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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Feb 19. 2024

맨날 시작만 하는 간호사

자, 다음녀석 드루와

모든 과정을 끝냈으니 미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큰 산이 남았다. 그건 바로 미국에서의 정착과정이다.


정착이란 무엇인가. 내가 전혀 형편을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재미있고 신날수도 있고 반대로, 고민되고 힘들 수도 있다. 그럼 먼저 고민되고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경우 땅덩어리가 워낙 넓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이 가는 지역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출근할 병원을 결정하지 못한 케이스도 있고 부득이 지역을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짐정리와 짐 싸기다.

여행이나 단기체류가 아닌, 해외이주이기 때문에 자칫 정신을 놓았다간 어마어마한 이삿짐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인력으로 해결하는 일은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에 우리나라처럼 포장이사(3-4명의 인원이 와서 포장해 주고 풀어주는 그런 손쉬운 이사)는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가전제품 등 큰 짐은 중고처리나 가족에게 주는 등의 처분을 하여 최소한의 짐을 가져가고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재구매하는 편이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더라도 엄청난 양의 짐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우체국을 이용한 선박택배나 이민전문택배사를 찾아 이민가방에 보내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부부 둘 뿐이고, 옷이나 살림에 큰 욕심이 없으나 대신 우리가 반려하는 아이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관계로 사람의 짐은 아주 미니멀하게-여행 가는 수준으로- 줄이고, 반려견과 반려묘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오래전부터 미니멀라이프를 실천 중이고, 웬만한 신상에도 큰 관심이 없어서 일반적인 가정의 짐에 비해 매우 간소하게 살아오긴 했다. 하지만,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고 특히 요즘에는 읽고 싶은 책도 많아져서 (어느 정도는 읽고 분류를 하겠지만) 이삿짐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전자책의 장점도 물론 많지만, 나는 종이에 적힌 글을 선호하는 편이고 갑자기 읽다가 바로 메모를 하는 등 기록을 좋아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디지털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반면, 신나고 즐거운 일들도 있다. 대도시의 복잡함 속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광활한 자연경관이 주는 편안함이 가장 기대가 된다. 집 주변에 큰 공원과 강이 있고 시간 날 때마다 산책이나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을 것 같다. 또,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여유로운 생활패턴을 가진 미국인의 속도에 맞추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오래 기다리는 것. 한국에 살아오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고, 견디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이기에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내가 그 여유를 지켜주는 만큼 나에게도 같은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므로 앞으로 미국살이를 할 나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다.




실제로 미국에 건너가서는 많은 퀘스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간 쌓아온 신분과 신용도는 더 이상 큰 힘을 발휘할 수 없고. 미국에서 필요로 하는 신분과 신용에 대한 자료인 은행거래, 신용카드, 거주지계약, 휴대폰 개통, 차량구매 등등 이미 우리나라에서 내가 누리고 있던 편리함들을 다른 셋팅으로 변경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또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SSN(Social Security Number:사회보장번호)은 입국 후 14일 이후에 부여받는 것이 원칙이고, 이것이 있어야 근로나 사업 등 생산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이 있어도 일을 바로 시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보통 랜딩 후 한 달 동안은 에어비앤비나 민박 등의 임시거주지에서 1-2년간 지낼 중장기 거주지로 이동하고, 앞서 말했던 여러 업무들을 위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미국에 도착해서 직장을 찾고 면접을 보는 상황이라면 합격 후 입사절차를 밟는 것 자체도 시간소요가 꽤 크므로 그러다 보면 한두 달은 훌쩍 지난 후에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착비용은 넉넉하게 계산하고 준비해야 한다.  


나는 이미 출근할 병원이 정해져 있고, 그 병원에서 미국에 도착 시 우리 가족의 정착을 도와줄 인력이 준비되어 있다. 숙소를 구할 수 있는 회사와 병원이 계약되어 있어 그들과 직접 소통하며 한국에 있는 동안 미국집을 미리 구하고 출국할 수 있게 되어있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나의 편도 비행기값(이코노미 기준), 정착서비스, 한 달 집세(월세-금액은 모르지만), 그동안 병원입사를 위해 필수적으로 진행해야 했던 절차의 비용 등 여러 가지 소요금액 보상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초창기에 사용할 금액 중 일부는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준비성이 철저한 한국인으로서 최대한 많이 준비하고 대비할 예정이지만 사실 이미 안다. 결국 가봐야 뭐가 어떤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거다. 너무 미리 고생하고 힘 빼지 말자. 그럴 시간에 한국에서 남은 날짜 세어보며 맛집도 한 번 더 가고, 바람 한 번 더 쐬러 다니자.


이렇게 시작하기 좋아하는 사람마냥 나는 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이곳에서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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