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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목격한 죽음 앞에서

나는 간호사의 자질이 있는가

by 미국간호사 Sophia

한국에서 햇수로 10년이 넘게 간호사로 일했지만 환자의 직접 임종을 목격하는 일이 없었다.

수술실과 외래, 병동을 아우르며 일하긴 했지만, 수술실에는 수술에 지장이 없도록 환자들을 안정된 건강 상태에서 보내고, 병동에서는 수술 후 회복하는 과정을 겪은 후 퇴원을 목표로 하는 환자들을 만났고, 그 이후에는 경과관찰 및 추가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외래를 내원하는 환자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죽음이 언제나 사람 앞에 있다곤 하지만 항상 희망적인 이야기만 하고 또 그러기만을 바라며 일해왔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연구간호사로 일하다 보니 대부분 병원에 스스로 걸어올 수 있는 정도의 비교적 건강한 상태의 환자들을 만났고 만일 환자분이 더 이상 오지 않으시면 확인 차 연락드리는 과정에서 세상과의 이별을 전해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은 전했지만 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코로나전담병원에서 처음으로 환자들의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고 이 일을 하다가 나 역시 코로나에 감염되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우연인지 내 근무시간 중에 돌아가신 분은 단 한분도 없었다. 그저 운이 좋은 간호사였던 걸까?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간호사라는 직업에서 큰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이 분야를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겪는 일들에 대해 약한 편이고 오래도록 곱씹는 성격 때문에 아마 담당 환자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면 그 여파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었을 이유가 충분했을 터이다.


그렇게 나는 대체로 안정적인 상태의 환자들만 보고 간호하며 오랜 시간을 지냈고 환자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도와 함께, 간호사로서 위중한 상태의 환자를 간호해 본 적이 없는 실력 없는 간호사라는 무거운 마음이 함께 공존했다.




미국의 병동에서 일하다 보니 직간접적으로 벌써 4번의 임종환자를 마음의 준비 없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간호사라는 직업과 지난날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상급종합병원의 내과병동인데, 한국과 달리 모든 종류의 내과환자를 다 맡는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내과여도 세분화되어 있어서 호흡기내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 등등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를 맡게 되지만 미국에서는 내과적 질환을 가졌다면 누구나 내가 일하는 내과병동으로 오게 되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많은 수의 환자가 호흡기와 관련된 질병으로 입원하지만, 심한 고혈압과 당뇨가 조절되지 않거나, 심장에 문제가 생겼거나, 간경화나 암투병을 하는 환자뿐 아니라 심지어 정신과적 질환만을 가진 환자도 적절한 치료를 위해 갈 곳을 찾지 못해 기다리는 동안 입원하는 병동이 되어버렸다.

(보통은 미국에서도 정신과 병동이 있긴 한데 내가 일하는 병원에는 정신과를 전담하는 병동이 없어서 일단 급성질환으로 입원한 뒤에 퇴원이 가능한 재활병원이나 정신과병원이 연결되지 않으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심지어 호스피스병동도 없어 외부의 호스피스병원으로 보내지 못하고 우리 병동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환자들도 종종 있게 되었다. 그만큼 내가 담당하는 환자들의 상태는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어려운 케이스의 환자들은 임종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앞둔 사람들이었다. 교과서만으로 배운 말기암환자와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다고 결론 내린 환자들. 실제로 그들을 보면서 처음 느낀 것은 ‘내가 이들을 어떻게 간호해줘야 하는가’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임종을 맞게 된 환자는 내가 직접 담당했던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한 번이라도 오며 가며 얼굴을 마주치며 인사도 했던 환자이긴 했다. 그러다 임종을 한 것이라 마음이 많이 쓰였다. 이미 입원했을 때부터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는 상태인 것은 분명했으나, 그래도 사람의 인생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며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담당은 아니었어도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성의껏 챙겨줬던 환자들이었다.

게다가 첫 임종 환자는 특히 내가 인사했던 날 너무나 정신이 명료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도 잘했던 기억 때문에 다음날 의식 없이 진통제만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케어, 이른바 컴포트케어(comfort care)를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어제 본 사람이 맞나 싶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마지막 환자도 임종을 맞기 전에 이미 컴포트케어에서 호스피스로 모든 치료의 상태를 바꾼 상태라는 것을 알고 본 환자들이라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진행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모든 환자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만난 환자분들은 이미 오래전에 암진단 후 다른 기관으로 전이가 되었고 수술이나 항암치료 등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준의 건강상태가 아니었으며 이 중의 두 분은 심장의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섣부른 약물치료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가족들과 환자본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존중하여 정해지는 것이라 호스피스가 결정된 이후에는 하루 4시간에 한 번씩 측정하던 바이탈도 하루에 한 번 또는 필요한 상태에만 하게 되고 추가적인 치료는 환자가 원하는 것만을 하게 된다.


