝쩝 박사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취미는 수집이었다. 크리스마스씰은 물론이고,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의미 없이 주고받던 쪽지 같은 온갖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서랍 안쪽, 쇼핑백, 비밀 저금통 등에 꼭 꼭 숨겨놓았다. 나조차도 쉽게 찾지 못하더라도. 그런데 엄마는 나의 수집 생활을 열렬히 반대했다. 엄마가 코를 막고 눈을 찌푸리며 특히나 싫어했던 수집품들 중 하나는 과자봉지와 박스를 모으는 일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했다. 엄마는 왜 이것의 가치를 몰라 주는 거지?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마저 방안을 나뒹구는 과자봉지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지만, 나는 정말 과자봉지로도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린이였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어린이였으니까 그런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렇게 하나 둘 과자봉지를 모으며 멋스러운 미래를 그려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역시나 위기가 찾아왔다. 위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개미였다.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과자봉지는 개미들을 끌어모으기 충분했다. 엄마는 등짝을 철썩철썩 때리며 오늘 당장 과자봉지를 갖다 버리지 않으면, 다시는 과자를 못 먹을 줄 알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아니, 고작 개미 때문에 나의 미래가 무너지면 안 되는데.. 고심하던 나는 여기서 한번 더 기똥찬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과자봉지 안쪽에 덕지덕지 붙은 과자 부스러기와 냄새를 물로 깨끗이 씻어내는 일이 그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드라이기로 정성스레 말린 후, 클리어 파일에 몰래 꽂아놓으면 끝! 하지만, 개미의 후각은 실로 대단했다. 치밀하지 못한 나의 행동으로 내방은 또 한 번의 개미 파티가 열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눈물을 머금고 봉지를 버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먹지 못하는데 50년 뒤의 내가 행복해서 무엇을 하겠어하고.

눈물로 과자봉지와 박스를 처분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거짓말처럼 언니 방 베란다에 있던 쇼핑백에서 두 개의 과자를 발견했다. 500원짜리 썬칩과, 1500원짜리 크라운산도 딸기맛이었다. 대바아아아악!!!!!!!!! 로또 3등에 당첨된 정도의 가슴 벅참을 느꼈다.(당첨되어 본 적 없음) 보관상태는 꽤나 훌륭했다. 베란다 쇼핑백 바닥에 깔린 채로 무구한 세월을 보냈을 썬칩과 크라운산도를 보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하는 슬픔, 언제 이렇게 가격이 올랐을까 하는 격세지감도 느꼈지만,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기똥찬 꿈이 떠올라 풉하고 웃음이 났다.


대략 인생의 황금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던 2050년, 아직도 수많은 세월이 남았다. 이제 내게는 과자박물관에 기증을 하여 유명세를 얻는 사람이 되는 것을 뛰어넘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아주 현실적인 목표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와그작와그작 거리며 과자를 씹어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고 싶다. 20대의 튼튼한 치아를 80세까지 유지하면서, 20개의 맛있는 과자가 80년까지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물론 혈당도 유지하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2배이상 몸값을 올린 썬칩을 사 먹었다. 태양처럼 강렬한 짭짤한 맛이 혓바닥에 나뒹굴며 내게 <맛있지? 이거면 되지 않아?>하고 말했다. 고개을 젖히고, 마지막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 넣으며 입안 가득 풍성한 행복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뭐야, 난 이미 쩝쩝 박사 된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절로 뿌듯한 마음에 흐흐 흘러나오는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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