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국간호사 Sophia Mar 04. 2024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나의 인생에게도...

 나와 완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건 당연히 없을 테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생각이나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떠올려보면..


1. 간호사가 되었고 직업에는 만족하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한계에 지친 사람들

2.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3.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것 같아서 막상 마음 가는 대로 하기에 망설여지는 사람들이다.


그간 구구절절 이야기해 왔지만 오늘은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나는 보통의 한국여성이 사회적, 경제적인 안정을 찾기 시작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수능을 치고 간호대학에 진학했다. 지금은 나와 같은 케이스가 정말 많아졌지만, 내가 도전했던 때만 해도 가뭄에 콩 나듯 희귀한 일이었다.

학부를 마치고 간호사로서 사회에 나와서 보람과 만족감이 정말 많았지만-그랬으니 박봉에 힘든 일도 견뎠던 듯- 지금도 끊이지 않고 뉴스에 보도되는 간호계의 문제점들을 예외 없이 나도 겪었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들기에 억지로 참고 모른척하며 존버하지 말고 나를 위해 더 나은 길은 없는지 찾아보겠다는 마음도 공감한다.

하지만 더 나은 길은 병원을 나와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아주 다양한 포지션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경험해 본 여러 경력이 있다. 때로는 간호사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기도 했지만 임상간호사로 몸과 마음이 항상 지쳤던 것에 비하면 좋은 점도 충분히 많았다. 그렇기에 꼭 미국간호사가 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내 나라에서 내가 편한 언어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속 시원한 것인지는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미국간호사가 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의 간호사가 겪은 부당함과 억울함을 극복했다고 해서 모두가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만으론 극복이 안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어려서부터 해외에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외를 다녀보면서 매번 느꼈던 점은 우리나라가 참 편견과 선입견이 많다는 점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성별이 달라도, 민족을 떠나서 그 사람 자체를 봐주고 경력과 실력을 인정해 주는 서양문화의 솔직함에 매료되었고 내가 준비만 된다면 꼭 그 안에서 경험하고 살아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준비라는 녀석은 언제나 너무나 높은 곳에 완성되어 있다. 맨날 준비만 하다가는 늙어버릴 것이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문제지만 마음먹고 시작을 했다면 그다음은 기회의 문제다. 나는 혹시 만나게 될 그 기회를 엿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과를 운 좋게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과 수고를 돌이켜보면 그 정도라면 한국에서 살아가는데도 충분한데 그 목표가 해외였기에 달라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무조건 한국이 싫다거나 해외 어느 나라가 너무 좋다는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다면 충분히 그 노력의 결과로 만족하며 이 나라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어떤 부분들이 나에겐 괴로울 정도로 힘들었고, 그 부분만 해소되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느낌을 경험한 데다 이민을 갈 수 있는 몇몇 조건이 부합했기 때문에 실행을 했던 것이지 해외이민이라는 것은 그저 장밋빛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포기하기엔 너무나 많은 장점과 혜택이 있는 나라다. 내가 태어나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온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만족한다. 음식, 서비스, 치안 등등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3. 한국에서는 이미 40대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요구하고 기대하는 기준치에서는 주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참 많이 한다. 예전에는 쉽게 생각했던 분야의 취업이나 시도가 이제는 나이제한에 걸리기 시작했고, 내가 할 수 있다고 해도 남들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많이 느꼈다. 세월이 흐르는 만큼 나이는 먹었지만 반세기 전의 40대에 비하면 나는 너무도 젊고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은데도 외부의 인식이 그러하기 때문에 나의 활동반경에도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가끔은 내가 그렇지 않음에도 나를 무능하게 생각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역시 나는 여전히 젊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껏 원하는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그렇지만 장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새로운 언어를 최소 중상급으로 구사하며 돈을 벌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라는 것은 사용빈도가 줄어들면 구사능력도 비례해서 줄어들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하고 사용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렇기에 아주 초보적인 외국어 수준으로 이민의 과정을 완료하기에는 뼈를 깎는 노력과 비용부담이 있다. 또한 한국에서의 인연들을 다 내려놓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두려울 지경이다. 한국에서의 직업, 직위, 신용도도 깡그리 사라지고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때론 아찔하기도 하다. 그러니 너무 섣부른 결정으로 자칫 한국에서의 기반마저 잃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 또래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나와 생각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꿈은 가지고 있으면서 현실성이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꿈이 가당키나 한지 의심하며 자기조차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처음에는 설득도하고 좋은 면도 말해주었지만 지켜본 바 주변에서 용기를 주고 응원을 한다 해도 결국 선택은 본인의 영역이다. 나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으로 새로운 내 인생을 다른 관점에서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이 글을 읽으며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그대들에게, 적어도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꼭 듣고 외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오늘은 그간 좋은 면만 나열했던 미국간호사에 대해 반대의견에도 공감해 보았다. 구색 갖추는 의미에서가 아닌 내가 마지막까지 이민을 포기할 이유가 되는 항목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민을 결정하고 지금까지 밀어붙였던 가장 큰 이유는 딱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삶임에도 이 시대의 대한민국의 우리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고민하고 산다. 내가 만일 일주일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 짧은 일주일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만회하고 경험해 보고 갈 수 있을까?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 주어졌으니 후회하고 아쉬운 일은 덜 남아있을까? 물론 미국간호사의 여정을 걸어보니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하던 것이 모여서 후회 없이 만족할 수 있는 오늘의 내가 되었고, 나를 위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어려움은 있다. 누구나 상처는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과 상처를 위로하고 치료할 이는 결국 나였다. 이곳에 다 털어놓지 못한 나의 어려움과 상처에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결국 나였고,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오늘을 지내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용기와 희망의 예시가 되고 싶다.

이전 15화 이제 남은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