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누구와 살 거냐고 물어야 했다. 물론 우리 부부는 협의이혼 절차에서 친권과 양육권을 이미 '엄마 측'으로 정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의견을 한 번도 묻지 않는 것은 잘못된 거 아닐까. 아이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봐야 했다.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이렇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건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미 답을 알려주었다. 그런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엄마 앞에선 엄마라고, 아빠 앞에선 아빠라고 하라고. 엄마아빠 같이 있을 때는 묻지 않겠다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늘 내 질문에 엄마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빠에게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현명하게도 아빠라고 대답했단다.
그러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뻔했다. 첫째는 누군가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는 형이 선택하면 따라갈 확률이 높았다.
아이들을 각자 불러서 물어봤다. 너희가 선택할 수 있고, 언제든 변경할 수 있다고. 그러니 누구와 있을지 선택해야 하며, 같이 지내지 않는 쪽과는 언제든 만날 수 있고, 그것이 '면접권'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것은 너희의 권리이므로, 너희가 요청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정해진 날에는 꼭 볼 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대충 고민하더니 "엄마"라고 했다. 둘째는 '엄마가 좋고, 엄마랑 지내는 게 좋아서'라고 했다. 첫째는 '엄마가 늘 돌봐줬고, 아빠는 바빠서 자기를 돌볼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아이는 감정보다 사실을 중점으로 말하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차피 정해진 답을 아이들에게 나의 만족으로 물어본 것일까? 하지만 부모의 이혼 절차에 아이들이 아무런 선택도, 아무런 의견도 낼 수 없다면 막막할 것 같다. 물론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한쪽이 양육해야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한 번쯤 의견을 물어보고, 만약 따라줄 수 없다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주어 설득하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