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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Feb 28. 2024

우울증 진단을 받고 감사하게 된 이야기

아이들 진료를 보러 갔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내가 우울하거나, 뭔가 위험한 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상담받은  아니었다. 아이가 매일 우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 약을 지으러 다니던 신경정신과 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그런데 가만히 들으시더니, 엄마 우울증 검사를 해보자 하신다. 아이들은 엄마와 감정을 공유한다면서. 그래서 검사를 받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문항에, 너무 힘들었다. 500문항이 넘었던 것 같다. 다른 검사지들까지 합하면 600문항도 넘을 것이다. 검사, 검사, 검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며,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사정상 일시적인 것이며, 아이들 때문에 입원할 수 없다고 내 사정을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엄마가 시급하니 엄마부터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나는 약 5년 정도 전에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약이 하나도 받지 않아서 병원까지 실려갔던 기억이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내 몸이 잘 견뎌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하지만 무조건 아이들을 위해 버텨야 한다. 나는 입원치료 하는 만큼 잘하겠다고 선생님께 다짐했다.


약은 다행히도 부작용 없이 잘 맞았다. 선생님도 안심하며 용량을 조금씩 올려주시기 시작했다. 워낙 약에 대한 예민도가 높아서 약을 먹는 전후가 훅훅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나 몸상태가 달라짐을 느꼈다.


하지만 초반에는 몇 번이나 경고를 받았다. 한 번만 더 약을 제때 먹지 않으면 입원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시키겠다고 하셨다. 약 먹는 것이 습관이 안 되고, 자꾸만 나에게 소홀했으며, 그리고 약 먹는 게 부질없다는 마음도 한몫했다. 그래도 협박에는 장사 없었다. 아이들 없이 나 혼자 입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독한 마음으로 약물치료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예약 일정에 늦는 일도 없어졌다.


며칠 후 아이들도 우울증과 불안도 검사를 받았다. 아이들은 정상으로 나왔다. 몇 개월 전에 받았을 때보다 더 안정적이라는 말에 오히려 더 놀란 것은 나였다. 내가 우울증 치료를 시작해서일까. 아니면 나의 육아방식이 안정적이어서일까.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다.


남편이 퇴근해 올 때면 늘 불안했다. 언제 혼날지 몰라 노심초사했고 눈치를 보며 다녔다. 예민도가 높고 허용치가 낮은 남편 눈에 아이들이 거슬릴까 봐, 그래서 혼날까 봐 나 또한 매우 예민해졌다. 그런데 남편이 나가고 나서, 더는 눈치 볼 사람이 없어졌다. 처음엔 습관처럼 아이들을 통제하는 버릇이 나왔지만 점차 없어져갔다. 아이들이 안정화되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특히, 툭하면 동생과 비교당하던 첫째의 변화가 컸다. 감사한 일이었다.


힘든 사정으로 아이들이 철이 든 걸까. 아니면 내 양육방식에 변화가 와서일까. 두 번째였으면 좋겠다. 아프고 힘들어 철드는 것은 더 나중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밝고 맑게 자라길 바라는 것이 내 욕심일지라도, 부디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 마음이 나의 우울증을 찾게 만들어 주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한 우울증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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