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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Feb 07. 2024

별거의 시작

휴일 출근 중에 벌어진 일

주말에 출근을 해야 했다. 나는 이 막막한 상태에서 주말까지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 나의 처지가 황당했다. 내 일이, 내 직업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남편과 갈등 상황에 놓인 것 같다. 아니, 아이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니, 나 때문이다. 니, 너 때문이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무엇도 이유가 아니었고, 그 무엇도 이유였다. 누군가를 탓하자니 더 큰 잘못이 보였고, 그러다 보니 뫼비우스의 띠가 만들어졌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혼돈의 공간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출근이라니. 나는 주말출근이 충격이었다.


사실 그보다 1주 전에도 직원 단합대회라며 1박 2일 워크숍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단합대회라니. 우리 집도 단합이 안 되어 죽을 맛인데, 어디를 단합한다는 건지. 아이러니 속에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내 정신은 심해를 헤엄치는 고래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적한 기분으로 직원들 사이에 있으려니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 나에게 술을 권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마주 보기 힘들었다. 원망과 미움의 화살이 온통 그들에게 쏠릴 것만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40도의 열기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나는 스스로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었다.


툭하면 구박받는 첫째가 떠올라 눈물을 삼켰다. 자꾸만 말썽 피우다 혼나곤 하는 둘째가 떠올라 눈물을 삼켰다. 다정히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시어머님이 생각나 눈물을 삼켰다. 내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던 시누이가 생각나 또 눈물을 삼켰다. 엄마의 슬픈 얼굴이, 아빠의 속상하고도 실망한 표정이 떠올라 절망스러워졌다.


나는 절망의 바다에 갇힌 고래다.



주말 출근으로 종일 출장을 다녀온 그날, 집에 남편의 옷이 모두 사라졌다. 나는 또 덩그러니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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