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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그 안타까움에 대해

너의 미래는 눈부실 거란다

by 미국간호사 Sophia

오늘은 지난 추운 겨울 어느 날 이틀 동안 맡았던 한 환자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Myelitis, 골수염으로 입원한 20대 중반의 여성이라고 인계를 받았는데, 특이점은 하늘이 내려주시기론 의심의 여지없는 남성의 외모이지만 자신을 여자로 불러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떡하니 성별에 Female(여성)이라 표시되어 있는 의료 기록을 보니 동공지진이 왔다. 역시 이곳이 미국이라는 곳인가? 나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인가? 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만나러 방으로 갔다.


직접 만나보니 그 어마무시한 성별의 환자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앳된, 그리고 체구가 작은 남자아이(?)였다. 말투도 상냥하고 여린, 그래서 이 나라에서 혼자선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아 보였다.

저녁약을 주며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며 아시아를 좋아해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갈 수 있을 거라며 일본 바로 옆에 한국이 있으니 거기도 가보렴이라고 말해주며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약을 주고 간호기록을 남기면서 환자의 과거력인 의료 기록들을 확인하니 앳되고 여린 그의 품성과는 달리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은 웃을 수 없는 상태였다.

젊은 나이에 홈리스로 살다 길에서 쓰러져있었고 응급실로 실려온 뒤에는 양쪽 발가락이 동상인 건지 골수염 때문인 건지 잘라야만 해서 이미 한쪽은 자른 뒤에 피주머니를 달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다음 수술을 기다리는 상태였다. 미국에선 흔한 질병이라곤 하지만 양극성 정신장애인 조울증도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모습이 딱하기도 하고 아직 젊기에 치료를 잘 받고 나면 앞으로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 일하며 동료들과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험담이나 뒷담화라기보다는 어제 내 환자가 아니었어도 쉬고 오면 맡기도 하니 알아서 나쁠 것이 없고, 어떤 치료를 하는지 경과가 어떻게 되는지 등에 관해 배우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 업무가 좀 여유로워졌을 때 내 환자는 이런 아이더라 이야기를 하니 모든 미국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면 쫓겨나듯 집을 나와야만 한다는 대답을 했다. 참 씁쓸한 일이었다. 얼마나 가난이 혹독하면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집에서 내보내는 걸까.


또 들은 이야기는 이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설사 결혼을 하거나 파트너가 있는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했더라도 자기 자신이 항상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경제상황이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도대체 이게 문화차이인지 개념차이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아이가 분명히 생물학적으로 남자임에도 여자라고 불러달라고 할만한 이유도 있었는데, 본인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가끔 성적학대를 당한 경우에 선택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정체성도 흔들릴 상황이라 일단 그 친구를 여자 남자로 딱 잘라 나눠 부르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아무튼 추운 겨울에 오갈 데 없이 길에서 구조대원에게 발견되어 온 이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기를 잘 챙겨주는 내가 좋다고 했다. 어려운 발음의 내 이름을 여러 번 물어보고는 그 뒤론 내 이름을 계속 불러주었다. 그리곤 제일 좋아하는 PB&J(피넛버터 젤리 : 미국인이 참 좋아하는 과자류로, 빵에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것이다. 보통 피비제이라고 부른다)와 탄산음료, 주스를 실컷 먹고는 늘어지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수술하고 온 뒤라 갑자기 열이 나서 출혈이 심한 건지 확인을 하고, 수액도 주고 해열제도 먹이고 시원한 음료도 주면서 지켜봤는데 다행히 젊어서 그런지 금방 열이 떨어지고 잘 자주었다.


이런 환자들을 만나면 참으로 안타깝고 더 마음이 쓰인다.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나갈까. 모두가 세계최강의 나라라고 부르는 미국의 어두운 단면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이 있는 지역도 한때 시절을 풍미했던 대도시의 그림자 아래 슬럼이 된 동네이기에 참으로 많은 홈리스와 약물중독환자를 만나게 된다. 모두가 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역사가 있을 것이지만 이런 부분은 어쩌면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역사회의료와 간호가 더욱 요구되는 것이 이곳인 것 같다.




미국에서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이, 자본주의 나라답게 모든 것이 돈을 기준으로 나뉘고 그만큼 냉정하고 차갑다는 점이다. 공짜는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건강상 문제로 일을 할 수 없거나 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을 한 경우조차 예외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 이곳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보다도 인구가 훨씬 많은 곳이라 그런지 더 많이, 더 자주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미국이 마냥 살기 좋은 나라이거나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제도가 정말 잘 되어 있기에 가벼운 질병이 시작되었을 때 초기에 빠르게 진료를 보고 질병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세계 어느나라도 갖추지 못한 대단한 환경이다. 혹여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에 중한 병이 찾아온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미국처럼 병원 가기가 너무 비싸거나 어려운 구조라서 병을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어리고 젊은, 미래가 밝아야만 하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좋은 세상이 열리기를 바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언제든 볼 수 있고, 일본이든 한국이든 가보고 싶은 나라를 갈 수 있는 기회도 오길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을 포기하거나 사는 대로 생각하며 삶을 흘러 보내지 않길 바란다.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된다. 때로는 내 상황에 감사하게 되고, 또 내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어떤 것이든, 무엇을 하든 감사한 것이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환자들에게 나의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최대한의 간호를 제공하려고 애쓰면서도 인간적인 부분을 더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가끔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도우러 간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는 거기에 돈까지 버니 안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젊음에 대해 가벼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는데도 젊음의 시간은 느리게 가고 항상 나와 함께 있어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리곤 그 젊음이 지나가고 나면 후회와 아쉬움을 갖는다. 그러면서 젊음을 아직 가진 사람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한다. 만일 젊은 시절 그 원리를 깨우친 사람이라면 대단한 일들을 해내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의 인생은 모두 같은 길을 거쳐가기도 하면서 참으로 많은 다양한 결과를 만든다. 그 수많은 결과 중에서 나는 어떤 일을 선택하고 어떤 결과를 얻고 싶을까?


평생의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것은 ‘오늘의 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나보다 젊은 그 환자에게 해주고 싶었던 그 말을 대신 오늘의 나에게 해주고자 한다.


너의 과거와 지난 시간은 너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거나 보상해주지는 못하지만, 너에게는 지금 이 시간부터 미래라는 시간이 있어. 그러니 앞으로의 그 시간들을 너의 부족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동안 겪은 적 없는 행복을 만나고 맞이하는 것으로 사용하길 바래. 과거는 내가 선택하지 못하지만 미래는 내가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니 비록 내 마음처럼 안 되는 일이 돼버리더라도 꼭 너의 행복을 찾기 위해 살아가길 바래.


이렇게 나의 프렌드는 퇴원을 했다. 갈 곳이 없고 당분간 치료를 해야 해서 그룹홈으로 간다고 했는데 새로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길바닥 생활을 다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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