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엄마에게 미친 듯이 화냈던 올케가 미워 연락을 끊고 지내던 오빠에게 연락했다. 오빠는 내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고 황망해했다.
"왜 네가...?"
누구나 이런 반응이었다. 누구나 우리가 잘 사는 모양새로 보여서인지, 누구나 "왜, 도대체 왜?"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지쳤지만, 오빠니까 설명했다.
어려서 가정폭력 속에 자랐던 남매지간의 우애는 조금 소원해졌다고 냉정해지지 않나 보다. 우리는 무언가 피보다 더 단단한 인연으로 묶여, 서로를 안쓰러워했다.
그런 동생의 파경 소식은 오빠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도망친 오빠 곁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아버지 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구박받기만 하는 아이가 아닌 사랑스러운 존재로, 아끼고 위해주는 존재로, 그리고 아버지의 든든한 울타리 같은 느낌으로 아이들을 품어줄 대상이 필요했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 종잇장처럼 나풀거릴 때, 곁에서 든든히 지켜줄 바람막이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부끄러워했다.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했다. ADHD가 우리를 한 카테고리에 묶었다. 그리고 문제아 취급했고,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남편에겐 트로피가 필요했다. 우리는 그의 트로피가 될 수 없었다. 그에게 우리는 보살핌을 한없이 베풀어야 하는 문제 많은 가족, 한심스러운 가족이 되었다. 슬펐다.
친정아버지는 아낌없는 나무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손주들을 사랑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혼내는 것은, 내가 자랄 때보다 조금 더 약해진 정도다. 나무 그늘 같은 아버지상이 필요했지만 친정아버진 쌀쌀한 바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좋아하고 따르던 외삼촌은 훈풍 같은 존재였다. 어차피 없는 울타리라면 훈풍이라도 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빠의 그늘로 들어가기로 했다.
외로이 홀로 서게 된 나에게 어린 왕자의 장미와 같은 유리온실은 아니라도 작은 나무 한 그루 옆에 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