이렇듯 병원에 오게 된 것에는 각기 다른 이유가 있어도 내가 있는 병동에서 생을 마감한 환자들은 결국 진통제와 거담제 등 처방된 몇몇 약물로 신체적 불편감을 조절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마침내 없던 존재처럼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어떤 이는 가족과 친구들이 끝없이 찾아와서 본인은 보고 듣지 못하지만 그 방안에는 즐거운 분위기가 느껴져서 살아생전 좋은 인연이 많았구나를 느끼게 하기도 하고, 찾아오는 이가 아무도 없이 조용하고 가족도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쓸쓸해 보이는 조용한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담당했던 임종환자는 말 그대로 어제까지 멀쩡했다가 오늘 갑자기 심각한 병세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는데, 입원한 지 이틀 만에 호스피스환자가 되었다. 90세의 환자여서 자녀들도 이미 중년이 되었고 그만큼 이별은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나이이긴 했지만, 직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집에 와서 건강한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다 보니 갑작스러운 이별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같은 나라임에도 너무 큰 땅덩어리여서 비행기를 두 번이나 경유해서 도착한 병원에서는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주검만이 남아있었는데, 혼자 남아 그 아버지를 보며 흐느끼는 뒷모습을 보며 인종과 언어를 떠나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뿐, 그래서 남은 가족인 그의 딸을 안아주었다.


두 번째 환자는 내가 맡은 지 몇 시간도 안돼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는데 다른 환자들을 먼저 챙기다 보니 별달리 해주지도 못하고 구강케어만 두 번 하고 포지션 변경 및 거담제와 진통제만 한 번씩 드리고 그렇게 보내드리게 되었다.




환자가 살아계신 동안에도 사실해 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이미 이틀 동안 모르핀 PCA를 유지하며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수 없는 환자의 통증과 호흡을 편안하게 도와주는 것뿐. 치료를 위한 모든 처치는 종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수시로 환자방에 들러 편안하게 숨을 쉬는 상태인지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곤 둘째 날 출근해서 인계를 받으러 가니 이미 한 시간 전에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차지널스와 낮근무 담당간호사가 가족과 연락해서 시신을 어디로 보낼 것인지 담당자와 통화를 끝냈고 나에게 남겨진 건, 시신을 데리러 올 담당자가 올 때까지 사후간호를 하고 그저 방에 남겨두는 것뿐이었다.


업무를 시작한 이후에는 이미 돌아가신 분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그 방에 먼저 들어갈 수가 없다. 응급실에서 방문한 환자를 분류하듯 병동에서도 여러 환자를 한꺼번에 보기 때문에 일단 줘야 하는 약을 제시간에 다 돌리는 게 최우선이다. 그런 다음 중증도에 따라서 해야 할 일들을 배정하고 하나씩 완료해야 한다. 그 와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도 우선순위를 따져서 해결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할 일을 끝내고 나면 보통 11시가 다 되어간다. 그러면 그제야 돌아가신 분의 방에 들어가서 내가 뭐 해줄 만한 것이 있는지를 살피고 환자를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이 할 일을 차질 없이 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해둔다. 그러면서 잠시나마 인간의 삶과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임종간호라는 것이 있는 것은 교과서로 배워서 알긴 하지만 한국과 미국, 어느 나라에서도 실제로 해본 적이 없었기에, 조무사와 함께 어리바리하며 하나씩 고인을 위해 마지막 간호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으로는 인간의 마지막순간과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어 복잡한 심경이었다.


게다가 이곳의 문화가 또한 우리와 달라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는 상황이었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분들은 내과담당 의사들이 무언가를 해주지만, 호스피스 상태인 환자들은 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 호스피스 팀에 전화를 해서 알려야 한다. 다행히 그들이 가족들에게 연락하여 병원에 돌아가신 환자를 한번 만나볼 것인지 아니면 장례장소에서 만날 것인지를 물어봐준다고 해서 한시름 덜었다. 그 이후에도 시신을 백에 담고 우리로 치면 영안실로 보내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해나가다 보니 시간은 점점 흐르고 나는 하나도 모르겠고 참 당황스러운 마음만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보내드린 고인에 대한 예우와 안타까운 마음은 정말 잠시 스쳐가고, 내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서 인간의 존엄성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렇게 모든 절차가 끝나고 영안실에서 누군가 고인을 모시러 오고 비로소 방이 비면 잠깐 멍한 기분이 들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렇게 죽으면 모든 게 그만인 것을, 우리는 어째서 사소하디 사소한 일들에 목숨을 걸고 악다구니를 하기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하며 울고 웃는 것일까.


아무리 많은 재물이 있어도 하나 챙겨가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앞으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데 왜 이토록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일들에는 소홀하고 후회할 일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을까? 원하는 마무리가 있다면 그걸 위해서 살아가는 동안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잠시나마 머릿속에 가득했다.


또 하나 신기했던 것은, 살아있던 환자가 죽음을 맞이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는 안타깝고 감정적인 순간을 느꼈음에도 이미 돌아가신 그분을 다시 본 순간 정말 말 그래도 아무런 감정과 생각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방어기제인지, 아니면 막상 사람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느끼는 현상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 뒤로도 몇몇 환자들의 임종간호를 하면서도 매번 같은 기분과 생각이 유지되는 내 자신을 보면서도 참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또 간호사의 하루를 보냈다. 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 이곳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무슨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곱씹어가며 내 삶을 채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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